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 제주평화연구원·한경비즈니스 초청 방한
“환경보존은 자녀 세대를 위한 현 세대의 책임이자 의무” (사진) 제12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기조연설 중인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 /김기남 기자
[한경비즈니스=차완용·최은석 기자]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사흘간 제주에서 열린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의 기조연설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고어 전 부통령의 이번 방한은 제주평화연구원과 한경비즈니스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고어 전 부통령은 빌 클린턴 정부 시절 8년간 부통령직을 완수한 이후 2000년 제43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환경운동가로 변신, 2007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고어 전 부통령은 방한 2일 차인 6월 1일 오전 제주포럼 특별 세션에서 ‘기후변화의 기회와 도전, 더 나은 성장은 가능한가’를 주제로 카본프리(탄소 제로) 섬을 지향하는 동북아시아 환경 수도 제주의 미래를 전망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신기후 체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가운데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전 지구적 협력 방안에 대해 조언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이날 오후 중앙대 흑석캠퍼스에서 한경비즈니스와의 단독 인터뷰를 가진 후 대학생 대상 특강을 진행했다. 중앙대 특강에는 700여 명의 대학생이 모인 가운데 기후변화 및 디지털 혁명, 세계화에 대한 열띤 강의와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 한국도 예외 아냐
고어 전 부통령은 6월 1일 제12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기조연설에서 정치인이 아닌 개인이자 환경 전문가로서 제주를 둘러본 소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왜 많은 관광객이 제주를 방문하는지 알게 됐다. 제주도의 청정함과 이것을 지키려는 제주도의 노력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고어 전 부통령은 “제주도의 카본프리(탄소 제로) 지향 계획이 한국을 청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 많은 공을 들였다. 여러 장의 슬라이드와 동영상, 언론 보도 등을 활용한 그의 강연은 진지하면서도 위트 있게 진행됐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구온난화와 환경 파괴가 인류에게 미칠 악영향을 경고하던 관록이 엿보였다.
고어 전 부통령은 강연 서두에 “수많은 사람이 내게 ‘환경에 대한 우리의 기존 인식과 행태를 바꿔야 하느냐’는 질문을 한다”며 “이에 대한 내 대답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구의 사진 두 장을 화면을 통해 보여줬다. 한 장은 1969년 아폴로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이었고 또 다른 지구 사진은 가장 최근에 촬영된 사진이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이 사진을 보며 “얼마나 아름다운가. 파란 보석이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지구 안에서 인류가 겪는 현실은 사진처럼 평온하지 못한 상태”라며 “인류가 화석연료 등을 연소하면서 배출하는 폐기물이 초마다 오존층을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특히 화석연료에 의한 지구의 오염을 우려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화석연료에 의한 환경오염이 급증하고 있다”며 “1951년 이후 매일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와 맞먹는 오염 물질이 대기에 배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1980년도 이후 시작된 지구온난화 현상도 화석연료의 사용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990년 이후 온난화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며 “무더운 날씨로 가축이나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 등의 피해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온난화가 불러온 자연재해의 연속성에 대해 설명했다. 온난화로 인한 해양 온도 상승이 더욱 많은 양의 수증기를 발생시켜 홍수와 강력한 태풍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고어 전 부통령은 “강력한 태풍과 홍수 발생 가능성이 금세기에 약 30% 정도 증가할 것이라는 통계가 지구온난화가 부를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통계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994년엔 대통령이 기우제를 지냈고 언론은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효자태풍’이란 용어까지 썼다.
그러다 2002년과 2003년 태풍 ‘루사’와 ‘매미’가 불어닥쳐 수백 명의 인명 피해와 수조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강릉에는 1시간 동안 내린 비가 한 해 강우량의 절반을 넘어선 적도 있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홍수 피해액은 20조원에 이른다. 홍수 피해로 제방이 무너진 하천이 복구되기도 전에 수해를 당한 사례가 다반사다.
고어 전 부통령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이 유럽은 물론 남미 등 전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인류가 재앙에 익숙해져 버렸다”며 경각심을 부추겼다. 그는 최근 한국이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이유도 온난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식량난에 대한 부분도 거론했다. 그는 “지구온난화가 곡물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기후변화에 따라 세계적으로 곡물 수확량이 급감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 제주포럼에서 기조연설 중인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 /김기남 기자
◆기후변화, 정치 불안마저 초래한다
고어 전 부통령은 특히 온난화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정치적 불안정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리아는 2006년부터 2010년 사이 비옥했던 토지의 60%가 기후변화로 사라졌다”며 “농민들은 생업을 잃고 난민이 됐다가 내전에 휩쓸렸다”고 말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온난화 현상이 계속 지속되면 전 세계가 식량난에 봉착할 수 있어 국제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국방부는 2014년 기후변화에 따른 세계 안보의 위협을 경고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온난화가 세계적 ‘의료 비상 사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남미는 물론 미국에도 지카바이러스가 확산 중이며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임신부의 50%가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카바이러스로 인해 기형아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며 “최근 남미와 중미 지역에서는 가임 여성들이 향후 2년간 임신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각종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자동차와 공장의 매연이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다”며 “대기오염으로 중국 북부 지역의 기대수명이 과거에 비해 5년이나 줄었고 중국과 인접한 한국 역시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주포럼 기조연설 중인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 /김기남 기자
◆기후변화의 해법은 신재생에너지
이런 상황에 대해 고어 전 부통령은 “우리의 책임”이라며 “다음 세대를 위해 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그것이 바로 환경 보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육지 생물의 50%가 우리 세기에 소멸될 것이란 전망이 있고 이는 우리 자녀 세대 안에 나타나게 될 현상”이라며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기후변화의 해법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꼽았다. 그러면서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매년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치켜세웠다.
고어 전 부대통령은 특히 제주도가 추진 중인 ‘카본프리 2030 프로젝트’를 거론하며 “제주도의 에너지 비전이 기후변화를 대비하는 미래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제주도가 전기차 100%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목표가 반드시 현실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제주도 곳곳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를 봤다”며 “풍력에너지를 구축하기 위한 제주도의 비전이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고어 전 부통령은 신재생에너지는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도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크게 늘어나는 일자리는 풍력발전소 등 친환경 설비를 건설하는 엔지니어”라고 주장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지구 오염으로 후세의 번영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은 매우 그릇된 일”이라며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Q&A
“트럼프와 무관하게 미국은 현명한 선택할 것” (사진) 제주포럼에서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에게 질문하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김기남 기자
Q. 원희룡 제주도지사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2015년 파리기후협정처럼 정치적 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최근 관련 산업과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트럼프 정부 이후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이 흔들리면서 기후변화 대응 속도가 느려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다.
A. 고어 전 부통령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력한 표현을 써가며 미국이 파리기후협정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해 추진하던 프로그램들을 이미 축소한 상태다. 하지만 미국의 각 주 정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애틀랜타와 하와이 등 미국의 수많은 주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도입을 선호한다. 기업도 잇따라 100%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약정했다. 이는 정치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변화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결정에 관계없이 미국의 각 주 정부와 재계, 공동체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지금 세계는 지속 가능 혁명의 초기 단계에 들어와 있다. 규모는 산업혁명 정도고 속도는 디지털 혁명 수준이다. 이는 세계 각국에서 시작되는 혁명이어서 결코 멈출 수 없다. 미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얘기한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관계없이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
Q. 내일학교(대안학교) 학생(20세)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일상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나.
A. 고어 전 부통령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일상에서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세 가지가 있다. 주변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대화가 이뤄질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라. 새로운 상품을 구매할 땐 가능하면 친환경 제품이나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제품 구매를 당부하고 싶다. 소비자가 기업에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져라. 정치인에게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라.
▶부통령 재임 중에도 지구온난화 심각성 경고
앨 고어 전 부통령은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의 제45대 부통령으로 8년(1993~2001)간 재임했다. 재임 기간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추진단장을 맡아 미국의 인터넷망 등 정보기술(IT) 인프라를 확충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부통령 재임 시절 국제 환경 관련 회의를 주도하며 환경문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도 앞장섰다. 1997년 기후변화에 관한 ‘교토의정서’ 창설을 주도하는 등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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