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성과연봉제·최순실’이 뒤흔드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경영평가 개선 방향]
계량·비계량 조화 이뤄야…‘3년마다 평가’ 목소리도
공기업 운명 결정짓지만 효율성은 ‘물음표’
(사진)송언석(왼쪽 둘째) 기획재정부 2차관이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대회의실에서 지난해 2월 열린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추진 점검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매년 공공기관의 운명을 결정짓는 경영 평가지만 현장에서는 여러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금의 평가 기준이 공공기관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됐다.

◆‘근시안’만 키우는 경영 평가

전문가들은 현재 시행되는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공공기관 경영 평가가 오히려 공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경영 평가제도 개선에 대해 장기간 연구해 온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경영 평가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매년 시행되는 경영 평가가 공기업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오히려 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세우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공기업은 매년 시행되는 경영 평가에 따라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만 공을 들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전시 행정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매년 경영 평가가 이뤄지면 그해 실적 향상에만 몰두하게 되고 몇 년간의 투자를 거쳐 장기적 이익을 기대하게 만드는 사업에는 자연스레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매년 경영 평가를 진행해야 하는 항목으론 통계자료만으로 분석 가능한 계량 평가와 함께 성과연봉제 도입처럼 정부의 정책을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공공기관 경영 평가의 평가지표는 계량지표와 비계량지표로 나뉜다. 이 계량지표와 비계량지표는 해마다 그 비중이 바뀌었다. 계량지표와 비계량지표 중 어느 것을 중점적으로 둬야 하는지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계량지표는 평가자의 주관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계량지표는 지나친 수치화로 수익성에 의존한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와 같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리는 의견 때문에 매년 계량지표와 비계량지표의 비중이 바뀌며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들어선 비계량지표의 비중이 차차 높아지고 있다. 2016년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는 40점이었던 비계량지표의 비중이 2017년 경영 평가에서는 45점으로 증가했다.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 ‘수익성’을 강조한다는 것 또한 비판받고 있다.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과 달리 공공성을 평가받아야 할 공공기관에 수익성 평가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했는지 지난 2월 발표된 2017년 공기업 평가지표에서는 재무 예산 관리 점수 비중이 계량지표와 비계량지표에서 각각 5점으로 줄었고 그 대신 공공성을 평가할 수 있는 항목들이 추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재무제표’는 공공기관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수익 향상 여부가 평가 기준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무제표에 담겨 있는 매출액이나 당기순이익과 같은 요소를 참고해 평가하게 되면 공공기관이 본래 목적을 잊고 수익 창출에만 집중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공기업 운명 결정짓지만 효율성은 ‘물음표’
◆경영 평가 전문성 갖춘 조직 길러내야

한국수자원공사는 2012년 말 약 12조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었다. 이는 당시 이명박 정부의 주요 사업 중 하나였던 ‘4대강 사업’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는 그해 공공기업 경영 평가에서 B등급을 받았다. 이를 두고 과연 공공기관 경영 평가의 기준이 무엇인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권의 정책 방향에 따라 경영 평가의 기준이 변한다는 비판은 공공기관 경영 평가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올해 평가에서는 정부가 도입을 촉구해 온 ‘성과연봉제’가 평가지표에 포함됐다. 2016 공공기관 경영 평가 유형별 평가지표 구성 및 가중치에 따르면 ‘보수 및 복리 후생 관리’ 평가지표 항목에 ‘성과연봉제 운영의 적절성’이라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도 도입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성과연봉제 달성이 과연 공기업의 경영 성과를 판단하는 데 적절한 잣대인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는다.

외부의 조직에 경영 평가를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박진 교수는 “통계자료를 토대로 이뤄지는 계량 평가는 특정 조직에 매년 맡겨 전문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교수 또한 “매년 바뀌는 평가위원들 대신 외부 조직에 업무를 이관해 통일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공기업에 경영 평가를 면제해 줌으로써 공기업 조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진 교수는 상장 공기업에 대한 면제를 주장했다.

박 교수는 “상장된 기업은 주가에 따라 가치를 가늠할 수 있으므로 매년마다 시행되는 평가를 건너뛰게 해 줌으로써 (공기업의) 상장을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기업의 상장을 통해 회계 정보 등이 공개되면 더욱 투명한 경영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반면 상장은 곧 공기업이 민영화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공기업 운명 결정짓지만 효율성은 ‘물음표’
(사진)유일호(왼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월 4일 열린 '2017년 공기업 준정부기관 경영평가단 워크숍'에 참석해 박순애 서울대 교수에게 평가단장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연합뉴스)

◆경영 평가에 ‘목숨 거는’ 공기업, 그 속사정은
1년 내내 경영 평가 매달리기, 인력·시간 낭비 ‘어마어마’

공기업들은 매년 시행되는 경영 평가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인력이 많이 투입되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매년 말 평가지표가 확정되면 연말부터 그 다음해 2월까지 공기업은 보고서 작성에 매진한다. 보고서 작성에는 통상 3개월이 걸리지만 그전부터 공기업들은 이미 지표 관리에 신경을 쏟는다. 계량지표는 미리 대략적인 짐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월부터 5월까지는 경영평가단의 방문과 추가 질문에 실시간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거의 1년간 경영 평가에 매달리는 셈이다.

결과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공기업들도 있다. 일부 공기업 관계자들은 평가위원들의 전문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평가위원이 기획재정부의 임의에 따라 배정되기 때문에 심사하는 공기업에 대해 지식이 부족한 평가단이 심사를 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들은 경영 평가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대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직급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결과에 따라 매년 수천만원의 성과급 차이가 발생한다. 낙제점을 받은 공기업의 기관장은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기도 한다. 경영 평가에 1년의 명운이 달려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들은 경영평가단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공기관 평가위원에 신청서를 냈다는 한 교수는 “경영평가단에 지원했다는 것을 어디에도 말하지 않았는데 모 공공기업 이사장이 경영평가단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고 안부 전화를 걸어와 당황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전 작업’을 방지하기 위해 기획재정부는 경영평가단의 구성 명단을 평가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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