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 쫄깃한 콘텐츠 비즈니스 이야기 ⑧]
콘텐츠에 투자하는 사람들… 유동기 타임와이즈 수석심사역
“불황에 피는 콘텐츠를 주목하라”
(사진) 유동기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 투자 2본부 수석심사역.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 제공

[한경비즈니스=길덕 이노션 미디어컨텐츠팀장] 지난해 1월 콘텐츠 투자업계에 작은 술렁임이 있었다.

출판사 인플루엔셜이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이하 타임와이즈)와 미래에셋벤처투자로부터 각각 10억원, 20억원을 투자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타임와이즈는 ‘TW14호 문화콘텐츠투자조합’을 통해 인플루엔셜이 출판한 ‘미움받을 용기’에 2억원을 투자했다.

이 책은 2015년 베스트셀러 중 하나로 타임와이즈에 6배에 달하는 수익을 안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은 지금도 계속 팔리고 있어 투자 수익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없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종이책에 대한 투자 결정도, 이를 통해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도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더 나아가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모바일 시대에 종이책 출판사에 대한 투자 역시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 투자를 주도했던 타임와이즈의 유동기 수석심사역(이하 수석)은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면을 꿰뚫고 있는 듯했다.

◆바닥에서 가능성을 보다

“인플루엔셜은 출판사로 알려졌지만 국내외 강사들을 섭외해 기업들이나 교육기관에서 강의할 수 있게 해주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어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네트워크가 다른 출판사들보다 강해요. 그뿐만 아니라 강연 수요나 트렌드를 항상 잘 알고 있으니 인기 있을 만한 콘텐츠를 발굴하는 데도 비교 우위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유동기 수석은 이에 더해 도서정가제 실시, 일부 대형 출판사의 경영 악화 등 출판업계의 변화가 중소 출판사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투자 배경을 추가 설명했다. 도서정가제 덕분에 과도한 가격 경쟁이 줄고 중소 출판사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대형 출판사들은 모기업의 경영 악화로 사업 자체가 위축되기도 했고 횡령·배임·표절 등으로 논란에 휩싸인 출판사도 더러 있었다. 이들 회사의 우수 인력이 시장에 나오면서 중소 출판사에도 채용의 기회가 생겼다.

“대개 출판 시장이 죽었다고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는 출판사에 대한 굵직한 인수·합병(M&A)이 일어났어요. 디지털과 모바일화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플랫폼이 계속 늘어나면서 지식재산권(IP)은 시간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출판사 역시 이러한 IP를 계속해 생성해 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죠.”

실제로 중국 출판 기업인 풍황미디어는 2014년 미국 PIL(Publications International, Ltd)의 아동책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2015년에는 텐센트가 중국 온라인 출판업계 1위 성다원셰를 인수했다. 이러한 거래 모두 IP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공인회계사인 유 수석은 콘텐츠 투자만 15년 가까이 하고 있다. 그는 대성그룹 공채 출신으로 이 회사가 2002년 대구창업투자를 인수하면서 콘텐츠 투자를 시작했다.

이후 영화 제작사이자 투자 배급사인 쇼이스트로 옮겨 각종 투자 업무를 진행했다. 2007년에는 타임와이즈의 전신인 CJ창업투자로 옮겨 지금까지 투자 업무를 하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 사업을 하고 있는 CJ그룹의 관계사로 콘텐츠 투자에 대한 기회가 많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현재 타임와이즈는 콘텐츠 투자뿐만 아니라 바이오·의료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유 수석은 지금까지 영화·드라마·공연·게임·도서 등에 투자해 왔다.

그가 투자했던 작품으로는 영화 ‘올드보이’, ‘범죄의 재구성’, ‘말아톤’, ‘괴물’, ‘마더’, ‘아내가 결혼했다’와 드라마 ‘경성스캔들’, ‘식객’, ‘계백’ 그리고 공연 ‘지킬 앤 하이드’, ‘그리스’, ‘오페라의 유령’, 애니메이션 ‘넛잡 땅콩 도둑들’ 등 30편이 훌쩍 넘는다.

◆투자의 관점에서 본 콘텐츠

15년을 한 분야에 종사했으니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채우고도 남을 법했다. 그가 깨우친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투자의 관점에서 콘텐츠의 특징에 대해 물었다.

“영화와 게임은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 크기 때문에 투자자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선호합니다. 물론 리스크도 크죠. 반면 방송 드라마 시장은 규모는 크지만 방송사들 위주의 시장이어서 투자자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특히 드라마 제작사는 IP에 대한 권한이 적어 추가적인 수익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어요.”

리스크에 대한 부가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특히 최근 한중간 ‘사드 배치’ 논란으로 불거진 ‘한한령(限韓令 : 한류를 금지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을 예로 들었다.

“IP를 확보해 추가 수익이나 부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드라마 제작사들이 사전 제작(드라마가 특정 방송사에 편성되기 전에 촬영 및 편집을 마치는 것)을 시도하고 있어요. 사전 제작은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편성이 안 되거나 해외에 판권이 팔리지 않으면 리스크가 매우 크죠. 특히 요즘에는 ‘한한령’ 때문에 가장 큰 시장인 중국 진출이 어려워 사전 제작도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전 제작을 준비하던 몇몇 드라마들이 방송사에 편성이 확정된 후 제작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드라마는 한 나라에서 방영되고 나면 다른 나라에 어떻게든 전달되기 때문에 드라마 콘텐츠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기 마련이다. 즉 한국 시장에서 방송된 드라마는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중국 시장에서 급격히 가치가 하락해 헐값에 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의 영향으로 드라마 시장은 당분간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올해 한국벤처투자가 모태펀드를 통해 드라마 펀드를 여러 개 조성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펀드를 통해 국내 드라마 시장이 침체되지 않고 잘 견뎌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 그는 출판 시장과 공연 시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먼저 출판은 시장 규모가 크고 리스크도 작지만 책을 출판하는 데 큰돈이 들지 않는다. 출판사들이 스스로 자금을 마련해 출판하기 용이하기 때문에 금융자본이 투자할 여지가 크지 않다. 판권이 비싼 책이거나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투자 규모가 큰 서적에나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공연 시장은 현재 전 방위로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창작 공연들이 기획되고 있지만 관객들의 호응이 좋은 편은 아니고 해외 유명 공연의 라이선스 작품은 이미 들어올 만큼 들어와 참신성이 떨어지고 로열티 때문에 수익성도 좋지 않아요. 게다가 공연장이 부족해 시장 자체의 성장에 한계가 있죠.”

‘쓰릴 미’, ‘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등과 같이 두 명만 출연하는 뮤지컬이 주목 받고 있는 것은 이런 시장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시도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콘텐츠에 대한 통찰력이 생겼지만 유 수석에게도 투자 업무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투자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도 힘들지만 사후 관리가 더 어렵습니다. 특히 콘텐츠 기업들은 대부분이 규모가 작아 체력들이 약하죠. 투자를 잘해 수익이 났는데도 나중에 정산 받기가 어려울 때가 있어요.”

최근에는 특수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지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인 특수목적법인(SPC)이 보편화하면서 이러한 리스크가 줄어든 편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항상 사고의 가능성이 있다.

“정해진 원칙대로 투자 및 정산 절차를 진행하며 사후 관리를 하고 있어요. 특히 해외 계약은 나라별로 규제나 법규 자체가 달라 이에 대한 검증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현지 파트너십을 맺고 부족한 부분들을 해결해야 하죠.”
“불황에 피는 콘텐츠를 주목하라”
(사진) 유 수석이 투자한 영화 ‘올드보이’(왼쪽)와 3D 애니메이션 ‘넛잡 땅콩 도둑들’.

◆콘텐츠 시장, 불황 파고 넘으려면

좋은 콘텐츠를 고르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그는 ‘콘텐츠의 재미’를 우선으로 꼽았다.

“원천 소스가 재미있어야 다른 콘텐츠로 변화하더라도 그 재미를 유지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새로운 구조를 갖고 있는 콘텐츠에 더 큰 흥미와 재미를 느낍니다. 하지만 새로운 소재나 구조의 콘텐츠를 찾기가 쉽지 않죠. 익숙한 구조의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이나 사회 상황에 어울리게 재구성하는 게 재미를 줄 수 있어요. 최근 드라마 ‘도깨비’나 ‘푸른 바다의 전설’은 소재를 전래동화에서 가져왔지만 현실에 어울리게 캐릭터를 변형했고 이런 점들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 같아요.”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콘텐츠와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점에 대해서도 물었다. 유 수석은 꿈을 꾸는 젊은이들에게 해외시장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선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흐름을 알아야 해요. 한국이 한류(韓流)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콘텐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흐름을 잘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고민들이 필요합니다. 특히 최근 각광받고 있는 1인 콘텐츠도 이런 흐름을 이해하고 개개인의 크리에이티브 능력을 키운다면 세계무대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있어요.”

그는 유튜브나 아마존의 동영상 서비스가 지속 성장하고 있어 1인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 밖에 인공지능에 기반을 둔 콘텐츠도 성장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준비한다면 앞으로 콘텐츠 산업에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유 수석은 2017년 콘텐츠업계에 대해 전시와 영화 분야가 선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황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시나 영화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다중 채널 네트워크(MCN) 사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MCN 사업자들에게 새로운 성장 엔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다양한 사업자와의 협업을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있는 과정이에요. 올해 MCN 시장에도 좋은 방향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유 수석은 콘텐츠 투자는 좋아 시작한 일이지만 더 큰 성장을 위해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콘텐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투자까지 역량을 확장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요즘 인기 있는 마스크팩에 미디어 콘텐츠 속 캐릭터를 활용한 사업을 진행한다면 마스크팩도 잘 알고 캐릭터도 잘 이해해야만 성공할 수 있어요. 이렇게 콘텐츠와 산업을 융합해 볼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