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TPP효과 사라져…유럽 수출로 반전 계기 찾아야
TPP '디딤돌' 삼은 섬유사들, 트럼프노믹스에 '빨간불'
(사진) 베트남에 있는 효성 스판덱스 공장에서 직원들이 품질 검사를 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국내 섬유 기업들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한 세제 혜택을 위해 일찌감치 베트남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올해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TPP 탈퇴를 시사하며 섬유업계의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섬유 기업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효성 등 조기 진출 기업은 이미 ‘본전’ 뽑아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할 것이 분명해지며 국내 기업들은 수출에 타격을 입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의 일환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4일 TPP 탈퇴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실상의 탈퇴 공식 선언이다.

미국의 탈퇴 선언으로 TPP 회원국들은 수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정상회담에서 TPP의 중요성을 설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11월 미국·일본·베트남을 포함해 총 12개 국가가 TPP를 맺기로 협의하면서 섬유업계는 베트남 진출을 서둘러 왔다. 베트남 현지 공장을 통해 미국과 일본 등 섬유 주력 시장에 진출하면 세금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섬유업계의 2016년 베트남 투자액은 3억564만 달러로, 이미 2015년 총투자액인 2억3637만 달러를 크게 앞질렀다.

대표적 섬유 기업인 효성은 조현준 회장을 중심으로 베트남 법인을 해외시장 개척의 전초기지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조 회장은 중국의 경영 환경이 인건비 상승 등으로 어려워지는 것을 보고 베트남을 일찌감치 주목해 왔다.

이러한 판단 아래 효성은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등 주력 제품의 생산지로 베트남을 낙점했다. 효성은 2007년 5월 베트남 법인을 설립한 이후 스판덱스·타이어코드·스틸코드 생산 시설을 갖췄다.

2015년 4월에는 베트남 법인 옆 부지에 효성동나이법인을 설립해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증설과 함께 전동기·나일론·폴리테트라메틸렌글리콜(PTMG)의 생산 시설을 추가했다.

또 효성동나이법인은 세계 1위 스판덱스인 크레오라의 원료가 되는 PTMG의 생산 시설 건립을 완료하고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효성의 스판덱스는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일관된 생산 체계를 구축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효성은 베트남 현지 생산으로 나일론의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스판덱스와의 협업 마케팅으로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조 회장은 베트남과의 협력 일환으로 지난해 11월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를 만나 베트남 현지 인프라 사업 진출과 신규 투자 사업 등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코오롱 또한 베트남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코오롱그룹의 섬유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해 11월 베트남에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 생산 기지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투자 규모는 약 2600억원이다.

이를 위해 코오롱인더스트리와 베트남의 경제 수도로 불리는 빈증성은 지난 11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베트남 빈증성 바우방 산업단지에 자리한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타이어코드 공장은 연간 3만6000톤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원사 생산에서부터 제직·열처리·완제품에 이르는 일괄적 생산 체계를 갖췄다. 2018년 하반기부터 본격적 양산이 시작된다. 베트남 공장의 건설로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타이어코드 생산량은 연간 11만3000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한세실업·화승엔터프라이즈·세아상역·영원무역 등이 현지법인 설립과 공장 가동을 통해 베트남에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TPP '디딤돌' 삼은 섬유사들, 트럼프노믹스에 '빨간불'
◆‘EU와의 FTA 체결이 새 희망’

국내 섬유 기업 관계자는 “미국의 TPP 탈퇴가 미칠 영향에 대해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섬유 기업들은 ‘트럼프노믹스’가 미치는 악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섬유 기업은 2000년대 중반부터 베트남 시장을 주목하며 진출을 서둘러 왔다. 효성은 2007년부터 베트남 현지법인 설립을 결정했고 공장 가동이 시작된 지 2년 후인 2009년부터 흑자를 거뒀다.

베트남 정부는 우리 기업들의 진출 초기부터 외자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제 혜택과 임대료 감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따라서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베트남에 대규모 공장을 세웠던 기업들은 이미 비용적 측면에서 이득을 봤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TPP 가입 국가가 아니더라도 베트남은 충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섬유산업은 대표적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베트남의 장점 중 하나는 국내의 4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 인건비다. 현지 기준에 따르면 베트남 대졸 노동자들은 매월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2018년부터 발효될 베트남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또한 기대감을 올려 놓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국제통상팀 김부흥 팀장은 “베트남과 EU의 FTA 발효로 베트남에 현지 공장을 두고 있는 섬유 업체들의 유럽 수출이 용이해질 것”이라며 “하지만 섬유 기업들이 먼저 유럽 시장의 신규 고객들을 찾는 것이 순서”라고 덧붙였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