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사내벤처를 위한 TIP
회사와의 ‘협상’ 꼼꼼히 할 것…때로는 ‘사내 정치’도 필요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다’, ‘독립성이 보장된다’, ‘실패해도 살아날 구멍이 있다’….

#. ‘빛 좋은 개살구다’, ‘사실상의 하청이다’, ‘조직 간 갈등이 많다’, ‘헝그리 정신이 없다’….

사내벤처에 대한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린다. 모기업의 자본을 빌려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시선이 있는 반면 일각에선 분사 이후에도 모기업의 하청업체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인 반응도 있다.

이에 사내벤처를 통해 꿈을 이루고 싶은 이들이 궁금해 할 법한 질문을 모아 전문가에게 조언을 요청했다.

편의상 창업팀으로 성공을 꿈꾸는 김벤처(가상 인물)가 질문하면, 이에 사내벤처를 연구하는 교수, 사내벤처를 운영해 분사에까지 이른 최고경영자(CEO)와 사내벤처의 임직원 등 사내벤처와 관련된 각계각층의 전문가가 답하는 형식으로 질의응답을 꾸몄다.

단 모기업과의 관계 등을 이유로 익명을 요청한 일부 벤처기업 CEO와 임직원은 이니셜로 대체했다.

‘사내벤처도 벤처’, 벼랑 끝이라는 각오 다져라
▶사내벤처에 지원해야 할지 고민이 앞서요. 진짜 프로젝트가 실행된 이후에도 독립성과 자율성이 주어지나요.

“게임 업체 넥스트플로어의 사내벤처 지하연구소에서 8개월째 근무 중인 그래픽디자이너 정현예입니다. 기존에 하던 업무와 다른 아이템을 해보고 싶어 사내벤처를 지원했습니다. 재미있는 부분도 있지만 프로젝트 시간이 1년으로 한정돼 있다 보니 실패에 대한 부담감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있고 내부에 시스템도 받쳐준다면 모기업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이를 활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월급도 받고 물질적·인적 지원까지 아낌없이 받아볼 수 있으니까요.”

“자동차 관련 사내벤처에서 근무했다가 다시 원래 소속으로 돌아온 S입니다. 프로젝트 선정 등의 초기 과정에선 경영자의 입김이 들어갑니다. 사업이 시작되면 무서울 정도의 자율성이 보장됩니다.

이에 따른 책임도 전부 사내벤처 팀원의 몫이기 때문에 사실 평소보다 더 많이 일을 하게 되더라고요. 사업에 꿈이 있다면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시작할 수 있어 좋지만 ‘그냥 한번 해볼까’하는 단순한 마음이라면 전 좀 말리고 싶어요.

사업 욕심이 없으면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 원래의 소속으로 돌아와 팀 내 입지를 다지기가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

▶회사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는데, 혹시 실패하면 책임이 따르지 않을까 두려워요. 윗선과의 갈등도 무섭고요.

“사내벤처를 운영 중인 대기업의 홍보팀 차장 K입니다. 사내벤처 지원을 신청하기 이전에 회사에서 명문화한 사내벤처 제도의 규정을 꼼꼼히 보는 것이 좋고요.

다수의 기업이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원래 소속으로 복귀할 수 있고요.”

“기업가 정신을 연구하는 이민화 창조경제연구이사회 이사장(카이스트 초빙교수)입니다. 사내벤처에서 혁신하려면 부딪쳐야 하는 부분도 많죠. 윗선과의 괴리감과 부서 간 갈등, 직업적 위험 등의 한계로 점점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창업팀(사내 기업가)들에 사내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중요해지죠. 또 프로젝트에 주어진 한정된 시간 안에 뭔가 내놓을 만한 것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자리에 설 수 있을 겁니다.”

▶사내 팀으로 남는 것과 분사, 기준점은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요. 대기업이란 우산 밖을 나가는 게 두렵기도 해요.

“KT의 사내벤처에서 출발해 현재 식신을 운영하는 안병익 식신(구 씨온) 대표입니다. 무엇보다 ‘비전’을 중시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또는 팀이) 하려는 프로젝트에 미래가 있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확신이 드는지를 잣대로 삼아야겠죠.

비전·사명감·확신이 없다면 모기업에 남아 있는 게 나아요. 사내벤처를 운영하는 업체 대부분이 대기업인데, 그곳에 있다가 나오면 신분(?)이 완전히 달라져요.

최소 갑(甲)이나 을(乙)에서 … 신(辛)까지 내려간다고 보면 돼요. 자존심 다 버리고 소신을 갖고 일할 자세가 중요하죠.”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순)

“대기업 사내벤처 출신 스타트업 대표 L입니다. 나가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나오면 됩니다. 처음에 좋았던 분위기도 시간이 지나니 회사 소속 일반 팀과 다를 게 없더라고요. 분사를 생각하고 죽어라 달렸는데 어느 순간 의욕이 없어집니다.

아무리 자율성을 인정해 줘도 대기업 소속이면 실제 업무를 제외한 기타 부가적 작업에 30~40%의 시간을 쓰게 됩니다. 대기업 브랜드 없이도 나가서 잘할 것이란 자신감이 있으면 분사하세요.”

▶분사 시 지분을 놓고 갈등이 상당할 것 같아요. 선배 창업팀으로서 조언을 부탁드려요.

“안 대표입니다. 벤처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선 외부 투자를 받아야 해요. 보통 상장하거나 매각에 이르기 전까지 최소 3번 이상의 투자가 들어와야 하죠. 이를 생각하면 창업팀이 처음에 60~70% 지분을 보유하는 게 좋아요.

앞으로 2~3번의 외부 투자를 통해 지분이 줄어들더라도 최소 30~40%는 유지해야 안정 경영을 보장할 수 있으니까요. 초기 사내벤처 출신의 창업팀을 보면 모회사가 지분을 많이 갖는 경우가 있는데 훗날 투자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선택입니다.”

“L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모기업과 창업팀 간의 지분 싸움만 생각하는데 창업 멤버 간의 지분 갈등도 만만치 않아요. 창업팀 간 지분 정리를 누가 할 것인지도 모호하죠. 맨땅에 시작한 스타트업과 달리 사내벤처는 모회사가 개입할 여지가 충분하니까요.

사내벤처 대표에게 전권을 준다든가 하는 방식이 필요하죠. 합리적인 지분 나눔이 안 되면 모회사를 나가지 않을 테니까요.”

“사내벤처 출신의 스타트업 대표 J입니다. 프로젝트가 잘돼야 분사 얘기가 나오지만 회사는 사업이 잘되면 분사보다 내부에 묶어 두기를 원해요. 그때 가서 얘기하면 많은 게 불리해지죠.

대부분의 기업들이 분사 조건을 명문화하지 않고 있지만 프로젝트 시작에 앞서 ‘어떤 조건일 때 분사를 시켜줄지’, ‘분사 조건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얘기를 미리 나누거나 계약해 두는 것이 현명합니다.”

▶사내벤처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배종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입니다. 자사 사내벤처가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되는지, 지리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지 또 보상 구조와 평가 제도, 업무 절차와 자원 활용 방식 등에서 기존 조직과 다르게 운영되는지 등도 꼭 염두에 두고 살피십시오.”

“또 L입니다(하하). 많은 대기업이 분사 이후에도 회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조항을 넣잖아요. 다들 안전망이라고 보고…. 전 좀 생각이 달라요. 실패가 무섭다면 창업을 꿈꾸지 말아야죠. 맨땅에 헤딩하는 스타트업 대부분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태도로 사업에 매달립니다. 그 정도의 배짱과 용기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알서포트의 게임커뮤니티 사내벤처 게임덕을 운영하는 신동형 대표입니다. 스타트업과 다를 바 없는 사내벤처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입니다. 기획에서 개발·마케팅·영업에 이르기까지 일원화된 조직은 사내벤처의 큰 장점입니다.

큰 조직일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기 어려운 공룡이 될 확률이 높지요. 벤처기업의 사내벤처나 이를 통해 스타트업을 준비한다면 작다는 것을 자신의 무기로 삼아야 합니다. 구성원과의 문제에 대한 공감과 빠른 판단으로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이 작은 무기를 살릴 수 있습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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