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전문성을 선보이는 가장 좋은 ‘홍보물’…오프라인 감성, 온라인으로 옮기는 데 힘써
직장인의 마지막 아날로그, '명함'의 세계
(사진) 아날로그엔진의 독특한 명함(좌)와 캐리커처· 별명으로 개성을 살린 스마트스터디의 명함(우)

[한경비즈니스=김영은 인턴기자] 직장인들의 하루에서 디지털이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출근길 스마트폰을 활용해 음악을 들으며 아침 뉴스를 보고 출근하자마자 e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을 켠다. 모든 문서는 파일로 전송하고 보관되며 팀원들과는 메신저를 통해 대화한다.

4차 산업혁명을 눈앞에 둔 지금 직장생활에서 디지털을 빼고는 일할 수 없다. 딱 한 가지, 명함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85×55mm의 작은 종이는 늘 우리 주머니 속에 남아 사람과 사람, 사회와 사회를 연결해 준
다. 한 장의 종이가 자신을 대변해 주며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자기의 첫인상이 된다. 디지털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명함은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인 셈이다.

◆ 핵심은 ‘정체성과 개성’
직장인의 마지막 아날로그, '명함'의 세계
(사진) 레고 본사 임원들의 정체성을 살린 명함(위)와 아날로그 엔진의 독특한 명함(아래)

명함이 자신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면서 개성을 담은 독특한 명함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람 온기에 따라 다른 문양이 나타나는 명함, 각도를 틀어야 글자가 보이는 착시 명함, 받은 사람이 조립해 색다른 모형으로 창작할 수 있는 조립 명함 등 ‘하나의 작품’이 돼가고 있다.

명함 디자인 전문 회사 아날로그엔진의 장미지 대표는 “예전에는 명함이 회사 로고·직책·전화번호·e메일 등을 적은 ‘직장 증명’의 도구였다면 요즘에는 자신을 이야기하는 ‘존재 증명’의 매개체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날로그엔진은 최고급 소재를 사용해 산업별 특징과 개성을 살린 명함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장 대표는 “명함이 단순히 정보를 나타내는 수단이 아니라 짧은 시간에 전문성을 보일 수 있는 홍보물”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직원들의 정체성을 담은 명함을 만들어 주는 곳도 있다. 유·아동 콘텐츠 브랜드 ‘핑크퐁’과 모바일 게임 ‘몬스터 슈퍼리그’로 유명한 스마트스터디는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답게 명함도 특별하다.

스마트스터디의 명함에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살린 캐리커처가 들어간다. 신입 사원이 입사하면 내부 디자이너가 직접 신규 구성원의 특징을 재치 있게 표현한 캐리커처를 작업해 명함을 디자인한다.

명함 앞면에는 본명과 직급 대신 개개인의 특성을 살린 친근한 별명이 적혀 있다. 대리·과장·차장 등 딱딱하고 수직적인 직급 체계 대신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는 호칭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족장’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김민석 스마트스터디 대표는 “스마트스터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2013년 초부터 닉네임과 캐리커처 명함 문화를 도입했다”며 “이를 통해 우리만의 수평적이고 유쾌한 기업 문화를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마트스터디의 다른 관계자는 “중요한 외부 미팅 시에도 자연스레 명함을 건네고 닉네임을 소개하면서 상대방을 웃게 하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명함을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적극 활용한 것이다.

◆ ‘대면 문화’ 살린 서비스 등장
직장인의 마지막 아날로그, '명함'의 세계
해외에서는 종이 명함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한 사람의 페이스북을 몇 분만 뒤져봐도 그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고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끼리 부딪치기만 하면 프로필이 교환되는 서비스가 생기고 비즈니스 인맥에 초점을 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도 생겨나면서 종이 명함의 시대는 끝나가는 분위기다.

실제로 구인·구직 기능에 초점을 둔 SNS 링크트인은 전 세계 사용자가 5억 명을 넘어서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첫 인사는 만나서 나누는 것이 예의인 아시아권에서는 링크트인의 열기가 해외만큼 뜨겁지 않다.

‘대면 문화’에 친숙한 아시아권에선 직접 손을 맞잡고 그 사람 품에 있던 명함을 건네받은 뒤에야 비로소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명함이 어떻게 진화되고 있을까. 세계의 디지털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아시아 특유의 ‘대면 문화’를 살린 명함 서비스가 등장했다.

명함 관리 서비스 ‘리멤버’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해 명함 사진을 찍으면 이름·직함·전화번호·주소 등 명함 속 정보를 자동 저장해 준다. 기존의 명함 관리 앱이 이미지 자동 인식 기술을 활용해 명함 속 글자를 컴퓨터로 읽어내는 것과 달리 리멤버는 900여 명의 타이피스트가 직접 정보를 기입하는 시스템을 선택했다.

명함마다 글자 위치와 폰트가 달라 오히려 자동 인식 기술을 활용하면 오류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리멤버는 링크트인처럼 완전한 디지털화가 아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만남으로 현재 150만 명의 사용자와 6000만 장의 명함을 확보했다.

명함(名銜)의 ‘함(銜)’은 ‘직함’이라는 뜻이지만 ‘마음에 품다’라는 뜻도 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명함은 단순한 관습이 아닌 한 사람을 마음에 품는 행위이기에 명함이 아직까지 아날로그를 이어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영은 인턴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