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시대를 넘는 지름길은 책…‘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 [한경비즈니스=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지속적인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출판사마다 출간 계획을 축소하느라 전전긍긍이다.
갈수록 책 읽는 사람들이 줄고 책은 외면 받는다.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지만 주목받는 책은 쏠려 있고 대부분의 책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숨을 거두는 일이 예사다.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을 보는 일
그러나 시장을 탓하며 독서하지 않는다고 불평만 할 게 아니다. 차라리 책 읽으라는 말은 아예 빼버리자. 먼저 기꺼이 고독할 수 있도록 깨우쳐야 한다. 책은 혼자 있을 때 가까이 한다.
고독과 고립을 분별하지 못하니 책을 멀리한다. 고독은 자율적 고립이고 고립은 타율적 고독이다. 책을 읽는 전제 조건 혹은 상황은 바로 혼자 있을 때다. 삶을 성찰하면 책을 찾는다.
파블로 네루다의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라는 시구에 사람들이 격하게 공감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람한 삶에 대한 반성과 회한일 것이다.
그 실마리를 이어 주는 구절 하나가 무딘 감성과 본성을 깨운 것이다. 그게 책의 힘이다. ‘나였던 그 아이와 나인 그 아이’를 이어 주는 도반이 바로 책이다.
고독을 스스로 선택하고 성찰하며 자연스럽게 책과 다시 친해질 수 있으면 된다. ‘책을 읽자’, ‘책을 읽어라’만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세상이 흔들릴 때 나마저 그 물결에 휩싸여 이리저리 방황하면 ‘나’를 잃어버린다. 이것보다 슬픈 일은 없다. 책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베스트셀러에 현혹될 필요 없어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에 따른 지식과 정보의 습득도 필수적이다. 가장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책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특히 지금처럼 불안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계속 이어지는 세상에서 책만큼 중심을 잡게 해주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책을 읽어야 한다. 불경기여서 책을 멀리 하는 게 아니라 불경기일수록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불경기여서 독서 인구가 줄었다는 것은 패배주의의 다른 변명이다. 불경기일수록 책을 읽어야 앞날을 열 수 있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며 제 삶을 채워 갈 수 있다. 이런 인식에 닿으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불경기야말로 독서 인구 증가의 기회일 수 있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걸 깨우쳐야 한다.
출판계도 계속 방어적으로 경영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시장성 있는 책만 펴내 돈 벌 궁리만 하면 퇴행을 거듭해 결국 문을 닫게 된다. 책이 읽히려면 물론 내용이 충실해야 하지만 단순한 트렌드만 재고 따질 게 아니라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미래 의제를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내는 책에 집중해야 한다.
자신과 세상을 연결해 주는 통로를 마련하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나라 밖의 현실을 너른 눈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저작과 출간에 충실해야 한다. 독자 또한 흥미나 유행에 휩쓸려 혹은 베스트셀러에 혹해 책을 고를 게 아니라 내용이 충실하고 자기 삶을 성찰하며 미래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과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검색에서 사색으로
책은 세상을 읽어 내고 짚어 내는 창이다. 그것은 또한 삶을 웅숭깊게 성찰하는 가장 가까운 도반이다. 검색의 회오리 속에 책이 실종됐다고 탓만 할 일이 아니다. 검색보다 사색이 훨씬 더 유용하다는 걸 깨우쳐야 한다. 그건 어설픈 계몽이 아니다. ‘검색에서 사색으로!’ 그것이 지금 우리의 중요한 명제다.
조용하고 의연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그런 사람이 삶을 바꾼다. 그 동행이 바로 책이다. 책이 길이다. 그런 책 세상을 꿈꿔야 한다. 무람한 꿈이 아니라 곧 현실로 만들어 낼 꿈이라고 믿는 한 그 꿈은 이뤄질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책을 읽을 틈이 없다거나 재미있는 게 널렸는데 지루하고 딱딱한 책을 누가 읽겠느냐고 타박할 일이 아니다. 그 재미있는 게 내 삶을 변화시키는지 스스로 물어보라. 그 순간은 흥미를 만끽할지 모르지만 남는 게 없고 그것이 미래의 자기 삶을 진화시키지도 않는다.
우선 독서의 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처음부터 빨리 달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일단 일정한 속도가 붙으면 그다음에는 가속의 힘으로 내달린다. 우선 짧게 끊어 읽을 수 있으면서도 내용이 충실한 책을 골라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토막토막 읽는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생산적이다.
그런 책을 토막토막 읽으면서 틈틈이 사유와 사색의 재료로 사용해 본다. 단순하게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의 사고와 판단을 연결해 다양하게 음미하고 입체적으로 해석해 본다.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어제보다 나은, 작년보다 나은 삶을 채워야 한다. 그 동반자이자 가이드가 책이다. 작년보다 딱 두 배의 책을 읽어보자. 그렇게 한 해를 채우면 분명 이 해를 마감할 때 뿌듯함과 성장의 결실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올해는 책 한번 제대로 읽어보는 정유년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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