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 모바일 게임]
‘메이드 인 차이나’ 어쩌나, ‘속 빈 강정’ 한국 게임 시장
리니지 3강 구도 깬 '소녀전선', 중국 게임 공습
(사진) 룽청의 RPG ‘소녀전선’.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속 빈 강정.’ 최근 한국의 모바일 게임 산업을 두고 회자되는 말이다. 2017년 현재 10조원대가 넘는 한국의 게임 산업은 도약기와 성장기를 넘어 ‘완숙기’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불황형 흑자’다. 외산 게임, 특히 중국산 게임의 공습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안에선 ‘고사양·고품질’ 중국산 모바일 게임에 밀리고 밖에선 세계시장 규모 1위인 중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혀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공습

애플리케이션(앱) 분석 업체인 앱애니에 따르면 7월 27일 기준으로 구글플레이 스토어 최고 매출 순위 10위 안에 중국산 모바일 게임 3개가 올랐다. 3위인 ‘소녀전선’을 시작으로 9위와 10위에 ‘반지’와 ‘뮤 오리진’ 등이다.

이 중 중국의 미카팀(MICA·TEAM)이 개발하고 대만 퍼블리셔 룽청이 서비스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역할수행게임(RPG) ‘소녀전선’의 기세가 무섭다.

6월 30일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이 게임은 출시와 동시에 소위 ‘대박’을 터뜨리며 최근 모바일 게임 지형인 ‘리니지 3강 구도’를 무너뜨렸다. 출시 직후인 7월 2일 10위권에 오른 후 한 단계씩 상승하며 7월 16일부터 약 2주째 3위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은 7월 5일 엔씨소프트가 아이템을 사고팔 수 있는 거래소 시스템을 탑재한 ‘리니지M’ 성인용 버전을 출시한 이후 ‘리니지 3강 체제’가 완성됐다. ‘리니지’는 엔씨소프트의 인기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지식재산권(IP)이다.

이 유명 IP를 사용해 만든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의 각기 다른 두 버전(성인용·12세)과 넷마블게임즈의 ‘리니지2 레볼루션’이 1위부터 3위까지 싹쓸이하며 3강 구도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중국산 모바일 게임의 기세에 3강 체제가 무너졌다. 업계 관계자는 “유명 IP를 활용하지 않고 대형 퍼블리셔와 손잡지 않아도 콘텐츠만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지금의 상승세로 보면 앞으로 1, 2위 게임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9위는 이엔피게임즈의 모바일 RPG ‘반지 : 에이지 오브 링(Age of Ring), 이하 반지)’이다. 이 게임은 4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고 출시 한 달 만에 10위 내에 진입한 후 2개월째 순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반지’는 중국과 대만에서 인기를 끈 모바일 RPG ‘영향기원’을 국내에서 퍼플리싱한 것으로 지난해 중국에서 출시된 이후 iOS 인기 순위와 매출 순위 모두 상위권에 올랐다. 탄탄한 스토리와 방대한 콘텐츠가 인기 요인이다.

이어 10위를 기록한 ‘뮤 오리진’은 국내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중국 게임이다. 2015년 4월 출시된 이 게임은 국내 온라인 게임인 ‘뮤(MU)’의 IP를 활용해 중국 게임 개발사인 킹넷이 제작했다. 중국 게임명은 ‘전민기적’이다.

이를 다시 웹젠이 역수입하면서 한국에서도 ‘대박’을 쳤다. 국내 서비스를 담당한 웹젠의 매출액은 뮤 오리진을 출시한 2015년 2분기에 전 분기보다 20배 이상 증가한 530억원을 기록했다.
리니지 3강 구도 깬 '소녀전선', 중국 게임 공습
(위)이엔피게임즈의 RPG ‘반지’, 웹젠의 RPG ‘뮤 오리진’

◆대규모 투자로 판 흔드는 중국

중국 자본의 침투도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전개됐다. 중국 게임 기업 중 매출 1위인 텐센트는 넷마블게임즈와 카카오를 비롯해 네시삼십삼분·파티게임즈 등 국내 30개 이상의 게임 기업에 투자했다. 투자비용은 2015년 기준으로 600억원이 넘는다.

‘차이나 머니’의 공습이 가속화하는 동안 국내 게임사들의 ‘차이나 드림’은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 중국 모바일 게임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한국 게임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환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한중 간 정치적인 문제로 세계 최대 게임 시장(2015년 기준 약 23조원)인 중국 진출 길이 막혀 있어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결정한 3월 이후 중국의 인가를 받은 한국산 게임이 단 1개도 나오지 않으면서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레드나이츠’,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 등은 이미 반년 전에 인허가 신청을 냈지만 아직 허가를 받지 못했다. 반면 같은 시기 인허가를 신청한 미국 게임 일부는 6월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심의 과정에서 자료 미비, 재심사 신청, 접수 후 심사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도 3월 이후 한국산 게임에 대한 인허가가 나지 않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이승원 네시삼십삼분 중국법인 대표는 “한한령(限韓令)은 실제 문건으로 하달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시기를 기준으로 서서히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게임 콘텐츠의 성격상 지속적으로 신기술과 트렌드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당장 한국 게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해 중국을 제외한 중화권(대만·홍콩·마카오 등)과 화교를 대상으로 하는 중국어 버전을 통해 시장성을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