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 시대 예고' 자영업·중소기업 경영난 우려…일자리 감축·해외이전 등 해법 골몰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연 16.4%.’ 7월 15일 고용노동부의 2018년 최저임금 인상안 발표 이후 경영계가 얼어붙었다.
2018년 7580원 이후엔 2020년 1만원 시대를 예고한 정부안에 1980년대 한국 경제의 근간이었던 노동집약 산업체들은 구조조정과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소상공인 역시 인건비 상승에 따른 영업이익 하락으로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월 영업이익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영세 상공인의 상황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이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주요 경제 단체를 통해 역대 최대 폭으로 인상된 최저임금의 인상률 재심의를 요청했다. 이들은 왜 ‘최저임금 1만원 시대’에 반기를 들었을까.
(사진) 각 지역 소상공인 대표들이 8월 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최저임금 관련 지역 소상공인 대표단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인상안에 따른 생존권 위협을 주장하며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인건비 1.5배↑, 영업이익서 손실로”
시화산업단지에 자리한 섬유산업 업체 A사. 최근 이 회사는 노동자의 3분의 1가량이 잔업 근무에서 제외됐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2~3교대 근무가, 최근에는 4시간의 잔업 근무가 보통이었지만 회사 측이 일감이 줄었다며 한 달 간 노동시간 감축을 결정한 것이다.
이곳에서 최저임금(현 6470원)을 받으며 일하는 김영미(가명·51) 씨는 회사의 결정이 달갑지 않다. 잔여 근무 제외로 월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야근수당과 특근수당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일감도 문제지만 앞으로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회사가 직원들을 자를 것이란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며 “동료들 간 눈에 보이지 않는 생존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옆 공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섬유 가공 업체 B사 대표는 “2000년대 중후반 염색 업체들이 중국으로 줄지어 이전할 때도 소수 인원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며 “사양 산업으로 일감이 주는 데 비용(인건비 등)이 늘어나 버리면 우리 같은 영세업체는 아예 문 닫으란 얘기”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시화·반월산업단지 업체 1000여 개를 대변하는 사단법인 스마트허브경영자협회 관계자는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며 “추후 업체들의 의견을 종합해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며 논란의 주인공이 된 경방과 전방도 대표 섬유산업 업체다. 이 업체를 비롯해 12개 섬유산업 업체를 대표하는 대한방직협회는 7월 24일 12개 업체 중 8개 면방 업체를 대상으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이 경영 실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발표했다.
방직협회는 최저임금이 내년 시급 7530원으로 오르면 전체 노동자 중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비율은 기존 55%에서 74%로 높아질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면 8개사의 1인당 평균 인건비는 연간 3546만원에서 4104만원으로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는 2020년에는 인건비가 5389만원으로 2017년보다 1.5배 이상 뛸 것으로 협회 측은 내다봤다.
반면 인건비 증가 등으로 영업이익은 감소할 전망이다. 현재 8개사의 2016년 영업이익은 32억원으로 최저임금 인상 시 8개사는 약 270억원의 영업 적자를 낼 것으로 협회 측은 추산했다.
결국 업계의 선택은 인력 감축 또는 해외 이전이다. 전방은 경영난과 내년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으로 직원 600여 명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업계의 해외 이전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의복을 제외한 섬유제품 제조업이 작년 한 해 동안 해외에 투자한 금액은 총 2억524만 달러(약 2316억원)다. 집계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2011년(2억6919만 달러) 이후 최대 규모다. 전년(1억242만 달러)과 비교하면 2배 뛰었다. 2014년에는 28개에 불과했던 해외 신규 법인 설립 수는 44개로 전년보다도 3개 더 늘었다.
섬유업계 관계자는 “이미 오래전 사양산업에 접어든 터라 업계의 구조조정이나 해외 이전 소식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섬유산업의 직원 대부분은 중$장년층”이라며 “3D 산업이다 보니 젊은이들이 찾지 않는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져 한국 땅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1980~1990년대 섬유산업과 함께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한 신발 산업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부산경제진흥원 소속 신발산업진흥센터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 시 신발 단가에 인상분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들은 가격 인상에 부담을 느껴 소비가 줄고 회사 운영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부산상공회의소는 지역 제조업 102곳을 대상으로 의견을 청취한 결과 새 정부의 정책 중 가장 우려되는 것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39.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제조업 중심의 중소업체가 즐비한 이곳 지역의 경영자들은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기업 현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점진적$단계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부산상의 조사연구본부 관계자는 “최악의 경기 상황에서 임금 인상은 경영난과 직결되고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요인”이라며 “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 청년고용의무할당제, 비정규직 감축 등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에 대한 우려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소상공인연합회 등 주요 경제 단체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안 발표 이후 우려를 표명하며 최근 고용노동부에 이의 제기를 신청하고 재심의를 촉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중소기업의 42%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고 있다”며 “고율의 최저임금 인상은 가뜩이나 어려운 영세기업의 경영 환경을 악화시키고 일자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경제 단체는 자영업자의 경영 위기에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영업자(소상공인) 27%의 월 영업이익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건비 인상은 자영업자의 존폐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사실 이번 인상안으로 중소기업보다 더 절박한 상황에 놓인 것은 소상공인”이라며 “당장 생계 위협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상가 권리금 폭락” 일자리 감축 예고
“최저임금 인상안이 발표된 날, 자영업자의 상가 권리금도 날아갔다.” 계상혁 전국편의점가맹점주협의회 회장은 “주식이 폭락하면 시가총액이 몇 조원 사라졌다고 대서특필하듯이 자영업자의 경제 가치도 절반가량 떨어진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GS25$CU$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각사 가맹점주협의회가 가입한 단체를 이끄는 계 회장은 서울 의정부에서 13년째 편의점을 운영하는 가맹점주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안이 현실화되면 편의점의 야간 근무가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7530원에 주휴 수당과 4대 보험을 포함하면 시급은 총 9030원이다. 야간 노동자의 1일 노동시간을 평균 13시간으로 본다면 하루 11만7390원으로 주5일 근무(23영업일) 시 월 급여는 270만원이다.
계 회장은 “야간 영업으로 270만원 이상을 버는 가맹점이 많지 않다”며 “상당수의 가맹점이 야간 근무자를 감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국내 프랜차이즈 편의점의 가맹점당 영업이익은 1860만원이다.
영업이익은 연매출에서 재료비·인건비·임차료·광고비 등 영업비용을 제외하고 점주가 실제 손에 쥐는 이익금을 말한다. 이를 월수입으로 환산하면 155만원, 내년도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한 157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20대 초$중반이 주로 일하는 PC방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서울 종로구에서 20년째 PC방을 운영하는 최윤식 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 이사장은 “업계는 폐업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분위기”라며 “1만원 시대가 오면 PC방 업종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PC방은 다른 업종과 달리 임금 인상분을 생산품에 포함하기 어려운 구조다. 과당경쟁으로 서비스 가격이 시간당 평균 500~1000원으로 20년째 물가 상승률과 반비례하고 있다. 그는 “요금을 올리는 순간 손님들이 떠날 것”이라며 “업주들은 상시노동자를 줄일 생각을 하고 있다. 가족 경영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건비 비율이 높은 요식업도 가파른 인상 폭에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종로3가에서 24년째 한식당을 운영 중인 이근재 한국외식업중앙회 서울시협의회 회장은 앞으로 ‘최저임금 쓰나미’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요식업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세제 개편안에 따른 가격 파괴(인하)를 이미 단행했다”며 “내년 인건비 상승에다가 노동시간 단축까지 적용되면 5인 이하 사업장은 가족 경영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달 서비스를 하는 업체는 배달하는 직원을 줄여 테이크아웃만 하거나 낮 2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타임을 만들어 시간 쪼개기 장사를 하는 곳도 생길 것”이라며 “물가 상승은 불가피한 수순”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의 위기감이 계속되자 소상공인연합회는 8월 1일 총 532명의 소상공인 사업주와 연합회 회원의 의견이 담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업계 실태 조사’ 보고서를 내고 이들의 의견을 대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3.1%(173명)가 현재 아르바이트 직원 2~3명을 고용하고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 시 전체 응답자의 68.1%(356명)는 종업원 감축이 매우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들은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내놓은 지원책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부 지원책은 △최저임금 초과 인상분 지원으로 최저임금 보전 △카드 수수료 인하 △상가 임대차 보호 공정화 거래 △프랜차이즈 합리화 대책 등이다. 구체적인 지원 대상과 규모는 상이하다.
계 회장은 “단기 아르바이트 직원이 많은 편의점 업계 특성상 4대 보험 가입 대상이 아닌 곳이 많아 정부 지원안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근재 회장은 “소상공인 업종 부가세 3~5% 인하와 같은 근본적인 세제 지원책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상공인들은 최저인금 인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최윤식 이사장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급격한 인상 폭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가파른 인상으로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높아지면 고용 창출력도 같이 떨어져 일자리 감소 등의 사회적 부담을 모두가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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