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백번의 간언보다 중요한 것은 포용력과 알아듣는 귀
말에서 내려야 비로소 올바른 정치 가능해
(일러스트 전희성)


[한경비즈니스 칼럼=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선거는 모든 민주 시민이 마땅히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다.

시민들에게는 5년 만에 행사하는 위대한 권리의 마당이며 동시에 민주주의의 축제이기도 하지만 선거에 출마한 당사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전쟁이기도 하다.



◆ 비판을 멀리할 때 망한다



그러나 그 전쟁은 투표일에 이미 종결된다. 전쟁이 끝나면 새로운 정치가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우리는 여전히 마상(馬上)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통치만 하려는 대통령의 무능력과 무지로 엄청난 값을 치렀다.

그들은 경제적 윤택의 기대 심리를 투사한 유권자들을 현혹해 혹은 조작된 이미지와 복고적 향수 따위에 기대 권력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올바른 정치를 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급기야 박근혜 정권은 그 무능과 농단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헌법 수호 의지조차 의심받은 채 탄핵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마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마상건국(馬上建國)은 한고조 유방과 육가의 대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육가(陸賈)는 초나라 사람으로 서한 시대의 정치가이며 문인으로 언변에 능했고 사신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훗날 유명한 여태후가 죽은 후 조정에서 여 씨 일가를 몰아내는 데 공을 세움으로써 한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육가가 유방의 눈에 든 것은 아니었다. 출신이 미천한 유방은 학문이 매우 얕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선비들을 능욕하는 데 재미를 붙이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어느 날 유방이 육가를 불러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방략을 묻자 대답했다. “선현들이 말하기를 ‘논어’ 반(半) 부(部)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만일 선비를 존중하고 ‘시경(詩經)’으로 인심(人心)을 순화시키며 ‘서경(書經)’으로 정치의 거울로 삼으신다면 어찌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걱정하시겠습니까.”

그러자 황제가 버럭 소리쳤다. “짐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는데, 어느 겨를에 ‘시경’이나 ‘서경’ 따위를 보겠는가.” 황제가 굳이 따분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치기였다.


하지만 육가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상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지만 어찌 마상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居馬上得之 寧可以馬上治之).” 그의 단호한 대답에 황제도 놀랐다.

육가는 “진나라는 무력으로 육국을 통일하고 제후의 사직을 끊게 만들었으며 백성을 가혹한 법률과 지나친 부역으로 혹사하였습니다. 또한 진나라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해 수많은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죽여 천하의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진시황은 육국을 통일하고 황제에 오른 후 그의 가업이 자손만대에 전해질 것으로 굳게 믿고 시호를 1세, 2세, 3세로 제정했습니다. 하지만 3대도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10여 년 만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황제는 육가를 노려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그는 육가의 지적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침묵 끝에 황제가 말했다. “중대부의 직언을 잘 들었소. 이제 중대부는 내게 오늘 한 말을 정리해 책으로 바치도록 하시오.”



◆이전 정부 실패 반면교사 삼아야



황제는 조정에서 육가에게 발언하게 했고 육가는 인의의 강령을 설파했다. 황제는 계속해 문장을 지어 조정 대신들에게 강론하도록 했고 육가는 날마다 한 편씩 문장을 지어 바쳤다. 그렇게 모두 열두 편을 묶어 ‘신어(新語)’라고 명명하고 모든 대신들에게 치세의 교본으로 삼도록 명했다.

육가의 이 저술은 중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훗날까지 이어지는 한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세우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육가의 노력과 혜안의 힘이었지만 그것을 수용한, 게다가 그토록 글과 선비라면 지겨워했던 유방이 황제의 안목으로 받아들였던 아량과 열린 귀에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를 안고 출범했다. 하지만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그녀의 수첩에 오르지 않으면 적소를 얻을 수 없었고 비선 실세인 ‘강남 아줌마’의 추천이라면 부적격자도 요직에 앉혔으며 끝까지 자신이 신뢰할 인물만 감쌌다.

‘문고리 3인방’이나 ‘십상시’니 하는 게 세상에 고스란히 드러났어도 ‘국기 문란’을 운운하며 그들을 품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내쳤고 끝까지 응징했다. 듣고 싶은 말만 들었다.


누구나 고까운 소리를 꺼린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부의 파탄과 몰락은 결국 대한민국의 골든타임을 망쳤다.

그 뿌리는 비판에 철저하게 귀를 틀어막은 어리석음이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새로운 대통령이 권력을 쥐고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띄우고 항해할 것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몸을 사리고 겸손하려고 애쓰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 입맛에 맞는 이들을 가까이 하기 쉽다. 이전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5년 내내 긴장하고 스스로 조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