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구속된 상황을 이용해 민간 기업의 손목을 비틀어 정권의 치적 사업으로 둔갑시키려고 했을 수 있다. 이 회장이 볼모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CJ도 ‘부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진) 경기 고양시 한류우드 내 K컬처밸리 홍보관 내부. /CJ그룹 제공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중 ‘파면’되면서 ‘K컬처밸리’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K컬처밸리는 CJ그룹이 경기도 고양시 한류우드 30만㎡(9만750평) 부지에 1조4000억원을 들여 한국형 테마파크를 조성하기 위해 추진 중인 사업이다. 지난해 5월 기공식을 가졌지만 작년 말 불거진 국정 농단 사태로 구설에 휘말리면서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K컬처밸리는 지난 6개월 동안 경기도의회 행정조사, 검찰 특수본 수사, 특검 조사 등이 잇따르면서 추가적인 투자 자금을 마련할 펀드 조성이 늦춰지고 공사도 지연된 상태다.
CJ그룹은 더 이상 외부 투자 유치가 지연되면 사업에 중대한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본격적인 투자 유치를 서두르고 있다.
◆정부 치적 사업으로 포장한 정황 포착
지난해 10월 국정 농단 문제가 불거짐과 동시에 비선 실세가 K컬처밸리 사업 시행자 선정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었다. K컬처밸리 사업에 최순실과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연루됐다는 의혹이었다.
2015년 2월 문화창조융합벨트 출범식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에 K컬처밸리를 완공해 국정 과제인 창조경제의 핵심 문화창조융합벨트를 완성하겠다”며 마치 정부 차원의 사업인 것처럼 발표한 부분도 관련 의혹을 부추겼다.
하지만 특검 수사가 진행되면서 CJ의 민간 사업을 청와대가 정부 치적 사업으로 변모시킨 정황 일부가 드러났다. 청와대가 개발에 수년이 걸리는 테마파크를 대통령 임기 내인 2017년 말까지 완공하라며 CJ를 밀어붙인 듯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수첩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K컬처밸리를 수시로 챙긴 흔적이 다수 발견됐다. 박 전 대통령이 성공한 ‘문화대통령’으로 평가받기 위해 K컬처밸리 완공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필요로 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정책 사업에 밝은 한 재계 관계자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구속된 상황을 이용해 민간 기업의 손목을 비틀어 정권의 치적 사업으로 둔갑시키려고 했을 수 있다”며 “이 회장이 볼모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CJ도 ‘부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사면을 두고 K컬처밸리 사업을 조기에 완성하기 위한 정권 차원의 노림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특검이 시작된 뒤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창조융합본부를 폐지하고 민간 주도 사업인 K컬처밸리를 정부의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서 제외함으로써 K컬처밸리는 민간 사업으로 제자리를 찾게 됐다.
◆사면 대가설 등 각종 의혹 잦아들어 (사진) 경기 고양시 한류우드 내 K컬처밸리 홍보관 외부. /CJ그룹 제공
CJ는 그동안 이 회장의 구명을 위해 K컬처밸리 사업을 진행해 왔다는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테마파크 사업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들은 “(해당 사업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한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테마파크는 최소 15년 이상의 장기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라며 “CJ가 이미 오래전부터 동부산테마파크 등 수천억원 이상 규모의 테마파크 사업을 구상해 왔기 때문에 성사된 사업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1조4000억원은 CJ그룹 전체 연간 영업이익에 해당하는 액수인데 회장 사면이 아무리 급해도 이 같은 대규모 자금을 무턱대고 투자하는 무모한 기업은 없다”며 “기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CJ도 적극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CJ 관계자는 “테마파크에 블록버스터 영화나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연계하면 상호 보완 및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며 “CJ는 2000년대 초반부터 동부산테마파크 등 한국형 테마파크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고 강조했다.
CJ는 과거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사업 방식에 주목했다. 디즈니랜드는 월트디즈니컴퍼니 매출의 약 30%를 올리고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생명력을 연장, 궁극적으로는 디즈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얻은 셈이다.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성공하면 테마파크를 통해 인기를 확장하고 이 인기를 바탕으로 속편을 제작해 다시 성공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사업 방식이다.
CJ는 E&M의 차별화한 콘텐츠는 물론 CGV의 4DX, 스크린X 등 첨단 영상 및 체험형 기술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들 기술은 테마파크 어트랙션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 테마파크 내 식음료 시설 등 부대 편의시설은 CJ푸드빌과 CJ프레시웨이 등 계열사의 축적된 노하우를 활용하면 된다.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K컬처밸리 사업이 결과적으로 전 정부와의 긴장 관계를 줄이고 이 회장 사면에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도 K컬처밸리 사업을 무리하게 떠안은 데 대한 대가라기보다 ‘문화대통령’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던 정권 차원의 필요와 다급함이 더 컸다고 보는 게 정확해 보인다.
◆경기도 “특혜나 의혹 있을 수 없다” (사진) K컬처밸리 공간 구성도. /CJ그룹 제공
특히 최근 K컬처밸리를 둘러싼 각종 특혜 의혹 역시 사실이 아니거나 위법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업 추진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K컬처밸리에 투자한 싱가포르 투자사 ‘방사완브러더스’가 페이퍼 컴퍼니라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경기도의회 조사특위는 싱가포르 현지 사무실을 방문해 대표이사 면담 등에 나선 결과 방사완브러더스가 페이퍼 컴퍼니가 아니라는 것을 공식 확인했다.
K컬처밸리가 친정부 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1% 대부율’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 또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경기도 측은 최근 “K컬처밸리는 도시개발 사업에 따른 공모 사업으로 적법하게 진행한 것”이라며 “1% 대부 금리를 적용한 것은 외국인투자촉진법과 경기도 공유재산관리조례에 따른 것으로 어떠한 특혜나 의혹도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또한 국회 청문회와 특검 수사 등을 거치며 최순실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공모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K컬처밸리와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박근혜 정권은 특혜설이 무색할 정도로 CJ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K컬처밸리 기공식 직후인 2016년 7월께 최소한 조건부 승인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 헬로비전 매각·합병 건은 불과 반년 뒤 정부가 스스로 폐지 방침을 밝힌 ‘권역별 점유율 규제’를 이유로 무산된 바 있다. CJ그룹은 이로 인해 큰 피해를 봤다.
◆K컬처밸리, 2019년 말 전체 개장 목표 한국은 상하이 디즈니랜드, 오사카 유니버설스튜디오 등 동북아 테마파크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다. K컬처밸리 조성은 우리 문화 산업에 대한 자부심을 드높이고 관광산업의 부흥을 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수도권 한류 테마파크 조성은 누군가 반드시 나섰어야 할 사업이다.
경기도는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K컬처밸리 사업 정상화를 적극 반기고 있다. K컬처밸리가 조성되고 있는 한류우드 부지는 2004년부터 복합관광문화단지로 추진됐다가 관련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10여 년 동안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던 곳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여러 의혹으로 사업 추진 여부가 불투명했었지만 앞으로는 예정된 계획대로 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CJ 역시 K컬처밸리 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CJ는 국정 농단 이후 순조롭지 않았던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기관 및 투자자들을 직접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시행사인 케이밸리도 테마파크 착공에 앞서 전문가를 영입하고 사무실을 K컬처밸리 홍보관 인근으로 이전하는 등 심기일전하는 분위기다.
CJ 관계자는 “그동안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면서 투자자 모집에 애를 태웠지만 다행히 투자자들의 반응이 호전돼 6월까지 펀드 조성을 완료하는 등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할 계획”이라며 “오는 4월로 예정된 테마파크 착공과 6월 중도금 납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K컬처밸리는 당초 예정 시기보다 늦춰진 2019년 말 전체 개장될 전망이다. K컬처밸리 조성에 따른 향후 10년간 생산유발효과는 13조원이다. 또한 일자리 9만 개를 창출하는 투자 효과가 기대된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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