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즐거움’이 만들어 낸 변화와 혁신의 역사
뿔피리는 음악을, 음악은 컴퓨터를 만들었다
(사진 = 스티븐 존슨 지음 홍지수 옮김·프런티어·444쪽·1만6000원)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동물의 뼈로 만든 피리는 인간이 기술적인 창의성을 발휘해 만든 가장 오래된 물건이다. 속이 텅 빈 뼈를 지나가면서 바람이 내는 소리는 인간을 사로잡았다.

어떤 실용적인 목적도 없이 그저 그 매혹적인 소리를 함께 나누기 위해 시도된 기술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음악과 상관없는 다양한 면에서도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 진전을 만들어 냈다.

컴퓨터 발명에는 뮤직박스, 하프시코드 키보드, 자동 연주 피아노가 한몫했다. 일종의 프로그래밍 기계들인 셈이다. 유랑극단과 명장들도 역사상 획기적인 기술인 코드 개발에 기여했다.

뮤직박스에 들어 있는, 핀이 돌출된 원통에서 소프트웨어가 탄생했다. 피아노 건반을 통해 오늘날 컴퓨터 키보드 자판이 개발돼 디지털 혁명의 씨앗이 됐다.

음파를 기록하려는 시도도 주파수 변조 기술과 확장 대역 기술로 진화해 무선전화 통신망·블루투스·와이파이 등 수많은 무선 장치에 쓰인다.

또한 정보를 처리하고 공유할 때 사용하는 새로운 도구를 개발하는 데 음악의 도구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고 공유하려는 시도가 다른 분야에서 혁명을 촉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초의 정보 공유 네트워크는 바로 음악 파일을 교환하기 위해 개발됐다.

음악은 최초로 부호화되고 최초로 자동화되고 최초로 프로그래밍되고 최초로 디지털 상품화하고 최초로 개인과 개인의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된 인간 활동이다.

인간의 역사를 바꾼 또 하나의 물건은 향신료다. 세계무역, 제국주의,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가마의 항해와 발견, 주식회사, 베니스와 암스테르담의 아름다움 등 이 모두가 향신료 그리고 향신료 무역에 따른 결과다.

변화와 혁신은 ‘매우 조직화되고 논리적인 사고’에 의해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혁신은 그저 순수하게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 시작된다. 더 놀라운 점은 즐거움이 생물학적 욕구와 무관한 새로운 문화적 제도와 관행, 시설을 구축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늘 새로운 체험을 갈구하는, 놀라움을 지향하는 우리 본능에 이미 ‘혁신’이라는 잠재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베스트셀러인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를 펴냈던 스티븐 존슨은 ‘원더랜드’를 통해 혁신과 아이디어의 역사를 과학기술과 접목해 풀어냈다.

‘원더랜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피리와 컴퓨터와 같은 사물 혹은 사건간의 연결 고리가 역사적·사회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풍부한 사례와 연구·문헌·영감이 넘치는 사고 전환과 거침없는 문장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