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Ⅱ : '최저임금'의 경제학 = ‘최저임금 1만원’ 성공하려면]
‘1만원’ 금액 만큼 가파른 상승도 문제...
지역별·업종별 차등화, EITC·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체계 보완 필요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문재인 정부가 7월 15일 ‘대담한 실험’을 시작했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향한 첫걸음을 뗀 것이다. 2018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결정됐다. 이를 통해 정부가 그리는 큰 그림은 명료하다. 가계의 소득 증대를 통해 민간 소비를 늘리고 다시 기업의 고용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 실험의 결론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첫 단추부터 잘 꿰려면?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첫 단추부터 잘 꿰려면?
(사진) 2018년 시간당 최저임금 7530원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전국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 제공=연합뉴스

◆ "최저임금 의존도 높은 '임금체계 개선'이 먼저"

이번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가장 먼저 지적되는 부분은 ‘급격한 인상 폭’이다. 2018년 최저임금은 2017년(6470원) 대비 16.4% 상승으로 2000년 이후 최대 폭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마다 10%가 넘는 최저임금 인상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제공하는 주요국의 최저임금 관련 지표다. 통상적으로는 일반 노동자의 중위임금(전체 노동자의 임금 소득을 금액 순으로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에 있는 소득)에 비해 최저임금을 몇 %까지 보장해 주느냐다.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이 50% 수준을 ‘적정하다’고 보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이 지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의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은 48.4% 수준이다. 프랑스가 62.3%로 가장 높고 호주는 53.5%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이 39.8%, 미국이 35.8% 수준이다. 영국은 48.4%로 한국과 동일하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요국별 최저임금 변화 속도를 살펴봐도 한국은 빠른 속도로 최저임금이 상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한국의 실질 최저임금은 2000년 대비 2배 이상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최저임금 인상률은 노무현 정부(2003~2007년) 평균 10.6%, 이명박 정부(2008~2012년) 평균 5.2%, 박근혜 정부(2013~2016년) 7.4%로 특히 2013년 이후 매년 7% 이상의 최저임금 인상을 지속해 왔다.

문제는 최저임금이 이처럼 꾸준히 오르는 동안에도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줄어들지 않은 채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2000년 24.6%에서 2007년 26.0%, 2015년 23.5%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성장률이 3% 미만으로 하락하며 고용률이 59~60% 수준으로 정체되고 소득 분배가 악화된 결과다.

이는 OECD 주요국들과 비교해 봐도 높은 수준이다. 한국보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높은 나라는 미국(25.0%, 2015년 기준)이 유일하다. 영국 20%, 독일 18.7%, 호주 15.5%, 일본 13.5%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에선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영국이나 독일 등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그만큼 ‘직접적이고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영삼 국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특히 ‘최저임금 인상률과 미만율의 관계’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임금 노동자 비율을 나타내는 최저임금 미만율은 2003년까지 5% 미만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10% 인상 시기의 미만율은 11.9%로 치솟았고 2012년까지 다시 하락하다가 2013년 이후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아지며 다시 상승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6년 최저임금 미만율은 13.6%로 나타났다.

박 연구위원은 “그만큼 국내에 저임금 노동자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법률 위반이 만연돼 있다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에는 최저임금의 미만율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의존도가 높은 임금 체계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첫 단추부터 잘 꿰려면?
◆ ‘최저임금발 구조조정’ 공포감 확산되는 이유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장 먼저 과부하가 걸릴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의 68.2%가 집중된 자영업자와 영세중소기업 등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5년 경제 총조사에 따르면 한국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의 월평균 영업이익은 228만원 수준이다. 2015년 국민연금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50대 이상 자영업자의 45%가 월평균 수입이 100만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월 150만~200만원 구간으로 최저임금이 오른다면 ‘최저임금발(發) 자영업 구조조정’이 유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2020년 1만원을 목표로 3년 연속 10% 이상 인건비가 오른다면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까지 인건비 부담 증가로 도산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지는 분위기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6월 332개 회사를 대상으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인상(매년 15.7% 이상)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5곳(55%)이 “인건비 부담으로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올 하반기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도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들의 공포심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적되고 있는 가계 부채 문제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500조원이 넘는 자영업자 부채다. 만약 금리 인상이 현실화된다면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들은 ‘금리 인상’에 ‘임금 인상’까지 이중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조 교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노동자들은 소비보다 저축, 경영진은 고용 증대보다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그러면 소득 주도 성장의 전제 조건이랄 수 있는 ‘거시경제 순환의 고리’가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역시 다양한 보완책을 논의 중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 1차 경제 관계 장관 회의에서 7월 16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 완화를 위한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과거 최저임금 인상 추세(5년간 평균 7.4% 인상)를 초과하는 임금 인상 부담에 대해서는 직접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정부는 이번 지원 규모가 인건비 직접 지원(3조원 내외)과 각종 경영 개선 지원비용(1조원 이상)을 포함해 4조원 이상의 규모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원책으로는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최저임금발 일자리 구조조정’ 공포심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중소기업중앙회 측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내년 기업의 추가 부담금만 15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업이 늘어난다면 최저임금과 연동돼 있는 정부의 실업급여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고용보험법에 따라 실업급여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90%로 설정돼 있다. 대규모 지원금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기업이 떠안아야 할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들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최저임금의 지역별·업종별 차등 적용’ 방안이다.

일본과 독일 등 해외에서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곳이 적지 않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7월 30일 ‘최저임금 인상의 의의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문재인 정부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실현 전망을 크게 높였다”며 “그것이 실현되기 이전부터 여러 가지 부정적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지역별·업종별 차등적 최저임금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최저임금 6030원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비율은 울산이 8.9%, 전남이 19.4%로 지역 간 격차가 크게 나타난다. 산업별로 살펴봐도 광업·국제 및 외국 기업은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한 명도 없지만 가구 내 활동(62.2%)과 농림어업(46.2%), 숙박·음식업(35.5%)은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 일자리 지원 ‘종합 패키지’ 마련돼야

근로장려세제(EITC)와 고용보험 등 다양한 사회보장 정책들을 함께 논의해야 할 필요성도 강하게 제기된다. 2009년 도입된 EITC는 저소득 노동자 가구에 노동 장려금을 세금 환급 형태로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현행 EITC는 최저임금 보완 대책으로는 한계가 명백하다. 가구주는 최저임금(2017년 기준 6470원)을 받으면 근로장려금은 최대 98만원(월 8만원)에 불과한 데다 맞벌이를 하는 젊은 부부 가구는 2인이 최저임금만 받아도 EITC 대상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박 연구위원은 “근로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EITC의 최저임금 대비 지급 요건과 지급 수준을 모두 높여야 한다”며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사업과의 연계 방안과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최저임금이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과부하에 걸릴 수밖에 없다”며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통상임금과 일치시키고 △탈호봉제로 임금 체계를 개선하며 △퇴직 후 고용 능력 높이기 위해 직무능력 교육을 강화함과 동시에 △평생 직무 능력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창업을 지원하는 등 종합적인 차원에서 일자리 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