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주마저 외국 선사 이용 비율 높아져…바닥 떨어진 신뢰도 회복 급선무 (사진) 지난해 9월, 한진해운 사태로 빚어진 물류 차질을 해소하기 위한 현대상선의 첫 대체 선박 현대 포워드호가 부산 신항에 입항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세계 7위 선사 한진해운의 도산은 국내 해운업계에 큰 충격을 불러 왔다. 이후 현대상선은 KDB산업은행 휘하로, 일자리를 잃은 한진해운 직원들은 새로운 원양 선사에 둥지를 틀게 됐다.
언뜻 보기엔 진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 해운 산업의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기대 못 미친 현대상선의 2M 협력 수준
세계 1위 얼라이언스 2M(머스크라인·MSC) 가입은 KDB산업은행의 현대상선 구제에 가장 큰 조건이었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현대상선의 2M 가입은 ‘반쪽’에 그친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12월 12일이 돼서야 2M과의 협력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 협력안에는 얼라이언스 선사들이 시행하는 ‘선복 공유’가 포함되지 않았다. 그 대신 2M 선사와 현대상선은 선복 교환, 선복 매입과 유사한 방식을 택했다. 다소 소극적인 협력이다.
현대상선은 또 지난 1월 3일 흥아해운·장금상선과 함께 ‘HMM+K2 컨소시엄’을 결성했다. 이들 세 선사는 일본·중국과 동·서남아시아 전체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이번 협력 방안은 기존의 공동 운항을 벗어나 다양한 협력 형태와 협력 구간, 항만 인프라 공동투자까지 포함하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선복을 공유함으로써 화주들의 근해 항로 노선 이용 범위가 더 넓어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세계 선사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워 나가는 추세다. 현대상선·흥아해운·장금상선의 컨소시엄 결성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선사들이 힘을 합쳐 위기를 헤쳐 나가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선주협회 회원사인 세 선사가 협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 해운의 발전을 위해 컨소시엄 홍보를 도맡았다”며 “원양과 근해 선사 간에 이뤄진 최초의 협력으로 향후 한국 해운의 경쟁력 강화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또 한 곳의 한국 원양 선사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한진해운의 미주 노선을 낙찰 받은 SM(삼라마이더스)그룹의 신설 컨테이너선사 SM상선이다.
SM상선은 한진해운의 미주 노선을 직접 인수한다. 인력의 99%가 한진해운 직원들로 이뤄졌다. 지난 1월 8일 신규 인사 발령을 내는 등 오는 3월부터 본격적인 영업에 나서기 위한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1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규모)에서 6500TEU급까지 12척의 선박을 확보해 사선(선사가 소유) 및 용선(타사에서 임대) 형태로 운항한다. 아주와 미주 영업부를 운영할 예정이다.
SM상선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SM상선 측은 기존 한진해운의 미주 노선과 영업 인력을 그대로 흡수했기 때문에 원양 항로 운영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해운업계 관계자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세계 원양 선사들은 얼라이언스를 통해 협력 범위를 넓히는 추세다. SM상선은 HMM+K2 컨소시엄 가입을 추진 중이지만 이는 아시아 역내 항로에서의 협력에 불과하다. 원양 항로 얼라이언스에 가입하지 않은 신규 선사가 화주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우려 섞인 시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원양 선사를 운영하기 위해선 용선료, 법인 운영비, 항만 이용료 등 소요비용이 많다”며 “SM상선이 과연 운임만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가 관심”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물류업계 종사자는 “SM상선은 해외 선사와 경쟁해야 하는 미주 노선보다 아시아 노선에 집중해 수익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머스크, 거대 선사 인수로 몸집 키워
해외 선사들은 얼라이언스를 넘어 이제는 M&A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세계 1위 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은 세계 7위(한진해운 포함하면 8위)인 독일의 함부르크수드를 인수한다.
함부르크수드 인수로 머스크라인의 선복량은 326만TEU에서 386만TEU로 증가하게 된다. 일본 컨테이너 선사인 NYK, MOL, K라인도 컨테이너 부분을 합병해 세계 5위로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이처럼 해외 선사들이 연합하고 있는 마당에 또 하나의 신규 원양 선사가 생긴 국내 해운 상황은 거꾸로 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세계 7위 선사를 해체하고 신규 선사를 만든 정책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전문가들 또한 선사의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1월 6일 열린 ‘2017 해양수산 전망대회’에서 김태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정책연구실장은 “해외처럼 우리도 대형 컨테이너선사를 집중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 해운사들의 사례처럼 M&A 지원을 정부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KDB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된 현대상선, 같은 시기 법정 관리 신세가 된 한진해운 등 국내 원양 선사들은 지난해부터 큰 부침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화주들에게 국내 선사의 이미지는 끝없이 추락했다. 해외 화주들은 세계 7위 선사(한진해운)가 한순간에 사라진 데 대해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지난해 ‘한진해운 사태’를 겪으며 현대상선 또한 해외 화주들로부터 우려의 시선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대주주가 KDB산업은행으로 바뀌면서 분위기가 반전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내 화주들은 한국 선사의 빠른 수송과 친절한 서비스에 높은 점수를 주고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왕이면 우리 선사를 이용하자’는 인식이 남아 있기도 했다.
한국선주협회는 현재 국내 화주들의 한국 정기선사 이용 비율을 20%로 파악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선사들이 얼라이언스를 결성하며 국내외 선사 간 선복 및 노선 공유가 자유로워졌다. 이때부터 외국 선사를 이용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졌다.
반면 부정기선은 여전히 국내 선사를 이용하는 비율이 80%로 높은 편이다. 석탄이나 기름 등 에너지 원료를 수출해야 하는 공기업은 대부분이 국내 벌크 선사를 이용하고 있다.
덩치가 커진 세계 선사들과의 경쟁, 한진해운 사태로 흠집 난 이미지 극복 등 국내 원양 선사는 향후 더 거센 파도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진해운 사태가 몰고 온 해운업계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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