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리학 카페]
정치 전면에 나서고 싶으면 휴직이나 사표 내는 게 도리 (일러스트 전희성)
[한경비즈니스 칼럼=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국립대학의 교수로 있는 한 지인이 해준 이야기다. “우리 대학의 교수는 성향에 따라 네 부류로 나뉩니다.
4분의 1은 자신이 대학 총장인 줄 알아요. 나머지 1은 교육부 장관, 1은 총리, 마지막 1은 자신이 대통령인 줄 안다니까요.”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서열이 분명한 기업이나 관료사회보다 상대적 자율성을 누리는 교수들의 정치 지향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공자는 폴리페서와 품격 달랐다
좋은 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실과 실험실에서 밤을 새워야 할 교수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캠퍼스에서 찾지 않고 오로지 외부의 정치적인 직위에서 찾으려 드는 이가 있다.
이른바 ‘폴리페서(polifessor)’라고 불리는 철새형 교수들이다. 정치를 뜻하는 ‘폴리틱스(politics)’와 교수를 뜻하는 ‘프로페서(professor)’의 합성어다.
지식인이 전문 지식을 활용해 자신의 이상을 펼쳐보겠다는 비전을 가졌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춘추전국시대 공자의 주유천하도 말이 ‘천하 유람’이지 실은 자신의 사상을 정책을 통해 구현해 줄 군주를 찾아 헤맨 고난의 가시밭길이었다.
14년에 걸친 눈물겨운 주유천하는 처절한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남긴 저작물은 오늘날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폴리페서들은 자신의 역할 모델로 공자를 많이 거론한다. 물론 공자도 ‘나 좀 알아 달라’면서 눈물의 대장정을 했지만 그는 모든 것을 다 걸었다. 고관대작도 되고 싶고 대학교수직도 놓치기 싫어 안달하는 그들과는 품격이 달랐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혼자 처리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를 협력과 동맹을 통해 해결한다. 그렇다고 늘 타인과 협력만 할 수는 없다. 치열하게 경쟁하며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높은 지위가 주는 엄청난 편익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강력한 편익은 바로 정치적인 지위나 권력이 주는 편익이다. 개코원숭이의 우두머리 수컷은 식사 자리에서 가장 먼저 음식물에 손을 댈 수 있다.
물웅덩이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침팬지의 우두머리 수컷도 가장 인기 있는 암컷과 짝짓기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사람들은 큰 사무실과 고액의 연봉, 많은 판공비에 운전사가 딸린 자동차 등을 제공받는다.
◆키신저 “권력은 궁극적인 최음제”
특히 폴리페서는 별다른 노력 없이 특정 후보에게 ‘줄만 잘 서면’ 이런 권력에서 나오는 편익을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혹한다.
일단 이 길에 한 번 들어서면 절대로 헤어나지 못한다. 마치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처럼 뻔뻔해진다. 미국에서 국무장관을 오래 했던 헨리 키신저가 ‘권력은 궁극적인 최음제’라고 말한 것도 아마 이런 맥락일 것이다.
진화심리학자 더글러스 켄릭은 사람들이 집단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움직이는 선천적이고 본능적인 동기를 ‘지위(status) 부분 자아’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계층 서열에서 자신의 위아래에 누가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요컨대 폴리페서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치열한 투쟁은 영장류가 가지는 보편적인 지위 향상의 노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공자의 사례에서 말한 것처럼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국의 대학 교육과 학생들의 수업권을 인질로 잡는 것은 문제라는 소리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 캠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해 안달하거나 이 캠프 저 캠프를 기웃거리는 대학교수들이 비 온 뒤에 떨어져 뒹구는 벚꽃 잎보다 더 많다.
한국 대학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많은 교수들을 모욕하는 철새 교수들이 하루빨리 제 둥지를 찾아 떠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