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리더들, 글로벌 감각으로 4차 산업혁명 대비…20~30대도 경영수업 한창]
젊어지는 재계…속도 내는 후계자 교육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한국 기업집단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재계 2·3세들이 그룹 총수에 오르거나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맡는 등 책임 경영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고 젊은 나이대의 3·4세들은 여러 요직에서 경영 수업에 한창이다.

이미 알려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물론이고 효성도 올해 조현준 회장 체제를 완성하며 본격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그런가 하면 20~30대의 젊은 3·4세들은 일찌감치 가족 회사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배우며 경영 수업을 받고 있고 가족의 회사가 아닌 다른 기업의 회사에 들어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한다.

이들은 나이가 젊은 만큼 진취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장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 최근 저성장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 40대 ‘젊은 리더’로 재계는 리셋 중
젊어지는 재계…속도 내는 후계자 교육
올해 초 효성그룹은 정기 인사를 통해 조현준 사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조 회장은 1968년생으로 49세다. 아직 젊기에 당초 부회장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을 깬 파격 승진이었다.

1957년 조홍제 창업자가 효성을 창업한 데 이어 1982년 조석래 전 회장이 그룹을 이끌어 온 지 33년 만에 ‘3세 경영’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조 회장이 부회장을 건너뛰고 회장을 바로 맡은 것은 4차 산업혁명으로 시분을 다투는 경영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젊은 감각을 갖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부친 조 전 회장의 판단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령인 조 전 회장의 건강상 이유도 이번 경영 승계에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회장 외에도 40대의 ‘젊은 리더십’은 재계에 여러 명 있다. 이재용 부회장, 정용진 부회장,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등은 모두 조 회장과 동갑내기인 1968년생이다.

현대가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1972년생)은 30대에 총수에 올라 벌써 회장 취임 10주기를 맞았다. 롯데그룹·SK그룹·두산그룹은 이미 2세, 3세, 4세로의 경영 체제가 구축됐다.

현대차그룹·LG그룹·한화그룹·한진그룹·금호아시아나그룹 등 주요 그룹도 3세, 4세로의 경영 승계가 마무리되면 재계 리더십은 수년 안에 새로운 변곡점을 맞는다.

한국 경제는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대부분이 부모의 아낌없는 지원 속에 최고의 교육을 받고 유학을 다녀와 글로벌 감각을 갖추고 있다. ‘글로벌화’는 재벌 3·4세들의 중요한 특징이다.

1·2세처럼 해외 대학원 수료, 명예박사 등 이른바 ‘간판’이 아닌 해외 대학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거의 필수적으로 밟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재용 부회장이다.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대학원 석사와 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정의선 부회장 역시 샌프란시스코대 MBA를 졸업했고 허세홍 GS글로벌 대표이사는 스탠퍼드대 MBA, 박세창 금호아시아나 사장은 매사추세츠공과대 MBA,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서던캘리포니아대 MBA를 각각 나왔다.

◆ “후계 분쟁은 없다”…사이 좋은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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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형제가 사이좋게 경영 수업을 받으며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신세계다. 정용진 부회장의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은 최근 대구 신세계 그랜드 오픈식에서 모습을 보이는 등 대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재계에서는 향후 정 부회장이 이마트를 맡고 정 사장이 백화점을 맡는 방법으로 신세계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한다.

SPC그룹도 눈길을 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두 아들인 장남 허진수 부사장과 차남인 허희수 부사장은 SPC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신사업을 추진하며 성공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

특히 허진수 부사장은 제과제빵 연구·개발(R&D) 분야에 집중하며 해외에 파리바게뜨 매장을 240개나 열었다. 허희수 부사장 역시 지난해 ‘쉐이크쉑’을 국내에 성공적으로 도입하며 ‘수제 버거’ 흥행에 성공했다.
젊어지는 재계…속도 내는 후계자 교육
농심도 형제 경영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농심그룹 창업자 신춘호 회장의 3형제는 각각 자신들이 맡고 있는 그룹 계열사 지분을 늘리며 회사를 이끌어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 장남인 신동원 회장은 농심홀딩스를 통해 농심을 지배하고 있다. 차남 신동윤 부회장은 율촌화학 경영을 맡고 있다. 신동익 부회장은 비상장 회사인 유통기업 메가마트의 최대 주주다. 메가마트를 통해 농심NDS·호텔농심·농심캐피탈 등을 아우른다.

업계에서는 농심가의 지배구조 정리 작업이 추가로 이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올해 5월 신동원 회장과 그의 장남 상렬 씨는 신동윤 부회장으로부터 농심홀딩스 주식 30만1500주를 326억원에 매수했다.

농심 최대 주주인 농심홀딩스 지분율을 끌어올려 농심 경영권을 강화했다. 신동윤 부회장과 그의 아들 시열 씨는 농심홀딩스로부터 율촌화학 주식 207만8300주를 276억원에 사들여 율촌화학 지분을 늘렸다.

◆ 이제 걸음마 시작한 오너가 3·4세

반면 이제 막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한 제벌가 3·4세들도 있다. 우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외아들 정영선 씨가 올해 5월부터 그룹 계열사인 현대투자파트너스 이사로 출근을 시작했다.
정 이사는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에 건너가 대학을 졸업한 뒤 얼마 전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투자파트너스는 계열사 투자자문을 맡고 있던 현대투자네트워크가 사명과 업종을 변경한 회사다.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사업화하는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여신 전문 금융사다.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의 장남 신중하 씨도 2015년 교보생명 자회사 KCA 손해사정에 대리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의 장남 동환 씨도 현재 빙그레 구매팀에서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첫 직장으로 언스트앤영(Ernst&Young) 한영 회계법인에 입사, 인수·합병(M&A) 어드바이저팀에서 근무했고 3년 전 아버지 밑으로 들어갔다.

차남 동만 씨는 빙그레 계열사가 아닌 G마켓 마케팅 부서에서 사원으로 2년째 근무 중이다. 이들 형제가 사회 첫 직장을 다른 회사에서 하는 이유는 김호연 회장의 경영 방식이다. 김 회장은 평소에도 “온실 속 화초는 절대 야생초를 이길 수 없다”는 경영 철학을 강조해 왔다.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도 아들 경영 수업을 외부에서 시키고 있다. 장남 오영 씨는 신세계백화점에서 근무 중이다.

2014년 백화점의 인턴 사원으로 합격해 6개월 동안 인턴 근무를 마치고 신입 사원으로 발령받았고 신세계백화점 나이키·리복·아디다스·아웃도어 등 해외 유명 스포츠 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MD부서 스포츠팀 소속이다. 사실 매일유업은 가족 경영 체제 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영 씨가 납품 거래처인 유통 업체에서 말단 사원으로 근무하는 이유는 실전을 쌓기 위해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기선 씨는 1년간 중앙 일간지 인턴 기자로 근무하고 이듬해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한 다음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경영 자문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현대중공업 전무로 근무 중이다.

◆ 재벌가 여성시대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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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 여성의 경영 진출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제계 1·2세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지만 3·4세로 접어들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신라호텔 이부진 사장과 삼성물산 이서현 사장 자매를 비롯해 신세계 정유경 사장, 대상 임세령 전무와 임상민 전무 자매, 삼천리 이만득 회장의 삼녀 이은선 이사,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전 세대에는 후계 승계가 주로 남성 위주로 이뤄지던 것과 달리 이들은 남자 형제보다 빠르게 경영 수업을 받고 지분을 늘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몇 년 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 오너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재계는 보고 있다.

특히 이전 세대의 여성 오너 경영인들이 주로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유지를 이어 갔다면 이들은 대주주 일가로 일찍부터 경영에 참여해 왔다는 게 큰 차이점이다.

이러한 가운데 몇 년 뒤 여성 총수가 탄생할 가능성이 가장 큰 회사로 꼽히는 대상그룹에서는 임창욱 명예회장의 두 딸 임세령·임상민 자매로 이뤄진 후계 구도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은 최근 나란히 전무로 승진했다. 장녀 임세령 전무는 대상의 식품BU 마케팅담당중역을 맡았고 차녀 임상민 전무는 식품BU 전략담당중역 겸 소재BU 전략담당중역으로 근무 중이다.

이번 승진을 놓고 업계에선 이들 자매가 본격적인 경영 수업 및 승계 작업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최근 기존 회사에서 퇴사한 최태원 SK 회장의 장녀 윤정 씨는 SK의 자회사인 SK바이오팜에 입사했다.

윤정 씨는 2015년 베인앤드컴퍼니에 입사한 뒤 석유화학·정보기술(IT) 등 SK그룹의 주력 사업과 관련된 팀에 배속돼 일해 왔다. 이 때문에 당시부터 ‘사실상의 경영 수업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젊어지는 재계…속도 내는 후계자 교육
또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장녀이자 농심 신춘호 회장의 외손녀 서민정 씨도 주목받고 있다. 서 씨가 주목받는 이유는 경영권 승계를 표상하는 지분 때문이다.

그는 서 회장으로부터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 26.48%를 증여받아 서 회장에 이은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서 씨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아모레퍼시픽의 경기도 오산 공장에서 평사원 직급으로 화장품 생산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지만, 최근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 GS·LS·부영 등 후계 구도는 안갯속

하지만 여전히 후계 구도가 안갯속인 기업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GS그룹이다. GS는 보수적인 유교 가풍으로 ‘장자 승계’를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허창수 GS 회장의 장남 허윤홍 GS건설 전무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장남인 허준홍 GS칼텍스 전무,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장남인 허서홍 GS에너지 상무,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 허세홍 GS글로벌 대표이사 부사장도 유력 후보군으로 부상했다.

그 와중에 3세 막내인 허용수 GS EPS 대표이사 부사장의 (주)GS 보유 지분이 허창수 회장을 넘어서면서 후계 구도를 흔들 변수로 부상했다. 허 부사장은 고(故)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범LG가인 LS그룹도 크게 다르지 않다. LS는 고 구평회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열 LS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구자용 E1 대표이사, 구자균 LS산전 대표이사,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은 LS엠트론 대표이사 등 형제·사촌 경영의 친족 경영을 하고 있다.

LS는 지난해 말 3세 경영 준비에 들어갔다. 구자엽 회장의 외아들인 구본규 LS산전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켰고 구자열 회장의 아들 구동휘 이사도 30대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됐다.

이 밖에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아들인 구본웅 포메이션그룹 대표, 고 구자명 회장의 아들 구본혁 LS니꼬동제련 전무, 구자철 예스코 회장 아들 구본권 LS니꼬동제련 차장도 있다.

부영그룹도 승계 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중근 회장이 여전히 부영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자녀들(3남 1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줄지 확실하지 않지만 누가 경영권을 승계 받든 지분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장남인 성훈 씨는 부영주택 부사장, 차남 성욱 씨는 부영주택 전무, 3남 성한 씨는 부영엔터테인먼트 대표, 장녀 서정 씨는 부영주택 상무를 각각 맡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부영그룹의 후계자가 가시화되지 못하는 것은 이 회장의 ‘리더십’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회장은 재계 순위권 기업들과 달리 1세대 ‘창업자’이며 전 계열사에 강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말 공시 기준 22개 계열사 중 6개 기업에 대해 80~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2개 기업에 대해 40~50% 수준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부영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은 부영-부영주택-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구조이며 부영주택은 7개 계열사에 대한 지배적 지분을 유지하고 있다.

cw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