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올해 임기 끝나는 기관장 23명…국정 공백 여파로 후임 ‘오리무중’
'최순실 늪'에 빠진 공공기관 연말 CEO 인사
[한경비즈니스=김병화 기자] 대한민국 공공기관이 ‘최순실 늪’에 빠졌다. 특히 기관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공공기관들이 가시방석이다.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서다. 대규모 경영 공백 사태도 우려된다.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3년이다. 임기가 끝나면 연임하거나 후임에게 자리를 내준다. 공공기관장은 통상적으로 각 기관별로 구성되는 임원추천위원회가 복수로 추천해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친 사람 중 주무 기관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다만 규모가 작은 경우 등은 주무 기관장이 바로 임명할 수 있다.

일명 ‘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의 기관장 임명이 부담스러워지면서 ‘말년 병장’ 기관장들의 거취가 안갯속이다. 임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연임인지, 신규 선임인지 윤곽조차 잡히지 않은 기관장도 수두룩하다. 거취를 장담하지 못하는 기관장은 내부 인사조차 부하 직원 눈치 보기 급급하고 직원들은 언제까지 지시에 따라야 할지 혼란스럽다.

한경비즈니스가 공공기관 경영 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를 분석한 결과 전체 공공기관장 321명 중 23명의 임기가 오는 12월까지 만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무 부처별로는 미래창조과학부가 6명으로 가장 많았고 농림축산식품부·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가 3명, 중소기업청·산업통상자원부가 2명, 보건복지부·문화체육관광부·고용노동부·국가보훈처가 1명으로 뒤를 이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기관장의 부재는 조직 전체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며 “청와대가 역할을 못하는 가운데 뾰족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아 한숨만 늘고 있다”고 말했다.

◆ 직원 인사 맞물린 도로공사
'최순실 늪'에 빠진 공공기관 연말 CEO 인사
현시점에서 ‘기관장 인사 스트레스’지수가 높은 공공기관으로 도로공사가 꼽힌다. 이사장 임기를 한 달 정도 남기고 연임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가운데 내부 인사까지 겹치며 어수선하다.

도로공사의 수장은 김학송 사장이다. 김 사장은 경남 진해에서 3선(16·17·18대)에 성공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국회의원 출신으로 2013년 12월 취임했다. 정치권에서는 ‘친박’ 대표 주자로 꼽혔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18대 대선에서 유세지원단장을 맡았던 경력 덕분에 낙하산 논란도 감수해야 했다.

김 사장의 임기는 12월 9일 만료된다. 도로공사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연임할지, 새로운 사장을 뽑을지 청와대의 오더가 떨어져야 할 시점인데 감감무소식이다 보니 직원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도로공사는 김 사장 취임 이듬해인 2014년부터 3년 연속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ex-oil(고속도로 주유소), 하이패스 행복단말기, 국민등급 휴게소 등 다양한 제도를 추진하며 거둔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업계 전문가들은 김 사장의 연임이 불투명하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국토교통부나 도로공사가 아닌 정치권 출신으로 주변 시선이 곱지 않았고 국정감사에서는 2016년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에 8000만원(2016년 도로공사 전체 기부금 지출 내역의 35%)을 기부한 것으로 드러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최근 도로공사에서는 김 사장이 내부 인사 작업에 착수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며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연임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인사를 서두르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관장으로서 마지막 보은 인사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후임 사장이 오면 그에 맞는 진용을 짤 수 있도록 인사를 미뤄 주는 것이 관례”라며 “김 사장 본인이 취임할 당시에도 연말에 진행했어야 할 인사를 해를 넘겨 1월부터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왜 서두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도로공사 관계자는 “김 사장이 임원회의에서 그런 지시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보은 인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도로공사는 보통 11월 초, 눈이 오기 전부터 정기 인사를 진행한다.

겨울철 제설 작업에 본격 착수하기 전 내부 인사를 마무리하는 식이다. 이 관계자는 “작업에 투입될 실무자들을 교체하고 미리 준비할 시간을 줘야 제설 작업에도 차질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김 사장의 인사 지시도 이러한 차원에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 ‘최순실 게이트’에 발목 잡힌 마사회
'최순실 늪'에 빠진 공공기관 연말 CEO 인사
마사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명관 마사회 회장의 임기가 12월 4일로 끝나는 가운데 최순실 파문에 얽히며 유명세까지 탔다. 수장의 연임 여부는 올해 안에 결정이 어려워 보인다.

현 회장은 2013년 12월 마사회 회장에 선임됐다. 1941년 제주도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감사원을 거쳐 삼성그룹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후 호텔신라 부사장과 삼성건설 사장, 삼성물산 회장까지 역임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박근혜 캠프의 정책위원으로 참여했고 한때 비서실장 후임설까지 나올 정도로 ‘친박’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현 회장이 취임 직후 낙하산 논란에 휩싸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회장은 눈에 띄는 경영 실적으로 연임 가능성을 높였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는 역대 최고 등급인 ‘A’를 받았다.

공기업 중 최초로 성과 연봉제를 확대 도입하고 연봉 테이블과 정근수당을 폐지하는 등 경영 혁신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사행성 이미지가 강한 경마 사업을 대중적인 레저 스포츠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노력으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매년 실시하는 ‘사행산업 시행 기관 건전화 평가’에서는 ‘A+’ 등급을 획득했다. 이 또한 역대 최고 점수(89점)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순실 논란의 불똥이 현 회장에게 튀었다. 최 씨의 딸에게 승마 훈련을 지원했다는 주장이었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감에서 “현 회장은 2014년 4월 ‘201호 마방’에 말 3마리를 입소시켜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개명 전 정유연)의 훈련을 도왔다”며 “월 150만원의 관리비도 면제하고 별도 훈련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마사회 측은 “대한승마협회가 한국마사회에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대비하기 위해 훈련 장소를 협조 요청한 것으로 특정인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다”면서 “관리비를 면제하고 별도 훈련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는 내용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현 회장이 회장 취임 전에 설립한 연구 단체 ‘창조와 혁신’은 미르재단과 유사한 방식으로 정부의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창조와 혁신’은 창조경제 등을 주제로 한 연구 단체로 2013년 5월 설립됐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설립 허가 전인 4월 17일 정부의 해외 취업 프로그램인 ‘케이무브(K-MOVE)’ 사업의 자문 단체로 선정돼 정부의 예산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최순실 논란과 연관된 각종 의혹들이 현 회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간의 이목이 ‘청와대-최순실-마사회-삼성’간 연결 고리에 집중됐는데 연임 결정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마사회 회장 인선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내부 혼란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연임 ‘안갯속’
'최순실 늪'에 빠진 공공기관 연말 CEO 인사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은 차기 은행장 인선이 사실상 올 스톱된 가운데 하마평만 무성하다. IBK기업은행은 권선주 은행장이 이끌고 있다. 권 행장의 임기는 12월 27일까지다.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권 행장은 임명 당시부터 국내 첫 여성 은행장으로 주목받았다. 탁월한 실적과 리스크 관리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정치권 영입설도 나돌았다. 성과가 있다 보니 연임에 대한 가능성도 높게 점쳐졌다.

하지만 IBK기업은행 내부에서는 권 행장의 연임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정부 입맛에 맞춘 경영을 한다는 지적이었다. 성과 연봉제 도입 과정에서는 노조와 격렬하게 마찰하며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권 행장이 연임과 비연임 사이에서 주춤하는 사이 안팎으로 후임 행장 후보들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후보군은 전·현직 IBK기업은행 임원들 중심이다. 전임 조준희 행장을 시작으로 권 행장까지 IBK기업은행 내부에서 행장이 배출되고 있는 만큼 차기 행장 또한 내부에서 발탁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최근 유력하게 꼽히는 인물은 유상정 IBK연금보험 대표다. IBK기업은행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유상정 대표는 권 행장의 입행 선배로 IBK기업은행에서는 부행장까지 역임하며 조준희 전 행장의 오른팔로 꼽혔다”면서 “IBK기업은행 첫 내부 출신 최초로 행장 자리에 오른 조 전 행장의 입김이 아직도 여전하다”고 귀띔했다.

현역 중에는 이상진·김도진 부행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한때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내정설도 돌았지만 힘을 잃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현 전 수석 내정설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청와대가 제 역할을 못하며 IBK기업은행장 인사도 사실상 ‘올 스톱’ 상태다. 물리적으로 연말 권 행장의 임기까지 가닥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금은 은행장에 출사표를 낸 후보들도 납작 엎드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며 “소위 ‘라인’을 대고 있는 사람들의 거취가 위태로운 가운데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 발등에 불 떨어진 ‘캠코’와 ‘예탁원’
'최순실 늪'에 빠진 공공기관 연말 CEO 인사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와 예탁결제원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신임 사장의 선임이 시급한데 제청권자인 임종룡 위원장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되면서 인사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 홍영만 캠코 사장의 임기는 11월 17일까지다. 지난 10월 4일 마감된 캠코 사장 공모에는 문창용 기획재정부 전 세제실장을 비롯한 4명이 지원했다. 금융위원회는 11월 7일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신임 캠코 이사장으로 문 전 실장을 임명해 달라고 대통령에 제청했다.

문 전 실장은 중동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행정고시 28회 출신이다. 국세청을 거쳐 기획재정부 재산소비세정책관·조세정책관·세제실장을 지낸 뒤 지난 7월 퇴임했다.
'최순실 늪'에 빠진 공공기관 연말 CEO 인사
한국예탁결제원(이하 예탁원)은 이미 사장 자리가 공석이다. 당초 유재훈 사장의 임기는 11월 27일까지였지만 이를 앞당겨 11월 2일 퇴임했다. 유 사장은 지난 9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회계감사국장에 선임되면서 일정이 당겨졌다.

예탁원은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후보를 물색 중이다. 이병래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김용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후보자를 제청하는 금융위원장부터 새로 선임돼야 하는데 인사청문회 등 갈 길이 멀다”며 “자칫 공석 상태가 장기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kbh@hank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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