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 금융 혁신 - '디지털 혁신’ 어디까지 왔나 ]
은행 넘어 증권·보험까지, 금융의 진화
네오뱅크·로보어드바이저·머니슈퍼마켓…소비자 중심의 혁신 필요
미래의 은행,증권, 보험은 어떤 모습일까?
(사진) 해외에는 금융에 디지털 혁신을 결합한 핀테크 기업들이 주류 금융 업체들을 위협할 만큼 성장하고 있다. 1) 미국의 네오뱅크 '모벤' 2) 영국의 P2P금융사 '조파' 3)미국의 로보어드바이저업체 '베터먼트' 4) 영국의 보험플랫폼 '머니슈퍼마켓'.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국제통화기금(IMF)은 해마다 금융시장의 금융심도(실물경제활동 대비 금융부문의 상대적 규모), 접근성, 효율성 등 3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183개국의 금융시장 발전지수를 발표한다. 이중 대한민국의 성적은? 심도 10등, 접근성 9등, 효율성 1등으로 선진국과 비교해도 ‘매우 상위권’이다.

ATM(현금인출기) 보급대수는 이미 2014년 10만명당 282대로 세계 1위 수준으로 올라섰으며, 1인당 평균 1.9장의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을 만큼 신용카드 사용률도 높은 수준이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88%로 세계 1위다.

디지털금융·핀테크 전문 기업 데일리금융그룹의 신승현 대표는 “국내 소비자들은 이미 은행과 증권, 보험 등의 서비스에서 쉽고 빠른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며 “쉽게 말해 금융에서 디지털 혁신이 메울만한 ‘빈틈’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이미 인터넷과 온라인을 통해 쉽고 빠른 금융서비스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은행이며 증권, 보험사 등은 절실하게 ‘디지털 혁신’을 외치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우리의 ‘디지털 금융라이프’는 얼마나,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까.

◆온라인으로 간 소비자들, 금융사들의 ‘신(新)무기’ 찾기

국내 금융업계는 2000년대 초반 한 차례 인터넷을 통해 작은 변화를 겪은 바 있다. 각 시중은행은 저마다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개발하고, 증권사들은 HTS(홈트레이딩시스템)을 거쳐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가 보편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한 가지 변화가 있다. 금융 소비자들이 더 이상 ‘오프라인 영업지점’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환전을 위해 은행 지점을 방문하면 직원이 먼저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곤 했다. “고객님 이런 신용카드가 나왔는데 어떠세요?”, “고객님 재테크에 관심 있으시면 이런 펀드는 어떠세요?” 대개는 이런 종류의 말이다.

쉽게 말해 영업 지점에 방문한 고객들을 상대로 ‘대면채널의 영업’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의 고객들은 인터넷 홈페이지나 모바일 등을 이용해 ‘자기가 목적으로 한 금융 서비스’만 이용한 채 냉정하게 접속을 끊어버린다.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니 수수료가 감소하는 것도 문제지만, 금융사들의 입장에서는 온라인으로 접속한 고객들을 유혹할 신(新)무기가 필요하다.

이는 금융사들의 수익구조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증권사다. 일반적으로 증권사 수익은 절반 이상이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으로 창출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MTS 등을 통한 온라인 거래가 일반화되면서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줄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대형 증권사 5곳(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의 위탁매매 수수료가 전체 수수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사이에서 56.7%에서 47.1%로 가파르게 하락했다. 이는 은행과 보험사도 마찬가지다. ICT(정보통신)와 금융의 결합에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이와 같은 위기를 타개할 신성장 동력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2000년대 국내 금융업계를 휩쓸었던 ‘인터넷 열풍’과 지금 국내 금융업계에 휘몰아치고 있는 ‘디지털 혁신’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나타난다. 기존의 금융사들은 ‘공급자 중심’에서 인터넷을 통해 금융 서비스를 조금 더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뒀다. 금융 시장의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등 ‘개선’을 위한 작업을 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와 같은 작은 변화로는 소비자들의 시선을 끄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 소비자들이 금융 서비스를 사용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잘 관찰한 뒤, 그야말로 전에 없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ICT기술로 인해 금융서비스의 주도권이 ‘금융회사 중심’에서 ‘금융소비자 중심’으로 넘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지급결제, 자산관리, 소매대출, 인슈테크 등 금융산업 전반에서 혁신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고 설명했다.
미래의 은행,증권, 보험은 어떤 모습일까?
◆ 은행-시중은행과 맞짱 뜨는 네오뱅크, P2P금융

현재로서 소비자들이 이와 같은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분야가 다름 아닌 은행 서비스다. 그 중심에 인터넷전문은행이 있다. 최근에는 ‘네오뱅크’라는 조금 다른 개념도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과 혼용돼 쓰이기도 하는데, 네오뱅크란 쉽게 말해 ‘은행이 아닌 기업’이 은행 등과 제휴를 통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미국의 ‘모벤(Moven)’이 대표적인 네오뱅크 서비스다. 모바일을 통해 모든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카카오뱅크과 유사하다. 모벤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모벤과 제휴한 특정 은행에서 자신이 이용 중인 계좌나 소비이력, 투자 내역 등의 모든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고객의 소비행태를 분석해서 월평균 지출그래프를 보여주는 등 재무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모벤은 현재 7개 국가에서 7개 은행의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이렇게 모은 고객 규모만 2억명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모벤’이 은행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모벤’에 접속하면 은행과 똑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만 고려하면 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향후 핀테크 기업들이 이와 같은 구조로 모바일을 통해 은행 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인터넷전문은행’에 이어 시중은행들의 새로운 경쟁자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외에 최근에는 은행의 대출, 송금, 환전 서비스 등을 위협하는 핀테크 업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중금리 대출 시장을 공략하며 20~30대의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는 P2P금융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현재 국내 P2P금융은 부동산PF(프로젝트 파이낸싱)가 대부분인데, 기존 은행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국내의 경우 핀테크 기업이 국내 금융사들과 경쟁하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내에 P2P나 송금, 환전 핀테크 기업 중 누가 기존의 은행 시장을 뒤흔들만한 ‘창조적 파괴자’로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대표적인 해외 사례가 영국의 P2P금융사인 ‘조파(ZOPA)’다. 2005년에 시작한 조파의 비즈니스 모델은 은행 및 대출 업체들보다 더 좋은 이자율에 온라인, 오프라인 차용인과 대금업자를 연결해주는 것이다. 10여년 동안 조파는 무려 8만명의 투자자를 통해 6억7000만 파운드(한화 약 9798억원) 가량의 대출을 중개할 만큼 급성장했다.

최근에는 취급 상품 확대를 위해 ‘은행 라이선스’를 신청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올해 6월 40개가 넘는 업체들로부터 약 3200만 파운드(약 472억원)의 투자를 받아 디지털은행 설립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이다. 이에 대해 마크 카니 영국중앙은행(BOE) 총재가 “핀테크 업체들의 높아진 인기는 전통적인 주류 대출 모델을 뒤흔들 수 있다”고 진단했을 정도다.

◆증권$보험 - 승부수는 ‘자산관리 서비스’, 로보어드바이저·플랫폼 비즈니스 각광

은행 서비스와 비교해 증권과 보험 분야는 아직 국내에서 ‘디지털 혁신’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뒷받침 되면 송금, 환전, P2P 대출 등 각각의 서비스마다 특화하기가 쉬운 은행 서비스와 달리 증권과 보험 분야는 ‘라이선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증권사나 보험사가 아니면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현재 증권과 자산운용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는 ICT기술은 ‘로보어드바이저’다. 최근 키움증권, NH투자증권 등 국내 증권사들이 속속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하거나 준비 중이다. 쿼터백자산운용과 디셈버앤컴퍼니와 같은 로보어드바이저 핀테크 기업들이 시중은행이나 증권사들과 손을 잡고 시장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

국내 첫 로보어드바이저운용사인 쿼터백자산운용의 장호준 전무는 “로보어드바이저라고 하면 흔히들 사람보다 로봇이 더 투자수익률이 높다는 식으로 비교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본적으로는 리스크 관리를 위해 글로벌ETF 등에 ‘최적의 분산 투자’를 찾아주는 알고리즘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해외사례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베터먼트(Betterment)는 2010년 론칭한 미국의 대표적인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다. 이 업체의 핵심적인 경쟁력은 고객의 투자성향 등 목표를 명확히 파악, 목표에 맞는 최적의 자산군을 설정해 자산을 배분하는 데 있다.

국내 금융업계에서는 증권뿐 아니라 은행, 보험 분야를 망라하고 로보어드바이저에 특히 관심이 높다. 온라인으로 접속하는 고객들에게 가장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는 분야가 다름아닌 ‘WM(자산관리)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10년 전부터 자산운용 트렌드가 분산투자, 저비용 투자로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향후 금융산업의 발전방향과 맞닿아 있는 만큼 앞으로 국내 금융 산업에 로보어드바이저가 침투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 분야에서는 디지털 혁신이 주로 ‘플랫폼’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국내 보험 시장의 구조적 특징과 연관이 깊다. 보험 상품은 특유의 복잡성으로 인해 보험사와 소비자 사이에 일종의 판매전문가(보험설계사)들이 위치해 있다. 바로 이 단계에서 ICT기술을 활용해 개개인에게 최적의 보험상품을 비교하고 찾아주는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쉽게 말해 보험상품의 ‘편집숍’인 것이다.

영국의 ‘머니슈퍼마켓’이 대표적 사례다. 금융상품의 만물상이라 할 수 있는 ‘머니슈퍼마켓’은 가입자와 보험사를 연결해주고 판매 수수료를 받는 플랫폼 서비스로 현재 런던거래소에 상장해 시가총액 2조7000억원에 이를 만큼 성장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향후 보험 분야에서는 IoT(사물인터넷)와 결합한 상품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높다. 자율주행차량이나 스마트폰 혹은 신체에 부착되는 액세서리 등에 센서를 결합해 ‘선제적으로 위험을 관리하는’ 단계까지 진화해 갈 것이다. 스마트폰 앱 등을 통해 하루 동안 걸음걸이 수를 측정한 뒤 ‘만 보 이상’ 걸음수를 채운 소비자들에게 예금금리를 높여준다거나 보험금을 낮춰주는 것이 초보적인 수준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센서 기술 등의 발달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IoT와 보험이 완벽하게 결합된 사례가 탄생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