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전기·전자 중심으로 변화…‘소비재 수출’이 최종 목표 (사진) 1960년대 베트남에 파견된 기술자들이 도로 보수 작업을 하는 모습.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세계 각국 기업들이 베트남을 생산 기지로 주목하고 있지만 이
보다 한 발 앞서 한국 기업들은 일찌감치 베트남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포스트 차이나’ 베트남을 향한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 러시는 거세다. 날로 거세지는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미국·일본 기업들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사진) 베트남 진출 1세대 기업인 태광실업 직원들이 베트남 남부에 있는 2공장에서 신발을 생산하고 있다. /태광실업 제공
◆1991년 한주통상 ‘진출 1호’
초기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은 섬유·봉제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삼성·LG 등 대기업들의 진출로 전기·전자 업종으로 전환되고 있는 모양을 띠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베트남에 관심을 보였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는 현대건설이 깜라인만 등 메콩강 하류 준설 공사를 수행하며 국내 건설업계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국내 기업들이 베트남 시장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저렴한 인건비 때문이다. 자연스레 노동집약 산업인 섬유·봉제 기업들이 베트남 진출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의 생산 기업인 한주통상이 1991년 12월 베트남에 진출해 ‘국내 베트남 시장 진출 1호 기업’으로 기록돼 있다. 태광실업은 ‘베트남 진출 1세대 기업’으로 불리고 있다. 1994년 베트남 시장에 진입한 태광실업은 신발업계에서는 최초로 베트남 수출 시장의 포문을 연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을 통한 미국 수출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1995년 베트남과 미국의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대미 우회 수출 기지로 베트남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활발했던 베트남 진출은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으며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기업들은 중공업 및 소재 산업의 생산 기지로 베트남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두산중공업은 2007년 현지법인인 ‘두산비나’를 설립했다. 섬유 및 소재 기업인 효성은 2000년대 초반부터 베트남 입성 계획을 세우고 2007년 현지법인을 세워 베트남으로 생산 기지를 일원화했다.
그 후 2010년대 들어 베트남 진출은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전자 부품 생산 기지로 베트남을 낙점하며 휴대전화 부품 생산 공장을 이전한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베트남 박닌성과 타이응우옌성에서 휴대전화 공장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의 지난해 수출액은 339억 달러로,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22.7%를 차지하고 있다. LG전자는 하이퐁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하노이·호찌민 중심으로 ‘산업단지’ 구축
2000년대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투자 금액을 살펴보면 베트남 투자 기업들의 산업군 변화를 분석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주요국의 대베트남 진출 전략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까지 한국 기업의 1억 달러 이상 대규모 베트남 투자는 총 56건 이뤄졌다.
2000년대 중반에는 2006년 포스코의 BRVT 11억3000만 달러, 2007년 경남개발 5억 달러, 효성그룹 3억6800만 달러로 중공업·부동산·섬유가 대세를 이뤘다.
2010년대 들어선 이러한 양상이 변했다. 2013년 LG전자가 하이퐁에 15억 달러를 투자했고 삼성전자가 타이응우옌에 12억3000만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이듬해 또 30억 달러를 투자했다. 대규모 투자가 전기·전자 부문으로 변화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업들의 진출 현황을 살펴보면 대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중소기업까지 번졌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KIEP에 따르면 삼성·LG·포스코·두산·CJ 등의 대규모 투자가 한국 중소기업들의 베트남 진출 증가를 가져왔다.
특히 2013년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부품 생산 공장을 베트남으로 옮기면서 200여 곳에 달하는 중소 벤더들이 베트남으로 이동하는 ‘연쇄 효과’를 불러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의 대도시인 하노이와 호찌민을 중심으로 생산 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하노이 부근에는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을 비롯해 대한생명보험 베트남법인, 미원 베트남법인이 진출해 있다. 또 호찌민에는 포스코 베트남, 금호타이어 베트남, 태광실업의 베트남 현지 공장인 태광비나, 롯데베트남쇼핑이 자리 잡고 있다.
하노이와 호찌민은 직선거리로 약 1700km 떨어져 있지만 물리적 거리에 버금가는 문화 차이도 존재한다. 남부에 자리한 호찌민은 따뜻한 기후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여유 있는 문화를 갖고 있다. 북부에 자리한 하노이는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KOTRA는 베트남의 도시에 대해 “도시화율이 아직 낮고 각 도시를 잇는 교통 시설이 미비하다 보니 베트남을 하나의 큰 시장으로 보기보다 각 도시를 ‘도시국가’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사진) 베트남 호찌민 시내의 다이아몬드 플라자에서 베트남 고객들이 한국 화장품 브랜드인 더페이스샵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대기업이 끌고 중소기업이 밀고
베트남에는 ‘리틀 코리아’라는 별명이 있다. 이는 현재 베트남의 산업 환경이 한국의 1970~1980년대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 처럼 경제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근면한 인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많다고 여겨진다.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은 낮지만 향후 예상 증가치가 높다는 점 또한 예전의 한국을 연상케 한다. 현재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0달러 수준이다. 소비자들의 높은 구매력을 기대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상황이지만 향후 10년 뒤에는 4000달러에서 5000달러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전문가들은 베트남 시장 진출에 대해 기존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소비재 산업으로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한류 열풍’으로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 화장품과 패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교통 인프라가 갖춰지면 자동차 기업들 또한 베트남 시장을 새로운 판매 기지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세계 각국들이 베트남을 생산 기지로 주목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KIEP에 따르면 일본은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생산 기지를 동남아로 옮겼고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양국 간 교역·투자·서비스 등 폭넓은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교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1994년 베트남과의 교역을 정상화한 미국 역시 투자 다각화를 통해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철저한 준비와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곽성일 KIEP 동남아대양주팀 연구원은 “베트남에 초기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현재 대부분이 자리를 잡았지만 최근 진출을 고려하는 기업들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치열한 상황 속에서 경쟁해야 한다”며 “베트남 시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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