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별로 보조금 다르고 충전소·용량 부족이 ‘걸림돌’ (사진)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 설치된 친환경 전기차 충전 시설./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전기자동차 전성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 짧은 주행거리와 비싼 가격에 소비자의 선택을 주춤하게 했던 전기차의 단점이 속속 극복되면서다.
국내시장만 놓고 보면 테슬라가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상륙했고 한국GM 역시 상반기 순수 전기차 볼트 출시를 예고하면서 완성차 업체 간 불꽃 튀는 경쟁이 예상된다.
여기에 올해부터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전기차 구매 지원금을 내거는 등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은 자동차를 살 때 전기차를 구매 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하지만 정작 도로 위를 달리는 전기차는 서울·경기·제주 지역 외에는 눈에 잘 안 띈다.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을 조목조목 짚어봤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차는 제주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차였다. 내륙은 충전 인프라가 부족했고 차량 구매 지원금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선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지난해 31곳에서 올해 101곳으로 3배 넘게 급증했다. 지자체 보조금 평균 단가 역시 지난해 430만원에서 545만 원으로 뛰었다.
사실상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기차 구매비용을 2000만원(정부 보조금 1400만원 포함) 정도 줄일 수 있게 됐다. 접수 대수도 한 달 만에 1200대를 넘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충북 청주를 비롯해 지자체 보조금이 많은 일부 지역은 보조금 신청 전날부터 밤새워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2월 28일부터 보조금 신청 접수에 돌입한 서울 등 후발 지자체들도 보조금 신청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여기에 서울·경기·제주 등 특정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전기차 보급이 낮은 이유가 숨어 있다. 바로 ‘지자체별 차등 보조금’이다. 전기차를 살 때 정부가 지원하는 보조금은 지역에 상관없이 차량 1대에 1400만원으로 똑같지만 지자체 지원 보조금은 천차만별이다.
많게는 1200만원에 달하지만 한 푼도 지급하지 않는 곳도 있다. 이 때문에 보조금 지원이 없거나 적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차를 살 때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든다.
정부 보조금에 지방 보조금을 보태 지원하는 지자체는 전국 243개 중 101개다. 가장 많이 주는 지자체는 1200만원을 지원하는 경북 울릉군이다.
울릉군 주민은 본인이 1400만원만 부담하면 정부·지방 보조금 2600만원을 합쳐 4000만원짜리 전기차(현대 아이오닉 기본 사양 기준)를 살 수 있다.
충북 청주시는 1000만원, 전남 순천시는 800만원을 지방 보조금으로 지원한다. 지자체의 지방 보조금 액수는 대부분 500만~600만원 선이다. ◆ 지자체별 다른 보조금…잘 살펴야
지방 보조금을 지원하는 지자체 중에서 액수가 가장 적은 곳은 경남 통영·사천·양산·의령 등이다. 보조금은 300만원이다. 아예 주지 못하는 곳도 있다. 재정 여건과 관심 부족 때문에 지방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지자체도 142개에 달한다.
지방 보조금 액수와 전기차 보급은 정비례하는 추세다. 전기차가 가장 많은 ‘톱3’ 지역인 제주(3706대, 올 1월 기준)·서울(455대)·경기(226대)는 지방 보조금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작년부터 500만~700만원을 지원해 왔다.
반면 세종(14대)·전북(12대)·충북(14대)·대전(42대)처럼 작년에 보조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았거나 300만원만 지급한 시·도는 전기차 보급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30대 김현정 씨는 “전기차를 구매하고 싶어도 지원되는 차량 수가 적어 벌써 마감이 끝났다”며 “대당 4000만원이 넘는 차를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지원금으로 구매하니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17개 시·도 중 12곳은 충전소 부족
지역별로 전기차 보급이 차이 나는 둘째 이유는 인프라다. 환경부에 따르면 4월 12일 현재 전국 17개 시·도에서 운영되고 있는 개방형 전기차 충전소는 총 1494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제주 275곳, 경기 239곳, 서울 182곳, 경남 120곳 등 특정 지역에 편중된 상태다. 특히 세종시는 단 3곳에 불과했다.
시·도별로는 강원 56곳, 경북 78곳, 광주 48곳, 대구 83곳, 대전 24곳, 부산 53곳, 울산 19곳, 인천 43곳, 전남 88곳, 전북 61곳, 충남 67곳, 충북 55곳 등이다.
문제는 서울·경기·인천·경남·제주 등 5곳을 제외한 시·도는 지역의 넓이에 비해 개방형 충전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서울은 전체 면적 605㎢에 182곳의 개방형 충전소가 있다. 3.3㎢당 1곳꼴이다. 서울 시내에서 전기차를 운행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는 얘기다.
이는 100대 이상의 충전소가 설치된 시·도나 지역 면적이 좁은 인천도 마찬가지다. 경기 약 42.6㎢, 인천 약 24.3㎢, 경남 약 87.8㎢, 제주 약 4㎢에 1곳꼴로 충전소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행 중인 전기차(아이오닉 EV, 쏘울 EV, SM3 ZE, 트위지, 리프, i3, 라보피스 등 7개 차종)는 완전 충전 시 평균 주행거리가 109㎞(상온·저온 주행거리 합산 평균치) 정도다.
산술적으로 서울 등 5개 시·도에서의 전기차 운행은 큰 무리가 없다. 다만 다른 전기차에 비해 주행거리가 짧은 트위지(평균 62.4㎞)나 라보피스(평균 69.7㎞)를 운행하려면 경남 지역에서는 약간 아슬아슬한 수준이다.
하지만 기타 시·도는 완전 충전 시 전기차의 평균 주행거리보다 면적당 충전소의 거리가 멀어 산술적으로만 보면 주행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특히 강원도는 면적 198㎢당 1곳꼴로 충전소가 자리해 있어 충전소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다. 충전소 숫자가 적은 세종시 역시 155㎢당 1곳꼴로 있어 전기차 운행이 어렵다.
실제로 강원도에서 전기차를 산 김철호 씨는 전기차를 장 보러 가거나 가까운 곳에서 일을 볼 때 사용하는 세컨드 카로 사용하고 있다.
김 씨는 “좀 멀리 가야 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는 불안해 전기차를 이용하기 어렵다”며 “전기차를 몰고 나갈 때면 충전소를 찾으러 다니는 게 큰 고역”이라고 말했다. ◆ 급속 충전도 1시간…충전 속도 높여야
충전 시간도 전기차 보급에 장애 요인 중 하나다. 전기차용 급속 충전기가 많이 보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1시간을 급속 충전해도 80% 정도밖에 충전이 안 된다.
완속 충전으로 100%를 충전하려면 무려 9시간이 넘게 걸린다. 만약 급한 일이 있어 차를 몰아야 하는데 충전이 안 돼 있다면 낭패다.
장거리를 뛸 때면 급속 충전을 계속하더라도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간적 제약이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게 하는 것이다. 전기차가 퍼지기 위해선 선결 과제로 충전 시간 단축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한국 급속 충전기의 표준 용량은 50㎾다. 즉 100㎾ 충전이 가능한 전기차를 구매했다고 하더라도 충전 용량은 50㎾가 최대치다. 또 50㎾ 이상 충전기에 대해선 안전 인증도 없다.
한국에서 출시된 전기차의 전력 용량은 아이오닉 일렉트릭 75㎾, 쏘울EV 75㎾, SM3 Z.E. 46㎾, 볼트 50㎾, i3 50㎾ 등이다.
또한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테슬라 모델S(125㎾)나 닛산 리프(100㎾)는 100㎾ 이상을 지원하고 있지만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테슬라가 국내 판매에 나서며 완전 충전까지 75분밖에 걸리지 않는 독자적인 급속 충전기를 서울 광화문과 삼성동 2곳에 설치하긴 했다. 하지만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
테슬라가 완속 충전하면 완전 충전까지 무려 14시간이나 걸린다. 이마저도 호환성 문제로 전국에 들어선 전기차 충전소 가운데 180여 곳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테슬라는 충전 시간이 길다 보니 보조금도 지원이 안 된다. 환경부 고시인 ‘전기차 보급 대상 평가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환경부는 10시간 내 완속 충전을 할 수 있는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반면 일본이나 유럽은 전기차를 확산시키기 위해 급속 충전 출력 용량을 기존 50㎾에서 대폭 늘리는 등 발 빠른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도쿄전력·도요타·닛산·혼다 등 일본 전기차 업체를 중심으로 결정된 차데모(CHAdeMO)협회는 급속 충전 출력 용량을 기존 50㎾에서 150㎾ 이상으로 늘리는 기술 규격을 내놓았다.
폭스바겐·BMW 등 유럽 전기차 제작사 위주로 결성된 유럽 차인(Chain)협회도 최근 콤보 충전 규격을 50㎾에서 최대 350㎾로 늘리기로 내부 방침을 세우고 조만간 상향된 기술 규격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전기차가 더 대중화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충전 속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더욱이 배터리 용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고출력 급속 충전 규격 마련은 선결 과제로 꼽히고 있다.
고출력 급속 충전이 가능해지면 충전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기 때문에 사용자 편의 증대는 물론 주유소 사업자와 같은 충전 서비스 시장도 커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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