[스페셜 리포트]
혼자선 불가능한 고난도 기술…삼성전자·현대차가 ‘협업’ 나선다면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자율주행차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자율주행의 도입은 인간에게 단지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기계 기술과 정보기술(IT)의 만남인 자율주행은 경제적·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각국과 글로벌 기업들이 자율주행에 매달리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또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IT·자동차 강국’ 한국,  자율주행차 경쟁서 뒤처진 이유
(사진) 9월 8일 시구자를 태우고 야구장에 등장한 기아차의 자율주행차. / 한국경제신문

9월 8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 야구장을 찾은 이들은 흥미로운 모습을 봤다. 정식 경기에 앞선 시구 행사에서 시구자가 운전자 없이 작동하는 쏘울 자율주행 전기차를 타고 등장한 것이다.

이 차는 야구장 외야 방면 좌측 게이트에서 출발해 3루 쪽으로 이동 후 시구자를 내려주고 홈을 거쳐 출발한 곳으로 퇴장하는 자율주행 퍼포먼스를 펼쳤다.

앞으로 10년 안에 이렇게 운전자 없이 움직이는 차들을 길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완성차 기업뿐만 아니라 IT 기업들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자율주행차를 꼽고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스마트폰’으로 불리는 자율주행차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시장조사 기관 IHS오토모티브는 전 세계 자율주행차 판매가 2035년 연 21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25년까지 60만 대를 기록한 뒤 10년 동안 연 43%씩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세계시장 규모가 1890억 달러(약 21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시장조사 기관인 내비건트리서치는 2035년에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75%를 자율주행차가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IT·자동차 강국’ 한국,  자율주행차 경쟁서 뒤처진 이유
◆보수적인 일본 업체들도 연대 나서

글로벌 완성차 및 IT 기업들은 자율주행차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이미 대규모의 합종연횡을 가동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이 생각만큼 만만치 않으니 힘을 합쳐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의미다.

먼저 BMW는 인텔 및 모빌아이·바이두 등과 손을 잡았다. 모빌아이는 이스라엘의 자동차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기업으로, 이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회사다. 이들은 2021년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위해 노력할 방침이다.

보수적인 일본 자동차 업계조차 연대를 맺었다. 도요타·닛산·혼다 등 자동차 업체 6곳, 덴소·파나소닉 등 부품 회사 6곳이 고정밀 3차원(3D) 지도 등 자율주행에 필요한 8개 기술 분야에서 힘을 합치고 있다.

또 구글은 2014년 아우디·혼다·제너럴모터스(GM)·현대차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연합체인 ‘열린자동차연합(OAA)’을 꾸려 IT와 자동차 기술을 결합한 ‘커넥티드카’ 기반의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180만km 자율주행 데이터를 확보했다. 애플도 아이폰과 자동차 계기판을 통합하는 개념의 ‘iOS 인 더 카’ 전략 아래 메르세데스-벤츠·BMW 등 10여 개 완성차 업체와 손을 맞잡았다.

자율주행차를 둘러싼 협업은 산업 간 경계를 뛰어넘어 서비스업에까지 넓어지고 있다. 차량 공유 업체 우버는 2020년까지 자율주행차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최근엔 피아트크라이슬러와 자율주행차 분야 협력을 논의 중이다. 또 피아트는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배송에 자율주행차를 활용하는 방안을 아마존과 협의 중이다.

‘시대의 흐름’인 만큼 한국 기업들도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추세다. 한국 기업 중 자율주행차에서 가장 앞서가는 곳은 현대·기아차그룹이다. 현대·기아차는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 독자 기술을 키우는 한편 구글·시스코·우버 등과 손을 잡은 상태다.

현대차 자율주행차 개발의 첫 성과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투싼IX 기반의 첫 자율주행차를 선보였다. 이 자율주행차은 검문소, 횡단보도, 사고 구간 등 총 9개 미션으로 구성된 포장 및 비포장도로 4km의 시험 주행에 성공했다.

또 2012년 초 ASCC(어드밴스트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를 기반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고속도로 자율주행 시스템 기술을 개발했다. 그로부터 약 2년간 이 시스템을 가지고 약 5만km의 시험 주행을 실시했다.
‘IT·자동차 강국’ 한국,  자율주행차 경쟁서 뒤처진 이유
◆“한국, 선진국에 3~5년 뒤처졌다”

현대차가 본격적으로 자율주행차 개발을 천명한 것은 2015년부터다. 현대차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약 2조원을 투자해 자율주행 및 차량 IT 수준을 향상시키고 차량용 반도체 및 자율주행 핵심 부품 등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해에 자율주행차 실제 도로 시연에서 주행 차로 유지, 서행 차량 추월, 기존 차로 복귀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였다.

특히 현대차는 2015년 12월 출시한 제네시스 EQ900에 ASAD(차로 이탈 경보 시스템 등 운전자 지원 시스템) · HDA(고속도로 주행 지원 시스템) 등 자율주행차의 기본이 되는 기술들을 탑재했다.

또 서울대와 협업해 서울대 교내 캠퍼스 순환도로에서 제네시스 EQ900 기반으로 자율형 주행 택시 개념의 스누버 서비스를 공개 시연했다. 스누버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자율주행차를 공유하는 서비스다.

현대차의 자율주행차 개발은 2016년 들어 더욱 빨라지고 있다. 2015년 12월 미국 네바다 주에서 자율주행 면허를 획득한 현대차는 올해 3월 제네시스 EQ900의 국내 자율주행 임시 운행 허가를 받았다.

허가 받은 차량은 허가 구간 자율주행, 혼잡 구간 자율주행, 비상 갓길 자율 정차, 협로 주행 지원 등의 실제 적용이 가능해진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뿐만 아니라 투싼 수소차 및 쏘울 전기차의 임시 운행 허가도 국토교통부에 신청한 상태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현대차는 2020년 고도 자율주행, 2030년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현재는 미국도로교통안전국 기준 2~3단계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는 특히 자율주행차 반도체 칩을 직접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반도체 설계 전문 계열사인 현대오트론 등을 통해 자율주행차용 반도체를 설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핵심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도 자율주행차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현대모비스는 2009년 현대오토넷을 인수한 이후부터 본격적인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해 기초적 기술은 거의 모두 갖췄다.

특히 올해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에선 리모트SPAS(운전자가 스마트폰 하나로 주차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 액티브 BSD(사각지대의 차량을 보지 못하고 차로 변경 시 이를 제어해 사고를 방지해 주는 기능), CTA(교차로 감지 시스템) 등의 기술을 공개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2018년에서 2019년 사이에 자율주행 시스템의 독자 생산을 추진하고 2020년까지 상용화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한국의 자율주행차 기술은 선진국들에 비해 3~4년 정도 뒤처진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독일 컨설팅 업체 롤란드버거는 지난 7월 말 각국 연구기관의 전문성을 평가하는 자율주행차 인덱스를 내놓았다.

보고서에서 한국을 자율주행 전문성에서 중간 이하로 평가했다. 미국·독일·스웨덴이 리딩하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한국은 중국을 간신히 제친 수준으로 조사됐다.
‘IT·자동차 강국’ 한국,  자율주행차 경쟁서 뒤처진 이유
(사진) 올 8월 일본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12인승 자율주행 버스 ‘로봇셔틀’. /한국경제신문

◆애플도 단독 개발 전략 재검토

한국 자율주행차 기술이 뒤처지고 있는 것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컨트롤 타워의 부재다. 이미 선진국에선 자율주행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컨트롤 타워를 설립해 일목요연하게 관련 기술을 체계화하고 있다.

미국은 지능형교통시스템(ITS) 합동계획실(JPO), 유럽은 유럽위원회(EC), 일본은 종합과학기술혁신회의(CSTI)가 별도로 설립돼 자율주행 정책과 세부 실행 계획을 주도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ITS JPO는 자율주행차 표준 개발 및 표준 적용 절차를 마련하고 유럽·일본과 협력 체계를 지속하는 한편 자율주행차 핵심 기술 연구·개발(R&D)을 지원한다. 2023년 현장 적용까지의 로드맵이 나온 상태다. 미국 교통부 지원 아래 스마트시티까지 선정했다.

컨트롤 타워가 부재하다 보니 관련 규제도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일례로 선진국에선 각국의 콘트롤 타워가 중심이 돼 지방자치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시험운행이 원할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마땅한 콘트롤 타워가 없어 자율주행차 관련 제도가 복잡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먼저 자율주행 시험 면허를 받더라도 반드시 운전자가 탑승한 상태에서 고속도로 중심의 테스트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선 최근 최대 15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길이 4m의 자율주행 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싱가포르에선 세계 최초로 일반인 대상의 자율주행 택시 시험 운행을 시작했다. 일본은 이미 12인승의 자율주행 버스가 시범 운행을 시작했다.

특히 미국은 9월 21일 정부 차원에서 15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300만km 이상의 자율주행 데이터를 확보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콘퍼런스에서 정책 동향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우리가 미래 기술이라며 실행 없이 관심만 높이는 사이 선진국은 이미 테스트를 시작하는 수준까지 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원인은 ‘국내 기업 간 협업의 부재’다. 한국은 자동차와 IT 양쪽 분야에서 강자다. 하지만 각 기업들의 독자 기술에 대한 집착과 지나친 순혈주의가 협력 체계 구축을 가로막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율주행차는 기존의 자동차 기술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IT의 도입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분야의 강자인 구글이 현재 자율주행차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고 평가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IT 기업 단독으로 무인 차량을 개발할 수도 없다. 애플이 최근 비밀리에 진행하던 단독 자율주행차 프로젝트 ‘타이탄’을 재검토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세계 최고 수준의 IT·자동차 기술을 갖춘 한국 업체 간 합종연횡은 드물다. 실제로 최근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IT 기업은 자동차 전장 사업을 적극적으로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시스템LSI사업부 안에 자율주행 반도체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는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며 사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LG도 마찬가지다. 대구시가 추진하는 자율주행차 핵심 기술 개발 사업에 LG전자가 참여한다. 2021년까지 5년간 1455억원을 투입해 핵심 부품과 시스템을 개발하는 내용이다. LG전자는 또한 폭스바겐·GM 등 여러 파트너사들과 차량 기술 협력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과거엔 자동차 업체 고유의 기술력을 갈고닦는 식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지만 자율주행차 시장에선 IT 업체와 협업하지 않으면 빠른 흐름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며 “현대차와 삼성전자가 자율주행차 분야에서 전략적으로 협업한다면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치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용어해설 = 자율주행차]
운전자가 탑승한 상태에서 조작 없이 목표 지점까지 스스로 주행 환경을 인식해 운행하는 자동차. 사람이 타지 않는 무인차와 구별된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자율주행차 기술을 레벨 0~4까지 5단계로 구분하는데, 업계 최고 수준은 현재 3, 대부분의 업체는 2 정도다.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