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에 투자하는 사람들…‘유니온’ 허수영 이사 & 성민 책임심사역 (사진) 허수영 유니온투자파트너스 투자2본부 이사(왼쪽), 성민 유니온투자파트너스 투자2본부 책임심사역. /길덕 이노션 미디어컨텐츠팀장
[한경비즈니스= 길덕 이노션 미디어컨텐츠팀장] 콘텐츠업계의 2017년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2016년 늦은 가을 시작된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 : 한류를 금지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으로 콘텐츠 투자에 대한 불안감이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은행 등 국내 콘텐츠 투자 기관은 영화나 드라마에 투자할 때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염두에 둬 왔다.
하지만 올해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차이나머니의 국내 투자 역시 관망세로 돌아섰다. 여기에 현실 정치가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복잡하고 반전이 있어 사람들이 문화 콘텐츠에 관심을 덜 갖는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지만 국내 콘텐츠 투자업계는 오히려 차분하다. 국내 콘텐츠 시장을 산업화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던 벤처캐피털 종사자들은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의 흐름을 차분히 살펴보면서 어떤 콘텐츠와 기업에 투자할지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하고 있다.
◆콘텐츠 투자 활성화의 중심 ‘유니온’
한국의 콘텐츠 투자가 산업적으로 체계화된 것은 2006년부터다. 2006년 정부의 콘텐츠 산업 육성기금이었던 문화산업진흥기금이 폐지되면서 남아 있던 500억원이 한국모태펀드(fund-of-funds)에 납입됐다.
모태펀드는 기업에 직접 투자하기보다 개별 펀드(투자조합)에 출자해 직접적인 투자위험을 줄이며 수익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펀드다.
외국에서는 민간 투자 기관이 만들어 운영하는 반면 한국의 모태펀드는 정부가 출자해 운영된다. 2005년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에 따라 설립된 한국모태펀드는 중소기업진흥공단·문화체육관광부·특허청·영화진흥위원회·미래창조과학부·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이 출자해 이들이 관장하는 산업 분야에 투자된다.
그 운영은 ‘한국벤처투자(주)’가 맡는다. 콘텐츠 산업은 문화 계정, 영화 계정 등을 통해 투자돼 육성된다.지난해 1월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5년 말까지 문체부는 모태펀드의 문화 계정 및 영화 계정에 총 5181억원을 출자했다. 이를 통해 총 66개 투자조합이 결성됐고 그 규모는 1조4166억원에 이른다.
유니온투자파트너스(이하 ‘유니온’)는 영화·애니메이션·뮤지컬 등 콘텐츠 및 유관 기업 투자에 집중하는 벤처캐피털이다. 2000년 소빅창업투자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회사는 현재 9개 펀드 24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 중이다.
이 중 일반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펀드 1개, 콘텐츠 관련 기업 투자에 집중하는 펀드 1개를 제외한 7개는 콘텐츠 전문 펀드다. 이 중에는 해외 진출 글로벌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결성된 유니온글로벌콘텐츠투자조합도 있다.
이 회사가 최근 몇 년간 투자한 작품은 영화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터널’, ‘검사외전’, ‘내부자들’, ‘베테랑’, ‘암살’, ‘설국열차’, 뮤지컬 ‘레미제라블’ 등이다. 대부분이 작품성과 흥행에서 좋은 성과를 보였다.
유니온의 투자2본부에서 일하는 허수영 이사와 성민 책임심사역은 올해로 7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 특히 영화 분야 투자의 전문가로 업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허 이사는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영화 산업은 전통적으로 콘텐츠 투자사들의 투자 비율이 가장 높은 분야로, 국내 상업 영화의 경우 제작비의 50% 이상을 벤처캐피털 투자가 감당하고 있다. 국내 상업영화의 평균 순제작비는 2014년 말 기준 43억8000만원에서 2015년 말 기준 56억원으로 훌쩍 뛰어올랐고 총제작비(순제작비에 마케팅 비용이 포함된 전체 비용) 기준으로 100억원 정도는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제작비 상승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성 책임심사역은 “대작 영화의 흥행 확률이 통계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배급사들과 투자사들 모두 대작 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이사는 지금까지 영화·드라마 등 콘텐츠와 관련된 한길만을 걸어 왔다. 싸이더스에서 사업기획 등의 일로 콘텐츠 업무를 시작했고 롯데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팀에서 일하며 영화 투자 관련 업무를 시작했다. 2008년부터 유니온에서 영화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드라마·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 투자 업무를 진행했다.
성 책임심사역의 경력은 좀 색다르다. 미학(美學)을 전공하고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일하던 갤러리가 어려워져 새로운 직장을 찾다가 콘텐츠 투자에 집중하는 유니온에서 일하게 됐다.
그림과 영화를 고르는 일의 공통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예술품은 뛰어난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가 어렵지만 그 수익성이 높아지듯이 영화도 초기 단계에 투자하거나 신진 감독들과 일해 성공하면 수익률이 높아진다. 반면 검증된 작가와 감독은 투자할 여지도 많지 않고 수익성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유니온은 초기 단계의 영화나 감독을 발굴해 키우는 데 강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 유니온투자파트너스 콘텐츠 투자 과정. /유니온투자파트너스 제공
이 회사의 콘텐츠 투자 과정은 단계별로 적용된다. 성 책임심사역은 “심사역들이 투자할 만한 콘텐츠를 발굴하거나 제안을 받게 되면 각 본부별로 1차 스크린을 한다”며 “이때 투자가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서면 내부(예비)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쳐 본 투자심의위원회를 통해 최종 투자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허 이사는 “내부 ‘투심’을 통해 한 번 더 내부적으로 우수 콘텐츠에 대해 검증한다는 점, 지금까지 축적된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를 검토한다는 점이 유니온의 차별화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이런 프로세스를 구축할 때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고 이런 프로세스를 거쳤어도 모든 콘텐츠나 기업이 성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콘텐츠의 흥행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초기 기획 단계에 투자한 작품이 출시되지 못하고 제작 단계에서 무너지거나 제작을 완성하고도 유통하지 못하면 초기 투자를 결정한 것 자체를 후회하며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성 책임심사역은 “이런 경험들이 다음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에 실패 이후에도 의사 결정에서 위축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허 이사도 “투자했던 콘텐츠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힘들지만 이보다 믿고 투자했던 피투자 기업이나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깨졌을 때 가장 속상하다”며 “그때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되돌아보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실패의 고통만큼이나 투자가 성공할 때 오는 성취감도 크다. 허 이사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제작 투자 구조였던 ‘설국열차’에 1200만 달러의 투자를 집행한 일과 한중 합작영화로 성공적인 박스오피스 성적을 기록한 ‘이별계약’ 투자를 원활히 마무리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성 책임심사역은 유니온이 프로젝트 기반의 콘텐츠 투자뿐만 아니라 콘텐츠 기업에도 투자하는 방향으로 벤처캐피털이 변화하는 과정에 기여한 데서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2013년 유니온이 컴퓨터그래픽(CG) 및 시각특수효과(VFX) 기업인 덱스터에 초기 투자를 단행한 이후 프로젝트 투자와 기업 투자를 병행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벤처캐피털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니온은 현재 CG·VFX 기업 및 프로젝트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도 운영 중이다. (사진)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왼쪽), 영화 '설국열차' 포스터.
◆“중국발 리스크, 의존성 줄여야”
그러면 좋은 콘텐츠는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허 이사는 “결국 콘텐츠는 보통 사람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며 “흥미와 재미를 줄 수 있는 여러 요소 중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차별화해 전달하는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성 책임심사역은 “잘 짜인 이야기는 보편적인 즐거움을 내재하고 있다”며 “오히려 억지로 만든 갖가지 장치들이 즐거움이나 감동을 방해할 때가 많다. 화려한 출연진과 연출, 막강한 마케팅과 배급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작품들은 심심해서라기보다 너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야기의 균형이 깨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올해 콘텐츠 시장이 중국발 리스크로 성공에 한계가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두 사람은 이런 위기는 사실이지만 이에 맞춰 우리 업계가 변화할 것이고 그 속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 이사는 “콘텐츠 산업에서 중국이란 국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2016년 증명된 만큼 향후 중국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이나 의존성을 줄이고 다른 아시아로의 진출에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스마트 미디어 환경의 확산,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으로 콘텐츠 산업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새로운 분야가 나타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다중 채널 네트워크(MCN) 사업 등 신규 콘텐츠 및 유관 사업에 대한 수익성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고 영화·드라마 등 전통 콘텐츠의 제작비가 굉장히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수익성 있는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 책임심사역은 “한류 금지는 전반적으로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 다수 의견이지만 무분별한 중국 지향 프로젝트는 사라지고 동남아 등 해외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하지만 당장 중국을 대체할 만한 시장을 바로 찾기 어렵기 때문에 우량한 콘텐츠 제작 업체도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벤처캐피털업계에 좋은 투자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앞으로 투자의 사각지대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 허 이사는 “지금은 여성 심사역들이 많이 늘었지만 아직 창업 투자회사에서 여성 심사역들의 비율이 낮은 편이고 임원급에 있는 인력의 비율은 더 낮다”며 “여성 심사역으로서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향후 목표”라고 밝혔다.
성 책임심사역은 “마이너 장르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어 수익을 내고 싶다”며 “예전에는 유니온에서 만화나 웹툰에 투자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지금 웹툰이나 웹툰 플랫폼이 유망 투자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한 시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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