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폴리틱스]
안철수·도종환 의원, 대기업의 영화 배급·상영업 겸업 금지 법안 발의
野, 대기업 스크린 독과점 제재에 나서다
(사진) 관객들에게 270도 시야를 제공하는 CJ CGV의 다면 영상 시스템 ‘스크린X’. /CJ CGV제공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국내 영화 산업의 불공정한 생태계를 전면 개선하겠다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역대 최대 매출과 관객 수를 경신하고 있는 영화 산업이 일부 대기업의 독점에 의해 불공정한 거래 관행이 고착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과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기업이 영화 배급업과 상영업을 동시에 할 수 없도록 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10월 31일 각각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영화 관련 계열사를 갖고 있는 CJ그룹과 롯데그룹은 직접적인 피해를 볼 전망이다.

◆ “대기업, 영화 배급·상영업 겸영 불가”

안철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대기업이 영화 배급업과 상영업을 겸영할 수 없도록 정하고 영화 관객이 불만 사항을 제기하면 이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즉시 처리하도록 명시했다.

또한 영화 상영업자는 시간·요일별 관객 수, 상영 시간대 등을 고려해 공정하게 상영관을 배정해야 하며 복합 상영관은 동시에 상영하는 영화 중 동일한 영화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비율 이상 상영해서는 안 된다. 영화 상영 시간에 광고나 예고편을 상영해서도 안 된다.

안 의원은 “한국 영화 산업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소 제작자가 큰 성공을 거둬야 하지만 현재 대기업 위주의 불공정한 생태계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며 “영화 산업 분야의 불공정한 생태계 개선을 위해 영화제작자협회와 함께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종환 의원도 안 의원과 뜻을 같이했다. 도 의원의 개정안 역시 대기업이 영화 배급업·상영업을 겸업할 수 없도록 했고 공평하게 상영하도록 명문화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영화발전기금의 용도로 전용 상영관에 대한 지원 사업을 포함하는 한편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를 연간 영화 상영 일수의 60% 이상 상영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다.

도 의원은 “대기업의 영화상영업과 영화배급업 겸업을 규제해 멀티플렉스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해야 한다”며 “제작 예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영화 시장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영화 산업 전반에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영화 관객들의 문화 향유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한 ‘2015년 한국 영화 산업 결산’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 산업 매출은 2조1131억원으로 전년 대비 4.2% 증가해 2년 연속 2조원대를 넘어섰다. 관객 수 역시 3년 연속 2억 명을 돌파하며 2억1729만 명으로 집계돼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처럼 국내 영화 산업은 역대 최고치를 달성하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에 대한 과실은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어 스크린을 독과점하고 있는 대기업이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野, 대기업 스크린 독과점 제재에 나서다
◆업계, “현실 모르는 주장” 반발

이번 개정안에 의해 직격탄을 맞게 된 대기업 계열 대형 멀티플렉스 업체들은 일단 말을 아낀 채 지켜본다는 방침이지만 내심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한 멀티플렉스 직원은 “영화 산업을 전반적인 시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영화제작자협회와 참여연대가 대기업의 상영과 배급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이 영화 산업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설령 법이 통과돼 극장이나 배급사 중 한 곳을 팔아야만 한다면 매물로 나와도 살 수 있는 기업이 국내에 거의 없다”면서 “사모펀드나 중국 업체가 인수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되면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이익 극대화에만 신경 쓰겠지 국내 스크린 독과점 문제 해소에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멀티플렉스 종사자는 “단순히 대기업의 겸업을 금지해 중소업체나 개인 사업자가 영화관을 소유하면 오히려 더 상업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 있다”며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보다 대작 위주로만 상영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영화 산업이 과연 금융업이나 방송업처럼 소유의 제한을 둘 정도로 공적인 관리나 규율이 필요한지부터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면서 “해외 사례를 보면 법으로 영화 상영업과 배급업을 함께할 수 없다고 못 박은 나라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파라마운트 판례가 많이 언급되는데 이는 파라마운트 법이 아닌 1940년대 특수한 상황에서 반독점법에 의해 발생한 사례”라며 “현재 미국에서도 겸업을 금지하는 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다양한 의견에 대해 안철수 의원실은 향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공청회를 열고 업계의 전반적인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밝혔다.

henr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