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 차남 김동만 씨는 G마켓·매일유업 장남 김오영 씨는 신세계서 근무 중 [한경비즈니스=차완용·김현기 기자] 창업자가 사업을 일구고 그룹을 키우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재벌 오너가의 2세와 달리 3세는 태어나면서부터 ‘급’이 다른 인생을 산다.
아낌없는 지원 속에 최고의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가서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회사에서조차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상사가 눈치를 본다.
(사진) G마켓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김호연 회장의 차남 동만 씨. 2011년 제126기 공군 사관후보생으로 임관할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이를 거부한 재벌 오너가 3세들이 있다. 자의든 타의든 이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남의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 이야기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G마켓 근무, 과묵·느긋한 빙그레 차남
그 주인공은 빙그레 오너 3세인 김동만 씨. 김호연 빙그레 회장의 차남이다.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자가 할아버지이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큰아버지다. 외가 쪽으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외증손자이며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외조부다.
이런 배경을 가진 동만 씨는 현재 빙그레 계열사가 아닌 G마켓 마케팅 부서에서 사원으로 2년째 근무 중이다. 기업 오너 3세가 계열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하는 일은 종종 있지만 다른 회사에서 근무를 시작하는 것은 상당히 드물다.
1987년생인 동만 씨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고 2011년 공군교육사령부에서 공군 장교로 복무한 이후 G마켓에 정식 절차를 밟아 입사했다. 인턴 기간을 생략하거나 바로 직함을 다는 등의 특혜도 없었다.
동만 씨의 G마켓 입사는 바로 옆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과묵한 성격에 느긋한 말투가 인상에 남았지 오너가 3세일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는 것.
G마켓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같은 부서가 아니라 잘 알지는 못했지만 동만 씨가 재벌가 3세라는 것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며 “그동안 생각해 왔던 재벌가의 이미지와 상당히 달랐다”고 말했다.
동만 씨는 G마켓에서는 평범한 사원이지만 빙그레의 물류부문에서 분사해 설립된 제때(옛 케이엔엘물류)의 지분 33.33%를 보유하고 있는 엄연한 재벌이다. 형인 동환(33.34%) 씨, 누나인 정화(33.33%) 씨와 함께 100%를 보유 중이다. 제때는 빙그레의 지분 1.96%를 가지고 있는 주주이기도 하다.
동만 씨가 빙그레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해 김호연 회장의 측근들은 “김 회장답다”, “김 회장식 경영 수업이다”라는 반응이다.
특히 김호연 회장이 평소 강조해 오던 “온실 속 화초는 절대 야생초를 이길 수 없다”는 철학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있다. ‘온실 속 경영 수업’만 받다 보면 기업을 마치 개인의 소유물인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져 그만큼 오너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만 씨의 형 동환(1982년생) 씨도 첫 직장으로 언스트앤영(Ernst&Young) 한영 회계 법인에 입사, 인수·합병(M&A) 어드바이저리팀에서 근무했었다. 이후 지금 빙그레 구매팀에서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김호연 회장이 장남 동환 씨를 재무 전문가로, 동만 씨를 마케팅 전문가로 키우기 위해 이 같은 경영 수업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호연 회장은 평상시 식품 분야 사업은 무엇보다 자금 관리와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신세계 근무, 사교력 좋은 매일유업 장남
그런가 하면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도 아들 경영 수업을 외부에서 시키고 있다. 김정완 회장의 장남 오영 씨는 신세계백화점에서 근무 중이다.
2014년 백화점의 인턴사원으로 합격해 6개월 동안 인턴 근무를 마치고 신입 사원으로 발령받았고 신세계백화점 나이키·리복·아디다스·아웃도어 등 해외 유명 스포츠 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MD부서 스포츠 팀에서 근무 중이다.
사실 매일유업은 가족 경영 체제 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영 씨가 납품 거래처인 유통업체에서 말단 사원으로 근무하는 이유는 실전을 쌓기 위해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오영 씨가 유통 대기업 후계자라는 사실은 이미 직원들 사이에서 소문나 있지만 모르는 사람은 오영 씨의 배경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조용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업무 능력이나 사교력이 좋아 팀 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우수 사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영 씨는 매일유업 유아복 계열사인 제로투세븐 지분을 11.39% 보유하고 있다. 매일유업(37%) 및 김정민(창업자 3남, 12.05%) 제로투세븐 회장에 이어 제로투세븐의 3대 주주다.
이 밖에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기선(1982년생) 씨는 2005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학군단(ROTC) 43기로 임관해 육군 특공연대에서 복무하고 2007년 육군 중위로 제대했다.
이후 색다른 사회 경험을 쌓는 데 주력해 1년간 중앙 일간지 인턴기자로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듬해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한 다음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경영 자문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현대중공업 전무로 근무 중이다.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의 장남 박태영 부사장도 외부에서 경영수업을 받아 온 오너가 3세중 한명이다. 창업주 고(故) 박경복 회장의 손자인 박 부사장은 컨설팅업체인 ‘엔플렛폼’에서 팀장으로 근무해오다 하이트진로로 자리를 옮겼다. 보해양조 임지선 부사장 역시 파나소닉, 제일기획 등에서 경험을 쌓은 후 보해양조로 합류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일어나는 재벌 3세들의 외부 경영 수업에 대해 홍성추 한국재벌정책연구소장은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선 오너가 자제들이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빙그레나 매일유업 자제와 같은 경업 수업은 한국 재벌 오너가들이 본받을 만한 사례”라고 말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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