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스노피크’ CEO, 현장에서 발품 팔며 소비자 스킨십 강화
日 기업 CEO가 업무시간에 산으로 가는 이유
(사진)캠핑장이 어우러진 일본의 아웃도어 기업 ‘스노피크’의 본사 전경.(/스노피크)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요즘 일본에선 등산이 인기다. 경제적인데다 체력마저 좋아지니 일석이조다. 중·고령 남성의 취미에서 연령 불문의 여성 등산객으로 세를 확산 중이다. 산의 날이 가져올 경제 효과가 8200억 엔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 연구 기관도 있다.

◆연간 5000명의 소비자와 떠나는 여행

등산 취미의 증가세는 관련 기업으로선 둘도 없는 호재다. 대표 기업은 스노피크(Snow Peak)다. 2016년 약 95억 엔의 매출로 아웃도어 시장의 간판 기업으로 올라섰다. ‘사장 부재’라는 파격적인 경영 관행으로 사업 영속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사장은 ‘연간 60박 캠핑 떠나는 경영자’로 유명하다. 노림수는 간단하다. 고객이 있는 현장에서 문제 해법의 키를 찾기 위해서다. 잘 팔리지 않는다고 책상머리에서 고민해 본들 마뜩하지 않다. 발품을 팔아 접점 지점에 서야 돌파구가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회사의 주력 사업은 캠핑 관련 용품이다. 텐트를 비롯해 스토브·랜턴은 물론 야외 요리 도구 등 아웃도어 제품을 제조·판매한다. 회사 지향은 본격 아웃도어 라이프의 제안이다. 그래서인지 야마이 도루 스노피크 사장도 아웃도어 마니아다.

사장의 부재는 흔하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여행 떠나니 찾지 말라”고 남기면 그걸로 끝이다. 어떤 때는 최장 60박까지 캠프를 떠나기도 한다. 그러곤 “제 일은 연간 사업 계획을 만들고 매월 체크하는 게 전부”란다. 즉 “미래를 만드는 게 사장 일”이라는 것이다.

세계적 브랜드의 회사 치고 독특하다. 1958년 창업한 부친에 이은 2세대 최고경영자(CEO)로 현재 등산 용품을 벗어나 다양한 아웃도어 영역으로 제품 라인업 확대를 주도했다. 현재 미국·대만·한국 등에 지사까지 설립했다.

경영 철학은 ‘더 스노피크 웨이(The Snow Peak Way)’로 압축된다. 설명하면 ‘스스로 소비자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서로 감동할 수 있는 제품·서비스의 제공’이다. 이 때문에 야마이 사장은 연간 5000여 명의 소비자와 소통하기 위해 캠핑을 떠난다.

캠핑은 통상 1박 2일부터 2박 3일까지 소비자와 장기간 함께 지내는 게 원칙이다. 야생 현장에서의 캠핑답게 먹고 마시고 얘기하며 협력하는 원초적이고 인간적인 교류는 기본이다. 캠핑의 기대 효과는 크다. 먼저 역량 강화다.

텐트 설계를 비롯해 도구 사용법 등 동호인과의 캠핑 경험에서 스스로의 지식과 능력이 강화된다. 스노피크의 경쟁력을 탁월하게 설명해야 할 압박감도 있다. 불만·고충을 듣는 호기로도 제격이다.

이른바 캠핑 경영(Management by Camping)으로 불리는 경영전략은 이렇게 안착됐다. 과거 스노피크는 곤경에 빠졌었다. 1994년부터 6년에 걸쳐 연속 매출 감소를 겪었다. 26억 엔이던 매출이 15억 엔까지 추락했다.

캠핑 붐을 이끌었던 베이비부머가 자녀 성장과 맞물려 캠핑 시장에서 이탈한 영향으로 시장 자체가 축소된 결과였다. 결국 회사는 해답을 고객에게 직접 묻기로 했다. 1998년 소비자와의 캠핑 이벤트를 최초로 개최한 것이다.

회사 소유 캠핑장에 약 30팀을 불러 진솔한 대화의 기회를 가졌다. 지적 사항은 둘로 모아졌다. 가격이 비싸다는 것과 카탈로그에 있는 제품을 매장에선 찾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제조보다 고객 만족에 초점

그간 회사 제품은 도소매를 통해 제공됐다. 특히 소매점은 잘 팔리는 제품만 진열할 뿐이었다. 전체 제품 300여 개 중 10~30개만 구비된 배경이다. 제아무리 회사가 고객 친화로 어필한들 접점 제품이 적으니 한계는 뚜렷했다.

캠핑 이벤트 이후 회사는 경영 개혁을 시작했다. 도매 거래를 중단하고 1상권에 1점포를 둬 해당 점포에 회사의 전체 제품을 전시·판매하도록 했다. 맹렬한 사내 반대가 있었지만 판매점을 1000개에서 250개로 축소했다.

지역에 따라 1시간을 가야 해당 점포에 달하지만 그곳에 가면 전체 제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판매 채널을 축소함으로써 유통 마진이 줄어드니 그만큼 실제 가격을 대폭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회사는 2000년부터 수익 증가로 돌아섰다.

개혁은 계속된다. 2011년 4월 소비자에게 ‘더 스노피크 웨이’를 실감할 수 있도록 본사 자체를 장대한 캠프장 속에 건설했다. 고객과의 캠핑 이벤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부지 면적 16만5289㎡(5만 평)의 체험 무대를 본사로 결정했다.

무려 19억 엔이 들었는데 이는 회사의 사업 규모로 본다면 거액의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자랑거리였던 무차입 경영을 훼손하는 선택이었다. 자기자본비율 90% 이상으로, 절대 도산하지 않을 ‘불침 항모’라던 별명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성장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위기감의 타개 차원이었다. 위험한 선택은 역으로 조직 체질을 강고히 견인했고 신규 본사 완성 이후 5년 동안 연율 20%의 기세로 성장을 이끌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는 별로 없다. 아이러니다. 자체 제조는 회사의 상징적 간판 제품인 ‘캠핑 화로’뿐이다. 나머지 자체적인 제조 기능은 보유하지 않을 방침이다. 지역 집적의 기술력을 최대한 끌어내 활용하면 된다.

회사는 일본에서도 오지인 니가타에서 출발했는데, 이 지역은 예부터 칼을 비롯한 금속 식기를 만드는 중소기업이 집적된 곳이다. 지금도 1500여 개 회사가 금속가공 사업을 영위한다. 이들이 아웃도어 분야 제품을 만들고 회사가 브랜드를 얹어 가치를 창출하는 시스템이다.

지역에 잠자는 중소기업의 고도 기술과 세계적인 지명도의 전문 회사가 공존하는 구조다. 그 덕분에 개발된 상징적인 제품이 2.75mm의 오븐이다. 통상 8mm로 무거웠던 걸 장기 축적의 탁월한 주조 기술로 줄였다.

동시에 회사는 제조 제품 전체에 대해 보증서를 붙이지 않는다. 역으로 반영구적으로 수리를 보증한다는 의미다. 전체 직원 190명 중 수리 직원이 10명 있는데, 이들이 요청받은 제품 수선을 전담한다. 요즘 보증서가 붙지 않는 제품이 없다는 점에서 독특한 전략이다. 그만큼 고장 혹은 기능하지 않는 것에 민감하게 대응한다.

앞으로는 ‘어번 아웃도어(urban outdoor)’라는 제3의 치유 시장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야마이 사장은 계속해 밖에서 놀 생각이다. 여기에 아웃도어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