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실업률 증가의 해법으로 등장한 유연근무제…기업 동참으로 탄력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한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에 변화가 일고 있다. 핵심은 “얼마나 오래 일하느냐”가 아닌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하느냐”다.
인터넷과 정보기술(IT) 기기 등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시대에서 ‘워크 하드(work hard)’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 세계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등의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으로 각 나라들이 ‘유연근무제’를 제시하면서 노동시장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맞춰 재택근무·시차출퇴근제·스마트워크센터 근무 등 ‘스마트 워크(smart work)’ 환경 조성에 골몰하고 있다. ◆ 노동의 효율성 위해 ‘유연근무제’ 제시
2000년대 들어 극심한 경기 침체와 실업률 증가로 골머리를 앓아 왔던 유럽·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은 대부분이 유연근무제를 통해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도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2012년 2월 노동자의 노동시간, 직무와 같은 노동조건을 쉽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2014년 2분기부터 2015년 1분기까지 창출된 일자리는 유로존에서 독일에 이어 둘째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스웨덴에선 ‘하루 6시간 노동’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기업 도요타가 스웨덴 예테보리의 직원들에 대해 6시간 근무 체제를 적용하고 있고 유아용 게임 애플리케이션 회사 필리문더스도 2015년부터 8시간에서 6시간으로 근무 체제를 바꿨다.
기업뿐만 아니라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사회복지사 등도 하루 6시간 근무 문화가 퍼져 가고 있다.
연평균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적은 독일(2015년 기준 1371시간. 한국 2113시간)에서는 저출산의 해법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하고 있다.
마누엘라 슈베지히 독일 가족부 장관이 8세 이하 어린 자녀가 있는 부부에게 주당 노동시간을 32시간으로 줄여주고 그에 따른 수입 감소를 보전하는 차원에서 매달 300유로(38만원)의 보조금을 주자고 제안했다.
영국 역시 2014년 6월부터 고용권리법 하위에 유연근무제도를 추가하면서 본격 실행하고 있다
특히 유연근무제를 시간선택제·재택근무제·탄력근무제·단축근무·잡셰어링 등 14가지 세부적인 유형으로 나눠 노동자가 원하는 근무 형태를 선택해 고용주에게 신청하도록 제도화했다.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 주변에 99개의 스마트워크센터를 구축, 운영 중이다. 이 센터에는 원격근무, 영상회의, 금융·복지시설 등이 완비돼 있고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이 공동으로 활용하는 곳도 많다.
일본은 올해 전체 취업 인구의 20%에 원격근무를 접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원격근무 인구 2배 증가를 위한 실행 계획’을 수립했다. 기업들의 원격근무 도입을 돕기 위해 관련 근무 설비를 마련하면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2016년까지 재택근무자 수가 미국 성인의 15.4%(2008년)에서 25.9%(노동자의 43%에 해당)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 총무부(GSA)는 2020년까지 원격근무가 가능한 직원(1만여 명)의 50%를 주 1회 이상 원격근무 체제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근에는 이러한 각국 정부의 정책에 발맞춘 글로벌 기업들의 동참도 늘고 있다. 특히 인터넷과 IT 기기가 발달하면서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만큼 재택근무·스마트워크센터 등 스마트 워크가 활성화되는 추세다.
◆ 기업들의 동참에 확대되는 스마트 워크
글로벌 IT 기업이 몰려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가 일반화돼 있다.
벤처기업들은 직원들이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 속에 창의력과 집중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구글은 탄력근무제에 더해 노동시간의 20%를 하고 싶은 일에 쓰는 ‘20% 프로젝트’를 도입해 지메일·구글어스와 같은 히트작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실리콘밸리의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창업 붐을 타고 몰려들었던 벤처기업의 젊은 개발자들이 이제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중장년이 됐고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CB인사이츠가 2015년 말 4040명의 실리콘밸리 창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3%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만큼이나 노동시간이 긴 일본도 노동시간을 파격적으로 조절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대표 주자인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해 수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제를 비롯한 스마트 워크 도입을 추진 중이다.
우선 도요타자동차는 입사 5년 차 이상 사무직과 기술직 사원 2만5000명을 대상으로 1주일에 한 번 2시간만 출근하도록 했고 위스키 제조업체인 산토리 직원들도 필요에 따라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근무할 수 있다.
‘이온’의 도호쿠 지역 계열사인 이온슈퍼센터는 점장 등 관리직에게 한 달에 최대 5일간 재택근무를 인정해 준다. 약 300명의 대상 인원 중 30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일본IBM과 야후재팬은 지난해부터 주휴 3일제를 도입했다. 앞서 유니클로는 2015년 가을 지역 점포 근무 인원(정규직) 1만 명을 대상으로 주휴 3일제를 시작했다.
인재 파견 회사 CA세일스스탭도 2014년부터 실질적인 주휴 3일제를 운영하고 있다. ‘프리 출근’ 제도다. 긴급 근무 대응만 가능하면 사무실에 굳이 있지 말고 시간을 자유롭게 쓰라는 취지다. 이후 이직률이 대폭 떨어졌고 업무 실적이 개선되는 효과를 봤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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