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 ‘어중간한 투자는 독(毒)’…적극적 정책 목표와 실행 계획 세워야
한국선박해양의 심폐소생술 성공할까
(사진) 현대상선이 보유하고 있는 최대 선박 현대드림호(1만3100TEU급). /현대상선 제공


[한경비즈니스 =이명지 기자]사상 최대 위기에 부닥친 한국 해운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팔을 걷었다. 첫걸음은 이른바 한국형 선박은행으로 불리는 ‘한국선박해양’의 출범이다. 해운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현대상선 지원책, 2월 중순 모습 드러나

한국선박해양 설립준비사무국은 지난 1월 24일 발기인 총회를 열고 한국선박해양(주)을 설립했다.

당초 ‘한국선박회사(가칭)’로 알려졌던 한국선박해양은 정부의 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핵심이다. 해운업계의 부진으로 최대 난국을 마주한 국적 해운사를 지원하자는 목적이다.

한국선박해양은 해운사 소유 선박의 인수 및 재용선, 선박 장부가와 시장가 차이에 대한 지분 투자에 나선다. KDB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한국자산관리공사로부터 총 1조원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초대 사장은 나성대 전 KDB산업은행 부행장이 맡았다.

그 첫 시작은 현대상선 재무구조의 개선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선박해양은 현대상선에 전환사채(CB) 6000억원, 유상증자 1500억원 등 총 75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대상선이 소유하고 있는 선박 10척에서 12척을 세일 앤드 리스백(자산 매입 후 재임대) 방식으로 매입한다.

이는 한국선박해양 측이 그린 청사진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상선은 구체적인 지원 신청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를 마친 후 지원 규모를 확정해 신청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현대상선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선박들의 장부가와 시장가 차이를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 측은 공식적인 지원 신청 방안은 2월 중순이 돼야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선박해양은 지난해 10월 정부가 발표한 ‘해운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선박 원가 경쟁력이 취약한 국적 선사를 지원하기 위해 확대하는 선박 신조 지원 프로그램이다. 선박 판매 시장가와 장부가의 차이를 보전해 줌으로써 선사는 원가 경쟁력 확보 및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적 선사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해운사 관계자는 “현재 국적 선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선박은 해운 경기의 침체로 시장가와 장부가 차이가 많이 난다. 이를 보전해 준다면 선사의 재무구조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해운 산업 지원에서 기존 금융권의 논리인 ‘투자를 통한 회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예측하기 힘든 해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한국선박해양은 회수에 집중하기보다 어느 정도 적자를 감수하며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선박해양의 심폐소생술 성공할까
(사진) 나성대 한국선박해양 초대 사장. /한국경제신문

◆지금 시황에 대형선 운항은 ‘위험’

한국선박해양이 출범했지만 국내 해운정책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있다. 컨테이너 선사들이 2010년대부터 초대형 선박을 잇달아 발주하면서 선복량이 넘쳐나고 있다. 세계 1위 선사 머스크라인은 2013년 1만8000TEU급(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한 개) 선박을 투입하며 초대형 컨테이너선 시대를 열었다.

뒤이어 MSC·차이나시핑(CSCL) 등이 1만9000TEU급 선박을 인도해 운항하고 있다. 화물량에 비해 선대가 커지며 배를 채우기 힘들어지자 운임이 하락했다. 선사들은 다시 선대 축소로 돌아서고 있다. 자연스레 선박 가치 또한 떨어졌다. 이러한 시기에 선박을 담보로 선사의 재정을 지원하는 시스템은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조 컨테이너선 발주 지원 또한 회의적 시선을 받고 있다.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현재 국적 선사의 영업력으로는 1만3000TEU급 선박도 다 채우기 힘들다. 글로벌 얼라이언스에 완전히 가입한 후 대형 선박을 발주해도 늦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인현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 소장은 “원양항로를 취항하는 선박은 소석률(선복 대비 화물 적재율) 80%를 채워야 수지타산이 맞는데 독자 영업으로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좀 더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당장 국적 선사의 규모를 늘릴지 혹은 원양항로를 포기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선사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리고 있는 와중에 현대상선이 이 시기를 놓쳐 홀로 남으면 중견 선사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북미, 아시아~유럽의 원양항로는 대형 선사들과의 동맹이 아니면 화물을 채우기도 힘들다. 전형진 센터장은 “한국 원양 선사를 키우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화주들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글로벌 선사들과 경쟁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