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가업’이었지만 제왕학 수업은 결여…불안한 의존적 심리가 화 불러
박근혜 대통령의 엇나간 '황제 콤플렉스'
[한경비즈니스=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비선 조직의 국정 농단. 이런저런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시원찮다.

문제의 핵심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원조 친박’ 전여옥 전 의원이다.

“박근혜에게 한나라당은 ‘나의 당’이었다. 한국은 아버지가 만든 ‘나의 나라’였다. 국민은 아버지가 긍휼히 여긴 ‘나의 국민’이었다. 물론 청와대는 ‘나의 집’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바로 ‘가업(my family’s job)’이었다.”

황제가 아닌데 황제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행동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황제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 실언은 ‘무의식적 표현’

몇 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등록할 당시 국회의원직 사퇴를 “대통령직을 사퇴하겠습니다”라고 실언한 적이 있다.

어떤 심리학자는 이를 프로이트 식으로 해석해 ‘대통령을 하기 싫어하는 무의식적 표현’이라고 했다. 틀렸다. 반대로 그녀의 이 말은 그녀가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이 자신이 ‘아버지의 왕국’을 이어받을 유일한 왕위 계승권자라는 무의식적 확신의 표출이다. 그 자리는 그녀에게 왕정복고(王政復古)의 선언식 자리였을 것이다.

그녀의 황제 콤플렉스는 뿌리가 깊다. 그녀는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생 때 청와대에 입성했다. 황제나 다름없는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는 아버지 아래서 어린 근혜는 공주로 자랐다. 20대 초반, 전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자랐다는 측면에서 미숙한 어린아이나 진배없던 그녀에게 엄청난 시련이 닥친다.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간첩 문세광의 총격으로 세상을 떠난 데 이어 몇 년 뒤 아버지마저 최측근에게 시해 당했다. 부모의 비극적인 죽음보다 더한 트라우마가 어디 있으랴. 몰락한 공주 곁을 지켜주는 측근은 없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절망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편집증까지는 아닐지라도 청년 박근혜가 ‘편집증적인’ 성격을 갖게 된 것도 이때일 것이다. 이 성격의 핵심은 ‘불신’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의심한다. 차갑고 냉담한 성격이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만든다.

문제는 본인이 이런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 그녀는 엄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지만 정신적 내상 때문인지 자기 수련을 게을리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항상 최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최고의 리더십 수련을 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말이다.

황제 콤플렉스를 가졌다면 응당 받았어야 할 혹독한 제왕학 수업이 결여된 순진한 공주. 그녀는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의존적인’ 성격이 됐을 것이다. 심리학에 ‘상처 입은 내면 아이(wounded inner child)’라는 개념이 있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남아 비록 몸은 성인이지만 마음속의 상처 입은 내면 아이가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청소년기에 받은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환갑이 지난 지금도 그녀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다.

일찍이 그녀의 이런 불안한 심리의 틈새를 파고든 것이 최태민·최순실 부녀 일당이다. 아버지마저 죽고 사람들이 다 떠나갈 때에도 그녀 곁에 남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최 씨 일당을 그녀는 혈육보다 더 나은 평생의 은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대통령을 ‘언니’라고 부르는 최순실은 박 대통령에게 ‘확대된 친족’이다. 영장류학자 다리오 마에스트리피에리에 따르면 족벌주의는 ‘친족을 사회적 파트너로서 선호하고 또 친족이 아니 개체가 피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친족을 돕는 식으로 편애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자연스러운 족벌주의 본능이 있다. 하지만 “족벌주의가 친족이나 후배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규칙을 깰 때 문제가 된다”고 마에스트리피에리는 말한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이를 용인한 박 대통령의 태도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는 것은 그녀의 족벌주의가 ‘능력주의에 입각해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면서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칙을 깼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황제 콤플렉스가 그녀의 편집증적·의존적 성격에 바탕을 둔 족벌주의와 결합하면서 사태가 더욱 커졌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성격상 그녀는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상처 입은 내면 아이’의 존재조차 모르거나 부인할 것이다.

또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하며 저지른 부조리도 은혜 받은 친족에 대한 당연한 보상 정도로나 생각할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이다.

(일러스트=김호식)

시간 내서 보는 주간지 ‘한경비즈니스’ 구독신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