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리포트]
철강은 예상보다 영항 크지 않을 듯…단기보다 장기적으로 큰 부담

[정리=김정우 한경비즈니스 기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7월 12일(현지 시간) 한·미 FTA 협정문 제2조에 근거해 협정의 수정을 논의하기 위한 공동위원회를 개최하자는 내용의 서한을 한국에 보냈다. 양국 간의 협정에 따르면 일방의 요청이 있을 때 30일 내에 양측은 회합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공동위원회 개최에 동의한다는 답변을 미국 측에 보냈고 공동위원회를 통해 FTA가 양국 간 무역에 미친 영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한·미 FTA 재협상…‘자동차’ 산업 위기 가중 전망
규정대로라면 8월 11일까지 공동위원회가 열려야 하지만 USTR이 8월 15일까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혀 이 일정은 사실상 지키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한·미 FTA가 2010년에 이어 둘째 개정을 앞두고 있는 것은 기정사실화됐다.

미국이 한·미 FTA를 문제 삼는 이유는 이 협약이 자국 제조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확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정책 과제다.

그런데 지난해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는 한·미 FTA가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한·미 FTA 체결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제조업에서만 7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예상했지만 2011~2015년 9만5000개의 일자리가 없어졌고 이 중 약 75%가 한국과의 제조업 무역수지 악화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한·미 FTA가 자국 제조업 및 일자리에 부정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까지만 해도 다수의 미국 내 정부기관·경제단체·연구기관·언론 등에서 한·미 FTA의 호혜적 성과를 여러 번 언급했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2015년 기준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수지가 283억 달러 적자이지만 FTA가 없었다면 적자 규모가 440억 달러에 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헤리티지재단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자동차 수출은 FTA 발효 이후인 2011~2015년 약 200%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한·미 FTA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고 결국 수정을 앞두게 됐다.

◆철강 업종에 대한 우려는 과도해

지금까지 언급되고 있는 협상의 주요 이슈 분야는 자동차 및 부품, 철강, 서비스 시장 및 에너지 부문 추가 개방 등이다. 다만 한·미 FTA 재협상 이슈 자체가 주식시장에 미치는 단기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한·미 FTA가 진행된 과거 사례나 1990년대 무역 분쟁 사례들을 살펴본 뒤 내린 결론이다. 협상의 윤곽이 나타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교역조건 이외에 해당 산업의 경쟁력 등 다양한 요인이 해당 업종의 펀더멘털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7년 한·미 FTA 최초 협상 타결 이후 모건스탠리캐피털인덱스 한국지수(MSCI Korea) 업종별 지수의 신흥지수(EM) 대비 12개월 수익률은 소프트웨어·제약·정보기술(IT) 하드웨어 등의 업종이 선전했고 통신·유틸리티 등은 부진했다.

하지만 2010년 재협상 타결 이후에는 보험·소프트웨어 등의 상승이 두드러지고 유통·증권 등이 부진했다. 협상이 최종 발효된 2012년에는 유틸리티·통신 등이 선전하고 운송·건설 등이 하락하는 등 한·미 FTA와 주식시장과의 상관관계는 입증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수지 불균형 개선 의지가 특정 산업에 중기적으로 미칠 영향은 우려된다. 특히 미국의 무역 적자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품목 등이 그렇다.

무역 데이터를 기준으로 미국의 대한국 무역 적자 비율이 높은 품목은 자동차와 소비재(휴대전화·가전·의류·가정용품·생활용품 등)다. 이같이 미국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고 미국 쪽에서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려고 하는 산업에 향후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가장 우려되는 산업은 자동차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자동차와 철강 분야를 불공정 업종으로 지목했다. 실제 양국 간의 무역수지 불균형 중 약 70%를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다.
한·미 FTA 재협상…‘자동차’ 산업 위기 가중 전망
특히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현재 한국의 자동차 기업들은 구조적 변화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등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도하지 못하고 있고 상품 경쟁력 저하와 해외시장 자동차 수요 부진 등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펀더멘털이 견조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미 수출이 위축되면 주식시장에서 추가 할인 요인이 될 수 있다.

철강 업종에 대한 우려는 과도하다. 한국의 미국행 매출 의존도와 대미 무역 흑자 규모의 측면에서 철강은 문제의 소지가 별로 없다. 미국은 이미 수입 철강에 150건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철강 물량 중 중국산의 우회 수출은 2%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은 업종도 중기적으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MSCI 한국지수 기준 미국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IT와 경기 소비재다. 2015년 기준 IT와 경기소비재지수 구성 종목들은 미국행 매출 의존도가 각각 25%, 23%에 달한다.
한·미 FTA 재협상…‘자동차’ 산업 위기 가중 전망
다만 기술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면 무역 규제에 대한 탄력성이 높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이슈로 무역 장벽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IT 업종 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지닌 종목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