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가보니]
CJ대한통운, 자동화 분류 시스템 '휠 소터' 도입으로 오전·오후 2회전 배송 가능
택배기사 수익증가 노동시간 단축까지…“내년까지 전국 200개 터미널 자동화”
자동화가 가져온 아침 배송…오전 10시 "딩동♪ 택배 왔습니다"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저녁 7시에서 오후 5시로 퇴근 시간이 앞당겨졌어요. 이젠 영화 한 편 보고 출근하는 것도 가능해요.”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자리한 CJ대한통운의 서울 강서 서브터미널에서 2월 15일 만난 8년 차 택배 기사 김지헌 씨는 분류 자동화 시스템 도입 이후 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기존에는 ‘하차(작업) 후 배송’을 해야 했지만 이제는 하차 중에도 배송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오전과 오후 배송(2회전)이 가능해지면서 소비자는 아침에도 택배를 받을 수 있고, 기사들 또한 노동시간이 줄고 수익은 오히려 늘었다”고 설명했다.
자동화가 가져온 아침 배송…오전 10시 "딩동♪ 택배 왔습니다"
(사진) CJ대한통운의 택배 분류 자동화 기기인 휠 소터가 처음 도입된 서울 강서 서브터미널에서 택배 기사가 자동 분류된 택배 상자를 받아보고 있다. 휠 소터는 택배 상자에 적힌
바코드를 3면으로 인식해 지역별로 자동 분류해 주는 기기다. /서범세 기자

◆오후 2시→오전 9시, 배송 출발 시간 단축

택배 풍경이 180도 달라졌다. 이전까지 3D 산업으로 불렸던 택배 산업에 분류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현장에 획기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오전 근무의 반 이상을 잡아먹었던 택배 분류 작업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노동시간이 크게 줄었고, 택배 기사들의 삶의 만족도도 크게 향상됐다. 이를 통해 오전 시간 택배 배송이 가능해지면서 긴급 물품이 아닌 일반 택배도 받아볼 수 있게끔 됐다.

이뿐일까. 그간 분류 작업에 쏟았던 시간과 힘을 배송에 집중하면서 기사들의 수익도 늘었다. 업계에선 ‘택배의 신세계가 열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신호탄은 CJ대한통운이 쐈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작은 바퀴를 이용해 택배 상자를 지역별로 분류해 주는 자동화 설비인 ‘휠 소터(Wheel Sorter)’를 인천에 있는 서울 강서 서브터미널에 처음 도입했다.

휠 소터의 컨베이어 속도는 1분에 120m 이상으로 시간당 8000상자를 분류할 수 있다. 기존에 수작업으로 하던 분류 작업의 시간과 노력이 배 이상 절감되는 셈이다.

오전 7시. 택배 기사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휠 소터 설치 이전에는 서브터미널의 모든 택배 기사가 총출동해 각각 자신이 배달할 택배 화물들을 수작업으로 골라내 자신의 차량에 실어야 했다.

하지만 자동화 이후엔 각 팀별로 조를 짜 출근 시간을 달리했다. 오전 7시, 오전 9시, 오전 10시 반…. 각자 일정에 따라 출근하고 기계가 자동 분류해 놓은 짐을 정리해 자신의 차량에 싣기만 하면 오전 분류 작업이 끝난다.

“자동화 이전에는 대리점 인원 8명 전원이 아침 7시에 출근했어요. 지금은 교대로 근무 중이에요. 그러다 보니 터미널 안팎에 주차할 곳 없이 빽빽했던 차량들도 지금은 좀 한산해졌어요. 원활한 작업이 가능해진 거죠.”

강서구에서 대리점을 운영하는 9년 차 택배 기사인 강희섭 사장은 분류 자동화 이후 대리점 소속 기사들의 불만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그간 무거운 짐과 업무량에 치여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던 택배 기사들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연말연시에 설 명절까지 낀 12월부터 2월에는 사람을 더 뽑아 달라는 얘기가 많았어요.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인원은 한정되고 또 이맘때 그만두는 직원들이 많아 생긴 불만이죠. 올해에는 그런 소리가 사라졌어요. 자동화로 택배 배달에 시간을 더 쏟을 수 있고 많이 배달할수록 자신의 수익으로 연결되니까 기사들이 배송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택배 기사들은 기계가 분류를 마칠 때까지 동료와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거나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등의 휴식을 갖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강서 서브터미널의 작업장 한쪽 모퉁이에서도 동료들 간 짧은 휴식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

분류 작업이 끝난 택배 상자를 자신의 차량에 옮겨 실을 때도 웃음꽃이 피었다. 택배 기사들은 “자동화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꿀 같은 휴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동화가 가져온 아침 배송…오전 10시 "딩동♪ 택배 왔습니다"
(사진) CJ대한통운의 택배 분류 자동화 기기인 휠 소터가 처음 도입된 서울 강서 서브터미널. /서범세 기자

◆CJ대한통운, 1227억 투자 예정

“이전 같았으면 오후 12시까지 하차 작업에만 매달려야 했어요. 아침부터 (분류 작업 등의) 중노동을 하고 나면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볼 수 없죠. 신경질이 가득했어요.”

7년 차 박모 씨도 스트레스성 위염을 달고 살았다. 아직 병이 다 낫지 않았지만 분류 자동화 기기의 도입 이후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이 예전보다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출퇴근 시간도 단축됐다. 때때론 오전 10시 반에 출근해도 되니 새벽 출근에 대한 부담도 줄었고 2회전 배송으로 할당된 물량을 빠르게 처리하다 보니 퇴근 시간도 1시간 정도 앞당겨졌다. 택배 기사들은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기도 하고 아침 단잠을 청하기도 한다. 퇴근 후에는 동료와 술 한잔을 기울이거나 영화를 보는 일도 늘었다.

“1일 할당량이 250개라면 예전에는 오후에 250개 전부를 배송해야 했어요. 하차 작업을 다 하면 최소 12시, 오후 2시부터 배송할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오전 9시에도 배송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오전에 100개, 오후에 150개 이런 식으로 나눠 일할 수 있는 거죠. 퇴근 시간이 앞당겨질 수밖에요.”

개인 수익도 늘었다. 오전 배송을 마치고 오후에 한 번 더 배송을 나감으로써 동일한 시간 내 더 많은 물류를 배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강희섭 사장은 “우리 대리점 기사들의 월평균 수입이 15~20% 정도 더 늘었다”고 귀띔했다.

반면 택배 물품이 파손될 위험은 크게 줄었다. 기존에는 사람이 분류 작업의 시작과 끝을 다 하다 보니 이 과정에서 물건을 던지는 일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휠 소터 도입 후 택배 기사 발 앞에까지 기계가 물건을 가져다줌으로써 분류 작업 과정에서 제품의 파손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택배 기사에게 여유가 생기면서 고객 만족도(CS)도 뒤따라왔다.

서울 강서 서브터미널의 한준희 차장은 “하루 일과의 절반을 차지하던 분류 작업이 사라지면서 부재 중인 곳을 재방문하거나 반품을 원하는 고객에게도 빠르게 찾아가는 등 고객 서비스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면서 “지난해 9월 휠 소터 도입 이후 CS 점수가 620점대에서 690점대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한 차장은 “이전에는 긴급 물품이 아닌 이상 오전 배송이 불가했다”며 “휠 소터가 전국에 도입되면 오전 배송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강서 서브터미널에서의 오전 배송률은 13~15% 수준이다.

CJ대한통운은 내년 상반기까지 총 1227억원을 들여 전국 200여 서브터미널에 휠 소터 도입을 완료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 강서 서브터미널을 시작으로 전국 6개 서브터미널에 휠 소터를 설치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처음 휠 소터를 설치할 때만 해도 시험 가동과 다양한 테스트, 안정화 과정 등을 거치느라 2~3주가 걸렸다”면서 “지금은 이틀이면 설치를 완료할 수 있어 내년 상반기 중에 전국 터미널에 휠 소터 설치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