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은 근본적 해결책 안돼…유연한 노동환경 필요 (약력) 1957년 경기 안성 출생. 1975년 서울 경희고 졸업. 1983년 연세대 정치외교학 졸업. 1984년 LG금속 입사. 1990년 산하 설립. 2007년 위업인베스트먼트 설립. 2012년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 2015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현). /사진=서범세 기자
[한경비즈니스 I 대담=김병일 편집장·정리=차완용 기자] “중소기업은 보호나 지원 대상이 아닙니다. 시장경제만 잘 돌아가게 해줘도 중소기업의 상황은 좋아집니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5월 2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가진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중소기업이 제대로 된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정부가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박 회장은 중소기업청의 ‘중소벤처기업부(가칭)’ 승격을 골자로 하는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에 대해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2015년 3월 중기중앙회 회장에 취임한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기청의 부 승격을 요구했다. 박 회장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승격이 가져올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중기청이 갖지 못했던 입법 발의권과 부처 간 행정조정권 등의 권한이 주어지면서 정책 수립이나 예산 편성 등의 절차가 속도감 있게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 회장은 “분초마다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속도가 곧 경쟁력”이라며 “신속한 정책과 맞물린 유연한 중소기업의 경영이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날 마주한 박 회장은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결연한 모습도 내비쳤다.
박 회장은 “대기업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며 “더 늦기 전에 경제구조를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기 위해선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아니라 수요자를 중심으로 한 시장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공급자 위주의 시장은 자본의 우위에 있는 대기업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수요자 위주의 시장이 형성돼야 기업들의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면서 경제와 기업이 살아날 수 있는 구조의 틀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새 정부에서 엿보이는 희망도 얘기했다. 박 회장은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경영자로서 문 대통령의 과감한 인사를 보면 큰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회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사진)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서범세 기자
▶곧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청이라는 한계로 정책 결정에 대한 자율권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이 악화됐고요. 산업통상자원부의 전결을 거치면서 중소기업의 정책이 묻히고 대기업 위주의 정책이 주를 이뤘습니다.
물론 더 일렀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이라도 승격된다는 것이 어딥니까. 이제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컨트롤하면서 중소기업의 일자리나 고용 등의 환경이 한결 나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중소기업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대기업이 기침을 하면 중소기업은 몸살에 걸립니다. 2%대의 저성장 시대에서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정말 어렵습니다. 여기에 더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파고가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있습니다.
지난 정권 초반에는 중소기업 정책이 조금 나왔는데 1년도 채 안 돼 대부분의 정책이 사라졌죠. 이제는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중소기업 자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정책 과제는 무엇일까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틀을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바꾸는 것입니다. 또 정부가 시장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시장을 주도하게끔 해야 합니다.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경제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싸울 것이 아니라 제품의 성능을 놓고 소비자가 고르도록 하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시급합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초대 장관으로 힘 있는 사람이 와야겠습니다.
“힘이 있으면 좋지만 무엇보다 합리적인 인물이어야 합니다. 또한 올바른 시장경제를 만들 수 있는 넓은 안목을 갖춘 사람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새 정부 정책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노동문제는 보완했으면 좋겠습니다. 노동도 하나의 산업 범주에 속하는데 수요와 공급의 논리를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 우리 노동시장은 해고를 못하게 돼 있습니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고용자에게 선택의 권한이 없습니다.
회사가 어려우면 인원을 감축하고 경쟁력을 쌓기 위해 능력이 좋은 인력을 뽑을 수 있는 유연한 노동환경이 필요합니다.”
▶유연한 노동환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말 그대로 기업 현실에 맞는 유연한 노동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당연히 일자리가 늘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노동시간 단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중소기업으로서는 대기업 수준의 높은 임금 역시 부담입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직후에만 해도 15~20%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40%에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임금이 노동생산성이나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서 대기업의 임금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의 49.7%가 대기업 협력사로 묶여 있고 이들 협력사들은 대기업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원가절감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노동시간 단축이 중소기업에 큰 부담이 될 수 있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 법정 노동시간을 주 4시간 줄일 때에도 7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경제 여건이 더 어려워진 지금 주 16시간을 한꺼번에 줄이면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입니다.
노동시간 단축을 기업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하고 인력난이 극심한 기업이나 상시 노동자가 필요한 업종을 위해 노사가 합의한 1주 8시간의 특별 연장 노동은 허용돼야 합니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는 것도 중소기업으로선 감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큰 혜택을 볼 겁니다.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해서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오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번 돈을 한국에서 쓰지 않고 대부분을 본국에 송금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최저임금 인상이 국내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소득 성장에 따른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안 될 수 있습니다.”
▶공기업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진행 중입니다.
“비정규직은 경직된 노동시장의 부산물입니다. 대기업은 강성 노조로 인해 임금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해고도 어렵게 해 놓으니 정규직을 뽑는 대신 저임금의 비정규직을 뽑게 된 겁니다.”
▶공무원 채용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30대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죠. 하지만 너무 과해도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추경한다며 쏟아붓겠다는 돈이 아까워 죽겠어요. 정부는 돈을 풀기보다 인프라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활기차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돼야 합니다.”
▶소상공인 적합업종 지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요.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7%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에 근접합니다. 정책 실패의 부산물이죠. 이렇게 만들어 놓고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경쟁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1960년대 정부는 차관을 도입해 돈까지 줘가면서 국민들에게 저금하라면서 재벌을 키웠습니다. 지금의 재벌은 어떻게 보면 국민 기업인 것이죠. 하지만 지금의 대기업들은 재벌 3~4세가 문어발식으로 소상공인 업종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게 사회정의에 합당한 것일까요. 정부가 그 정도 키워 줬으면 국내 골목 시장을 뺏을 것이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의 경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국민과 국가에 돌려줄 수 있는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정부가 어음 제도 폐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어음 제도는 당연히 폐지돼야 합니다. 많은 중소기업이 어음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대기업 계열사 간의 지급보증 제도도 없애야 합니다. 부실한 기업을 계속 보증해 살리는 이상한 제도입니다.”
▶앞으로 중소기업중앙회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 같습니다.
“중기중앙회의 외로운 싸움이 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이익을 대변할 만한 사람들이 국회에 별로 안 보입니다.
정권 초기에는 시장경제를 잘하다가도 슬금슬금 공급자 중심의 경제로 되돌아 가는 것을 지난 50년간 봐왔지 않습니까. 특히 노동시장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 차원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cwy@hankyung.com
[중소기업이 다시 뛴다 커버 스토리 기사 인덱스]
- [중소기업 현실] '9988' 중소기업, IMF 이후 최대 위기
- [중소벤처기업부 승격] 통합 中企정책 펼칠 컨트롤타워 '기대'
- [중소기업은 바란다] "제발 이것만은" 중소기업의 '4대 희망사항'
- [인터뷰]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경제구조를 수요자 중심으로 바꿔야"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