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Ⅲ ‘조용한 휴가’호캉스 인기]
여행에 대한 인식 바뀐 소비자들…트렌드 따라 ‘맞춤 상품’ 속속 출시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인생은 놀이처럼 영위돼야 한다’는 플라톤의 말처럼 제때 놀고 제때 쉴 수 있는 것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덕목이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만큼 바쁜 하루를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휴식도 변하고 있다. 호텔에서 여유로운 하루를 즐기며 일상 속에서 ‘새삼스러운 쉼’을 누릴 수 있는 호캉스를 파헤쳐 봤다. I 사진 각 사 제공
욜로족의 휴가 ‘호캉스’ 익숙한 곳에서 낯섦을 찾다
(사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제공

# 명동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김민영(27·여) 씨는 오늘 퇴근길이 즐겁다. 회사에서 가까운 특급호텔을 예약해 늘 똑같던 퇴근길을 ‘휴가길’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호텔 예약 사이트에 평소 가고 싶었던 5성급 호텔이 합리적인 가격대에 올라온 것을 확인하고 주저 없이 예약했다. 매일 지나다니는 서울 빌딩숲이지만 최고급 호텔 침구에 누워 푹 쉬고 야외 수영장도 이용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생각을 하니 열심히 일한 날들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 맞벌이 부부인 최승재(35·남) 씨도 올여름 휴가는 멀리 떠나는 대신 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보낼 예정이다. 아이가 아직 어려 해외여행이 힘들고 부부가 모두 회사를 다니는 상황에서 연차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최 씨는 하루만 연차를 내 2박 3일 동안 키즈 패키지 상품이 있는 인천의 한 호텔에서 바캉스를 즐기기로 했다.

◆ 도심 속 호텔 바캉스

이처럼 최근 멀리 여행을 떠나는 대신 가까운 도심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는 ‘호캉스’족들이 늘고 있다. 호캉스는 호텔(hotel)과 바캉스(vacance)의 합성어로 호텔에서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휴식을 즐기는 휴가의 형태를 일컫는 신조어다.

호캉스 열풍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에 따른 소비 트렌드의 변화다. 2017년 상반기 가장 큰 문화 소비적 트렌드는 단연 ‘욜로(YOLO)’였다.

욜로 라이프는 단순한 소비의 개념이 아니라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자는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보고 듣고 느끼는 체험과 경험을 중시하는 욜로족들은 자신이 가치를 두는 것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 때문에 휴가도 자신을 위한 선물로 간주해 고급스럽고 아늑한 호텔에서의 휴식을 선물하는 것이다.

또한 이제 여행의 의미가 ‘떠나는 것’에서 ‘머무르며 쉬는 것’으로 바뀐 점도 하나의 이유다. 집이나 집 근처 호텔에서 머무르며 휴식한다는 뜻의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도 하나의 여가 트렌드가 됐다.
욜로족의 휴가 ‘호캉스’ 익숙한 곳에서 낯섦을 찾다
실제로 익스피디아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휴가가 왜 필요한가’라는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대부분이 ‘지친 마음과 영혼을 달랠 편안한 휴식(68.6%)’이라고 답했다.

이어 ‘더 큰 세상을 보며 견문 넓히기(8.9%)’, ‘새로운 문화와 사람을 접하며 자극 받기(7.6%)’, ‘새로운 것들을 접하며 유학, 미래 설계 등의 아이디어 얻기(6.9%)’ 순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직장인들에게 휴가는 온전한 휴식과 쉴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바쁜 일상을 살면서 긴 시간을 낼 여유는 없지만 휴식이 필요한 직장인들. 이들은 가장 적은 시간을 투자해 최고의 효율성을 얻을 수 있는 휴식으로 호캉스를 찾고 있다.
욜로족의 휴가 ‘호캉스’ 익숙한 곳에서 낯섦을 찾다
(사진) 서울 망원동에 있는 ‘1실 호텔’ 앨비어러스. / 앨비어러스 제공

◆ ‘보편화된 프리미엄’으로 변화

전문가들도 호캉스 열풍의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호텔과 휴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를 꼽았다.

한진수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이제는 남한테 방해받지 않는 휴식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며 “사람들이 붐비는 여행지에서의 관광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휴식의 극대화’를 이루기 위해 호텔은 아주 적합한 곳”이라고 말했다.

특히 호텔은 다양한 부대시설과 문화적인 요소가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다채로운 휴가를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한 교수는 이제 호텔이 단순히 객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문화·레저 등 극세분화된 소비자들의 요구 조건에 잘 부합할 수 있도록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다양하게 변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부합하기 위해 호텔이 ‘융·복합적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로 많은 호텔이 대형 전시회·공연과 연계한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롯데호텔 월드점은 7월 13일부터 뮤지컬 ‘나폴레옹’이 포함된 객실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롯데호텔의 뮤지컬 ‘나폴레옹’ 패키지는 슈페리어룸, 2인 조식, R석 티켓 2장으로 구성돼 있다.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또한 8월 한 달 동안 호텔 인근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의 제휴 마케팅을 통해 투숙객 누구나 최대 40%까지 할인받을 수 있는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밖에 대부분의 호텔이 캠핑, 페스티벌, 어린이 교육과 연계된 다양한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도심 속 휴가가 충분히 가능한 이유다. 특히 호텔은 즉흥적이거나 충동적인 소비가 이뤄지지 않는 곳이다. 소비자의 관여도가 높고 재구매 고객이 높은 카테고리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가치가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진수 교수의 설명이다.
신규 호텔의 증가로 호텔 공급 포화 상태와 모바일 및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발달도 호캉스 보편화에 크게 기여했다.

특급호텔뿐만 아니라 비즈니스호텔과 디자인 호텔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합리적인 가격에 호텔을 예약할 수 있는 OTA(호텔 예약 사이트)가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호텔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

호텔이 더 이상 특별 계층만 이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가 아니라 다양한 소비층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화된 프리미엄’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호텔 타임 커머스 애플리케이션(앱) ‘호텔타임’에 따르면 호텔 이용자 연령이 30대가 37.5%, 20대가 29.5%로 2030세대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호텔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기존 가족 단위 고객에서 휴가를 즐기러 오는 젊은 세대로 소비층이 옮겨 가고 있는 것이다.

◆ 호캉스로 호텔 내수 증가

소비자에게 호캉스가 또 다른 휴식의 형태라면 호텔업계에 호캉스는 어떤 의미일까.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불안정한 해외 고객 수요와 공실률을 안정시키고 내수를 증가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김홍범 세종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4·5성급 호텔에서 이처럼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는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 비율이 급격하게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등 국제 환경적인 이유로 의존도가 특히 높았던 중국·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호텔업계도 위험한 상황을 맞이했다.

호텔업계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이 필요했다. 끊어진 외국인 관광객들로 말미암아 생긴 공실을 국내 고객 확보로 대응한 것이다.

실제로 특급호텔과 비즈니스호텔의 내국인 고객 이용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국인 투숙은 주말·연휴·명절·휴가 시즌에 집중됐다.

웨스틴조선호텔 서울도 내국인 고객의 투숙률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고 6월에는 작년에 비해 내국인 투숙객이 15% 증가했다.

패키지를 기획하는 임유선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지배인은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러 오는 고객이 대부분”이라며 “호텔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패키지의 구성도 호텔에서 이용할 수 있는 혜택들이 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호텔의 상황도 비슷하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여름 성수기인 7~8월에 내국인 고객 비율이 특히 높다”며 “놀이 시설이 인접한 잠실월드호텔이나 대전·마포·구로 등 도심의 4성급 비즈니스호텔 이용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은 평균적으로 외국 국적의 고객 비율이 높은 편이지만 여름 시즌이 들어서면서 내국인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임미영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 과장은 “주말에는 내국인 평균 객실 점유율이 90% 이상”이라고 말했다.

임 과장은 “호텔을 방문하는 20~30대의 이용객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단순히 숙박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투숙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모바일 환경에 친숙한 밀레니얼 세대는 OTA를 통한 예약률이 높기 때문에 OTA 예약에 대해 추가적인 특별 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프로모션을 함께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진수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제는 소비자가 정보를 찾기보다 ‘정보가 다가오는’ 세상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소비자들도 표준화된 정보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호텔 공급의 포화로 경쟁이 심화되고 호텔 상품의 유통 구조도 변하고 있어 호텔이 다양성과 차별성에 주안점을 두고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한 교수는 “최신 시설이나 품격 높은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마음을 읽고 상품의 ‘질’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한국 호텔의 경영이나 서비스 능력은 국제적인 수준에 올랐기 때문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 유형별로 즐기는 '호캉스' 어디로 떠나볼까
1. 호화로운 호캉스를 원한다면

◆ 롯데 시그니엘서울 '선라이즈 요가'
욜로족의 휴가 ‘호캉스’ 익숙한 곳에서 낯섦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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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쁜 직장인을 위한 합리적인 호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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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내맘대로 서머'패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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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라톤 그랜드 인천 '공항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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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미 있는 호캉스를 원한다면

◆1실 호텔 앨비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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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