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기업 법률 자문 서비스 현황]
-충정·한경비즈니스 공동 서베이
-31개 대기업 대상 설문 진행…로펌 선정 시 ‘전문성’ 최우선 고려
‘로펌 무한경쟁 시대’…'이것'만 잘하면 살아남는다
‘로펌 무한경쟁 시대’…'이것'만 잘하면 살아남는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법률 시장 개방이 본격화되는 등 로펌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외국계 로펌들이 잇달아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앞으로 로펌의 생존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다만 대부분의 국내 로펌들은 여전히 과거부터 이어온 공급자 위주의 마인드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와 법무법인 충정은 공동으로 ‘로펌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법률 서비스 진단 및 개선 방안’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설문 조사는 국내 31개 대기업 법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이뤄졌고 일부 문항은 복수 응답으로 답변을 받았다. 질문은 국내 기업들의 △로펌 등 법률 자문 기관 이용 현황 △기존 로펌에 대한 평가 △국내 법률 시장 전망 등 크게 3개 항목으로 나눠 진행했다.

◆대기업일수록 대형 로펌 선호

우선 이용 현황과 관련해 31개 기업에 지난 3년간 이용한 경험이 있는 법률 자문 서비스에 대해 복수 응답으로 물었다. 질문에 답한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법률 관련 업무를 진행할 때 ‘국내 로펌’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사실 기업과 로펌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과거 외환위기(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고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로펌을 찾는 기업들의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기업 법무팀 관계자들에 따르면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대형 로펌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하다”는 설명이다. 대형 로펌은 수임료가 비싸다. 하지만 투입될 수 있는 변호 인력들의 수는 물론 경험과 노하우가 많다는 점이 비싼 수임료를 상쇄한다는 분석이다.

기업 법무팀이 업무적인 부담을 덜기 위해 대형 로펌을 선호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기업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업에 관련된 소송이 발생했다고 치자. 법무팀 직원들이 누구나 알 만한 대형 로펌에 소송을 맡겼는데 패소하면 윗선에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소형 로펌에 맡겼다가 패소하면 왜 애당초 대형 로펌에 의뢰하지 않아 패소했느냐는 말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대기업은 매년 법무 관련 예산이 따로 책정되는 만큼 웬만하면 대형 로펌과 계약을 많이 체결할 수밖에 없다.”

국내 로펌에 이어 기업들이 많이 이용한 법률 자문 기관은 ‘개인 법률사무소’였다. 기업들이 로펌에 비해 규모가 작은 개인 법률사무소를 찾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개인 법률사무소의 전문성이 뛰어나다고 판단될 때다. 이철웅 법무법인 밝음 변호사는 “대형 로펌이라고 해서 각 분야마다 무조건 경력과 전문성이 풍부한 변호사들이 실무를 보는 것은 아니다. 반면 개인 법률사무소라고 할지라도 한 가지 분야만 집중적으로 전담해 유명세를 탄 변호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기업 법무팀 직원과의 개인적 친분이 있을 수 있다. 기업 법무팀에는 로펌이나 개인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영입된 변호사들도 다수 포진해 있다. 사건의 경중에 따라 친분을 이용한 개인 법률사무소 이용이 많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는 수임료다. 개인 법률사무소는 로펌에 비해 수임료가 다소 저렴한 편이다. 대기업들이 수임료 때문에 대형 로펌 대신 개인 법률사무소를 찾기도 한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모든 사건의 규모가 큰 것은 아니다. 1000만원 이하의 사건도 있는데, 잘 알려진 것처럼 대형 로펌에서는 이런 소액 업무를 잘 받아주지 않는다고 기업 관계자는 전했다.

국내 기업들 중 외국계 로펌을 이용하는 곳은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이미 거래하고 있는 국내 대형 로펌들도 뛰어난 외국법 자문사를 갖춘 만큼 해외 기업과의 큰 M&A가 아니고서야 굳이 외국계 로펌을 찾는 일은 드문 편”이라고 했다.

다만 법률 시장이 전면 개방된 만큼 앞으로는 외국계 로펌의 문을 두드리는 기업들이 훨씬 늘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정거래 자문 급증할 전망

법률 자문 기관에 어떤 분야의 업무를 가장 많이 맡겼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 결과 M&A와 인사·노무 등으로 대표되는 기업 업무에 표가 몰렸다. 보통 기업이 M&A를 진행할 때는 경영진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경영 효율성 등을 따져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다만 M&A를 하게 될 때 상법과 증권거래법, 고용 승계 등과 관련한 문제도 존재한다. 따라서 변호사는 물론 증권거래법에 의한 회계 감사를 주된 업무로 하는 공인회계사의 관여도 필수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형 로펌은 M&A 시장에서 절대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민우기 법률사무소 서한 변호사는 “대형 로펌은 소속된 변호사와 공인회계사가 많아 M&A 때 모든 업무를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다”며 “기업으로선 변호사 따로 공인회계사 따로 계약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는 셈”이라고 했다.

로펌이 M&A에 관여해 이를 성사시키면 받는 돈은 그 규모에 따라 책정된다. 큰 기업 간의 M&A이면 한 번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장기간 일반 소송을 진행했을 때보다 큰 이득이다. 이렇다 보니 로펌에서는 최고의 업무로 M&A를 꼽는다.

인사·노무도 기업들이 자주 법률 자문 기관을 찾게 하는 단골 메뉴다. 인사는 예를 들어 한 직원이 근태가 좋지 않은데 해고해도 되느냐 등에 대해 자문한다. 자칫 부당해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노무는 쟁의행위가 발생했을 때 합법적인 노사 행위인지 여부를 주로 자문한다. 사업장 폐쇄 가능 여부에 대한 법률적 검토도 받는다.

특히 올해는 기업들의 공정거래와 관련한 법률 자문 기관 이용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기업의 거센 반발로 폐지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국 부활과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했다. 실제 단계적으로 이행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시민단체·소액주주 등도 고발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앞으로는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기업 수요도 늘 전망이다. 예전에는 지식재산권을 침해받더라도 그냥 넘어갈 때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삼성과 애플의 소송을 들 수 있다. 최근 한국 기업의 국제 특허 소송은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국제 특허 소송 건수는 2010년 58건에 불과했던 것이 2014년 244건으로 약 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간의 규모가 큰 지식재산권 분쟁은 주로 대형 로펌이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규모가 크지 않다면 법률사무소나 중소형 로펌들도 수혜를 볼 것으로 관측된다.

◆M&A서 대형 로펌 영향력 절대적

기존 로펌에 대한 평가 항목에서는 국내 로펌을 이용한 적이 있는 기업들에 로펌 선정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긴 부분을 복수 응답으로 물었다. 기업들은 로펌을 선정할 때 ‘전문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 및 업종에 대한 이해도’와 ‘경험·비용’ 등도 선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로 꼽혔다. ‘로펌의 명성’이나 규모 그리고 맨파워도 기업에서 간과하지 않았다.

최근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형 로펌들을 주축으로 잇따라 퇴직한 주요 공직자들을 고문 등으로 영입하는 것도 기업들의 이런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인맥이나 친분은 로펌을 선정할 때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닌 것으로 조사 결과 나타났다.

기업들이 전문성을 고려해 로펌을 선정했지만 100% 만족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로펌에 대한 불만족 요소에 대해 물은 결과 대부분의 기업들이 ‘전문성’을 지목했다. 즉, 전문성을 고려해 로펌을 선정했지만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한 곳도 많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로펌 무한경쟁 시대’…'이것'만 잘하면 살아남는다
신속한 피드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같은 답변은 여전히 많은 로펌들이 예전부터 이어온 공급자 위주의 마인드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주관식으로 국내 로펌들이 더욱 경쟁력을 갖추기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는 역시나 ‘전문성’이라는 응답이 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 밖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신산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고객과의 소통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등의 지적이 제기됐다.

◆‘법조인 3만 명 시대’ 순기능도 존재해

앞으로 국내 법률 시장 전망에 대해 복수 응답으로 물었더니 법조인의 증가를 예상하는 이들이 가장 많았다. 2010년 처음 1만 명을 돌파한 변호사는 매년 급증하며 2015년 2만 명을 넘어섰다. 매년 1600명 안팎으로 신규 인력이 쏟아지는 가운데 2021년에는 ‘변호사 3만 명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변호사가 늘어나면 청년 변호사 구직난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법률 서비스의 질이 성장하는 순기능도 예상된다. 실제로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도청·시청·교육청 등 정부 기관에서도 변호사를 선발하는 추세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과거 기업 법무팀 직원들 중에는 법대만 나온 이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변호사 출신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이다. 기업들도 예전 같으면 변호사를 과장 직급으로 뽑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대리나 평사원으로 뽑는 일도 다반사라는 게 기업 관계자의 전언이다.

변호사가 늘면서 봉사 차원에서 무료 법률 자문 서비스를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기업 법무팀에서는 대형 로펌의 시장 과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는데, 이에 대한 일선 변호사들의 시각이 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기우’라고 여기는 쪽의 주장은 이렇다. 대형 로펌은 수임료가 높기 때문에 주로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들이 찾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이나 일반인들은 주로 소형 로펌이나 개인 법률사무소를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 시장 자체가 다르다는 측면에서 대형 로펌의 시장 과점은 기우라는 주장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최근 경쟁이 심화되면서 일부 대형 로펌들이 수임료가 낮은 업무도 담당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한다. 이는 대형 로펌들이 시장을 독과점할 가능성을 충분히 나타내는 부분이라는 견해를 내비쳤다.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