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경제단체 맏형’ 한기련 흔들리면서 결속력 ‘삐걱삐걱’
독자 행보 잦아진 경제단체들 ‘불협화음’


(사진) 허창수(오른쪽 둘째) 회장은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혁신안을 발표했다. 한국기업연합회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지만 과거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단체 이름을 바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한국무역협회(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이른바 ‘경제 5단체’라고 한다.

국내 경제단체 중 규모나 영향력이 가장 큰 곳들을 일컬어 이런 명칭을 붙였다. 이들 단체들은 예전부터 정부 정책에 대해 호응 또는 비판을 내놓으며 한목소리로 재계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곳곳에서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맏형 역할을 해오던 한기련이 최순실 게이트라는 암초에 빠지며 힘을 잃기 시작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중심 무너진 경제단체


한기련과 대한상의를 중심으로 목소리를 내오던 경제단체들은 한기련이 무너지면서 결집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삼성·LG·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기련이 앞장서고 대한상의·경총·무역협회·중기중앙회 등이 가세한 경제 5단체가 정부·정치권의 경제정책에 공동 대응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잇달아 한기련에서 탈퇴하면서 경제단체의 중심이 무너졌다. 한기련은 경제단체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반이 약화되면서 향후 생존 전략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데 급급한 처지가 돼버렸다.


예컨대 지난 1월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도 경제단체들은 서로 공동의 의견을 전달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유감을 나타냈다. 이를 두고 한기련이 최순실 사건에 연루되면서 나머지 단체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야당을 중심으로 한 상법개정안에 대한 대응 방식에서도 이들 단체가 엇박자를 내기 시작한 것을 엿볼 수 있다. 경제단체들이 상법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뜻을 모으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2013년 경제민주화 바람에 따른 상법개정안이 활발히 논의되던 당시 전경련을 중심으로 경제단체가 결집해 당시 상법개정안 추진에 반대 표명한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대한상의는 지난 2월 홀로 상법개정안에 대한 반대 표명을 정치권에 전달했다. 상법개정안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강력한 규제들,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조항들을 다수 담고 있다며 독자 행보에 나선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과 만나 상법개정안 반대 의사를 직접 전했고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각 정당들을 돌며 상법개정안 통과에 대한 반대 의사를 전달했다.


이로부터 얼마 뒤 한국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등 일부 경제단체가 상법개정안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서를 내기로 하고 대한상의 측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대한상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별도로 각 정당을 찾아 상법개정안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경총과 무역협회가 대한상의 측에 공동 보조를 취하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비록 지난 3월 7일 열린 경제단체협의회에서 오랜만에 각 단체들이 모여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존중하고 경제 살리기에 힘을 합쳐야 한다는 방침을 일제히 내놓았지만 여전히 미묘한 앙금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일례로 최근 A경제단체가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여기서도 갈등의 조짐이 포착됐다. B경제단체 관계자들이 행사 소식을 듣고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건넸지만 행사를 주관하는 A단체에서 회원사들을 대상으로만 진행하는 행사라며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결국 B단체는 참석을 포기했는데 취재 결과 양측 고위층 간의 감정싸움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향후에는 경제단체 간의 갈등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무엇보다 양대 축이던 한기련과 대한상의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알력 더 커지는 게 문제’

우선 전경련은 한기련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하면서 조직을 줄이고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대기업 그룹 회장들이 참석하는 회장단 회의 대신 개별 기업 최고경영자(CEO) 중심의 경영이사회를 최고 의결 기구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지역별 기업 대표들의 조직인 대한상의와 비슷한 형태로의 변화를 꾀하는 모양새다.


반대로 대한상의는 대기업위원회를 구성해 대기업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규제 입법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로 하는 등 외연을 넓히고 있다.

대기업을 대변해 오던 한기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대신 나선 것이다. 활동 반경이 일부 겹쳐지면서 양측이 기싸움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이런 경제단체 간의 불협화음 조짐이 답답하기만 하다. 대내외적으로 기업들이 경영 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단체 간 알력이 심해지는 모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제단체들이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이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며 “기업들의 의견과 요구가 정부나 국회에 관철될 수 있도록 협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