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새 직장을 정확히 파악한 후 ‘신뢰’를 반드시 얻어야 성공 가능
“내가 이러려고 이직했나”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한국인들의 직장 생활에서도 이직은 이제 일상적 현상이 됐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정년퇴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직장도 집처럼 상황 변화에 따라 수시로 바꾼다.

마치 계절이 변하면 옷을 바꿔 입는 것처럼 이직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기업의 경영자들도 직원들이 평생 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직을 전제로 직원을 뽑고 조직을 운영한다.

헤드헌팅 회사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사람들이 직장을 옮기는 과정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직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직을 잘해 커리어가 계속 발전하는 직장인도 있지만 반대로 이직을 잘 못해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직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3년은 일해 보고 움직이는 게 좋아

이직에서 어려움을 겪는 첫째 유형은 옮겨 가는 곳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방송사의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 모든 곳에 다 가보고 싶다. 하지만 막상 프로그램에 소개된 여행지를 가보면 그저 평범한 곳에 불과한 곳이 많다.

홈쇼핑 채널에서 쇼 호스트의 제품 소개를 보고 있으면 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그런데 막상 택배로 날아온 제품의 포장을 뜯는 순간 ‘이게 내가 봤던 그 제품인가’ 싶을 때가 적지 않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옛말처럼 다른 직장이 실제보다 훨씬 좋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

내가 아는 중견기업의 과장도 직장을 잘 모른 채 옮겼다가 낭패를 당했다. 그는 대학 졸업 뒤 회계사 공부를 하다 취업 시기를 놓쳤다. 수없이 이력서를 냈지만 모두 나이가 많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취업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할 시점에 한 중견기업이 그를 채용했다.

그는 처음에 열심히 일했다. 직장 상사들은 그가 빠르게 승진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기 나이에 맞는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3년이 채 안 돼 직장을 옮겼다. 열심히 하면서 성과를 내자 주변에서 손을 내민 것이다. 상사와 동료들이 강하게 만류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런데 그는 몇 달 만에 이직을 만류했던 이전 회사의 상사를 찾아왔다. 자기가 판단을 잘못했으니 다시 받아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가 옮겨 간 회사는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직급이 높아졌고 연봉이 많아지긴 했지만 근무 환경이 열악했고 기업 문화가 너무 전근대적이었다. 그는 도저히 그 회사에서 장래를 도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옮겨 가는 회사에 대한 정보를 잘못 파악해 이직에 실패하는 이도 많다. 이직에 관심을 갖는 시기는 대개 현재의 직장 생활에 불만을 가질 때다. 따라서 냉정한 판단이 이뤄지기 어렵다. 가끔 감정이 격해져 충동적으로 이직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충동적 이직이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재 맡은 일을 잘 모르는 것도 이직 과정에서 정보를 잘못 판단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일정한 시간 동안 업무에 충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변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이런 눈을 갖고 있어야 자신이 언제 어디로 어떻게 옮길지 판단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한 회사에 최소 3년은 근무한 뒤 이직을 추진하라”고 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년 정도 지나야 자신의 다음 커리어를 보는 눈이 만들어진다.

이직에서 실패하는 둘째 유형은 옮겨 간 직장에서 쉽게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으로 직장을 옮겨도 새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런데 직장에서 적응하려면 동료들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이들의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조직에서 성장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직할 때 자신이 옮겨 간 직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신뢰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머리로부터 시작되는 인지적 신뢰다. 인지적 신뢰는 사람의 업무 지식과 기술·성과·책임감·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업무를 빠르고 완벽하게 처리하고 지적이고 수미일관하다면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정서적 신뢰다. 이것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친밀감·공감·우정처럼 어떤 사람과 가까워졌을 때 생긴다. 내가 상대방에게 갖고 있는 감정을 상대방도 나에 대해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 신뢰감이 만들어진다.

직장에서 필요한 신뢰는 기본적으로 인지적 신뢰다. 따라서 인지적 신뢰를 빨리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이직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학력이나 경력, 업무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옮겨 간 직장에서 인지적 신뢰를 빨리 얻기 어렵다.

특히 브랜드가 강한 기업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옮겨 간 직장에서 전 직장의 후광이 사라진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입사 과정에서 전 직장의 브랜드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옮기고 나면 거품은 금방 걷힌다. 따라서 자신의 맨얼굴로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에 업무 능력이 뒤지면 신뢰를 얻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정서적 신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직장을 옮기는 데 신중해야 한다.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이나 옮겨 갈 회사의 기업 문화가 폐쇄적이라면 정서적 신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정서적 신뢰를 얻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신뢰는 기업에 따라 중요성이 달라진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로이 추아(Roy Chua) 교수가 중국인과 미국인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인과 중국인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비즈니스에서 미국인들은 인지적 신뢰와 정서적 신뢰를 엄격하게 구분한 반면 중국인들은 두 가지 형태의 신뢰를 연결해 파악하고 있었다.

추아 교수는 “미국인은 업무와 감정을 구분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중국인은 정서적 신뢰와 인지적 신뢰가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따라서 비즈니스 관계일수록, 서구 문화가 강할수록 인지적 신뢰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움직이는 시기’가 무엇보다 중요해

이직에 실패하는 셋째 유형은 시기를 잘못 고르는 사람들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직에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상황에 밀려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성급하게 이직하다가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고 재느라 너무 시간을 끌다가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도 이들 못지않게 많다.

대표적인 것이 30대 후반, 40대 초반 직장인들의 ‘영입형 이직’이다. 영입형 이직은 현재의 직장 생활에 큰 문제가 없지만 다른 회사가 영입을 제의해 이직하는 것이다. 30대 중반에 접어들면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성과를 잘 내는 직장인들은 종종 영입 제안을 받는다.

그런데 헤드헌터나 회사의 인사 담당자들이 영입 제안을 하면 거두절미하고 거절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심지어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고 무턱대고 거절할 일은 아니다. 이 기회에 자신의 현재 상황과 미래를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특히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직장인이라면 자신이 어디에서 임원을 할 것인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기업에서 임원이 되지 못하면 장기근속이 어렵다. 정년이 60세로 연장됐지만 임원으로 승진하지 않고 정년까지 직장 생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임원으로 승진한 동기나 후배 밑에서 지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직간접적으로 임원 승진이 안 된 사람들에게 퇴사 압력을 가한다. 따라서 임원이 될 곳을 찾아 그곳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현재의 직장에서 임원 승진이 어렵다면 당연히 직장을 옮겨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직장인들이 “아직 먼 얘기인 만큼 지금부터 고민할 일이 아니다”라거나 막연하게 “나도 임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령 임원이 안 되더라도 그때 가서 이직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대개 40세 전후가 되면 본인만 모를 뿐 자신의 임원 승진에 대한 사내 평가는 거의 내려져 있다. 이 평가는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내려진 것이어서 웬만큼 노력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누군가 영입 제안을 하면 냉정하게 자신의 임원 승진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게 좋다.

◆손정의 회장의 성공 비결 ‘승률 70%’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너무 일러도 안 되지만 너무 늦어도 안 된다. 그렇다면 언제가 적기일까.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승률이 70%일 때”라고 말한다. 그는 왜 70%인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승패의 확률이 반반일 때 싸움을 거는 자는 어리석다. 승률이 10%나 20%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반대로 승률 90%가 70%보다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승률이 90%가 됐을 때 움직이면 너무 늦기 때문이다. 승률 90%를 추구하면 이론상으로 싸움의 진영을 완벽히 갖출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용기를 내 참전했을 때 이미 싸움이 끝난 뒤일 수 있다.”

이직도 마찬가지다. 성공 가능성이 낮으면 물론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70%까지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이 80~90%로 높아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생각도 현명하지 않다. 그 때 시작하면 너무 늦어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높다. 문이 닫힌 뒤 뒤늦게 문을 두드리는 꼴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공 확률은 어떻게 판단할까.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도 정확한 정보를 구하기는 참 어렵다. 그런 점에서 객관적 판단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하겠지만 결국 판단은 본인이 할 수밖에 없다. 손정의 회장은 이렇게 강조한다.

“승률 70%는 자신의 주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 이제 승률이 70%는 되겠구나’라고 혼자 생각하고 그대로 믿어버릴 때가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 경솔하게 70%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틀림없이 70% 이상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어쩌면 70%일지도 몰라’가 아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같은 결론이 나오는 그런 70%여야 한다. ‘이 정도면 70%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하면 안 된다.”

(일러스트 = 전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