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Ⅲ 리서치센터의 변신]
국내 주식 분석에서 FICC·해외시장까지…새 투자 수요에 대응
증권사 리서치센터, ‘전천후’가 따로 없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얼마 전까지도 증권사라고 하면 ‘국내 주식 투자’를 먼저 떠올렸던 게 사실이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나오는 보고서의 압도적인 비중이 ‘국내 주식’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지금은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보고서 역시 ‘주식 이외의 것’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투자자 “국내 주식 분석만으론 부족”

최근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역할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전천후’다. 기존 법인영업 위주의 투자 가이드 역할은 기본이다. 거시경제 전망, 자산 관리(WM)는 물론 구글·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분석까지 쏟아져 나온다.

특히 상장지수펀드(ETF)·원자재·채권·해외주식까지 다양한 금융 상품에 대한 분석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리서치센터의 이와 같은 변화는 최근 금융시장에서 고객들의 투자 자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반영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저성장·저금리·고령화 시대를 맞아 기존의 ‘국내 주식’만으로는 투자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개인 투자자들은 물론 기관투자가들을 중심으로 대체 투자와 해외투자 비율을 높여 가는 추세다.


KB증권에서 원자재 섹터를 맡고 있는 구경회 애널리스트는 “결국 증권사는 고객의 흐름을 좇아가는 게 맞다”며 “예전에 비해 다양한 상품을 다룰 수밖에 없고 그에 맞춰 리서치센터의 골격 또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국내 증권사들의 수익 구조 변화다. 박신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올해 6월 발표한 ‘국내 대형 증권사의 수익 구조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수익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수탁 수수료는 최근 5년 새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011년 9월 71.9%(최고점)에서 2016년 2월 36%(최저점)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과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의 대중화와 함께 지점영업이 줄어든 데다 최근 몇 년간 국내 주식시장의 침체로 거래 대금이 감소한 영향이 크다. 이와 함께 증권사 간 경쟁 심화로 위탁매매 수수료율 감소 또한 영향을 미쳤다.

‘줄어든 수수료 수익’을 대체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투자은행(IB) 부문과 자기매매 부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형 증권사의 수익 비율에서 IB 부문은 2013년 3월 6.9%를 차지했지만 2017년 3월 12.3%로 나타났다. 4년 만에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배 규모로 높아진 것이다. 자기매매는 2013년 3월 33.2%에서 2017년 3월 42.2%로 9%포인트 증가했다.

IB 부문은 기업공개(IPO), 증자, 회사채 발행, 인수·합병(M&A) 등을 주간하고 자문하는 업무에서부터 대체 투자까지 모두 포괄한다. 자기매매는 증권사가 보유한 고유의 자금으로 유가증권을 사고팔아 수익을 내는 업무를 말한다.

그런데 이 두 분야 모두 높은 성과를 내려면 국내 주식 투자 일변도에서 벗어나 채권·외환·원자재(FICC), 해외 주식시장 등으로 투자를 다변화하는 것이 필수다.

이에 따라 증권사 내에서 리서치센터의 지원 영역 또한 그만큼 넓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리서치센터는 홀세일(법인영업)과 리테일(지점영업)을 지원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증권사의 자기자본을 운영하는 세일즈앤드트레이딩(S&T) 부문과 기업금융을 담당하는 IB 부문 등까지 리서치센터의 지원을 받고 있다.

특히 증권뿐만 아니라 은행·보험 등 향후 금융시장에서 가장 치열한 서비스 경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WM 부문과의 협력도 매우 강화되는 분위기다.

리서치센터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부서가 늘어날수록 리서치센터 내에서 보고서로 커버해야 할 영역 또한 예전과 비교도 안될 만큼 넓어졌다. 변화의 키워드는 ‘균형’이다.

◆변화 폭 넓히는 대형사들
지금까지 리서치센터의 비율이 ‘국내 기업 분석’쪽에 맞춰져 있었던 만큼 지나치게 세분화된 섹터에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들의 비율 역시 국내 기업 분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에 비해 최근에는 ‘초대형 IB’를 향한 증권사의 전체적인 운영 전략과 함께 고객들의 투자 수요가 다변화되는 만큼 그동안 비율이 ‘낮았던’ 분야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1~2년 사이 리서치센터가 주력하는 분야를 꼽자면 ‘FICC’와 ‘글로벌’ 등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채권(Fixed Income)·외환(Currency)·원자재(Commodity)의 약자를 딴 FICC와 미국·중국·신흥시장 등 해외 주식시장·기업에 대한 글로벌 분석이다.

자기자본 규모 4조원 이상의 대형 증권사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미래에셋대우와 KB증권이다. 자기자본 규모 7조원대로 국내 1위인 미래에셋대우는 특히 ‘글로벌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 ‘전천후’가 따로 없네
올해 1월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증권의 합병 전 미래에셋대우는 글로벌 파트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미래에셋증권은 2016년 상반기부터 기업 분석 애널리스트들이 담당 산업을 글로벌 관점에서 분석해 왔다.

합병 이후 초대 센터장을 맡은 구용욱 미래에셋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초 리서치센터 내에 ‘글로벌 기업분석팀’을 신설했다. 구 센터장은 “해외 기업을 분석하는 팀을 별도로 만든 것은 우리가 업계 최초”라며 “아마존·나이키·테슬라 등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글로벌 기업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투자자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 ‘전천후’가 따로 없네
KB증권은 올해 초 JP모간 출신의 서영호 리서치센터장 영입을 계기로 공격적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서영호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취임 직후부터 줄곧 ‘주식’과 ‘FICC’ 간의 균형을 강조해 왔다.

서 센터장은 “국내 증권사는 주로 산업이나 기업 위주로 분석하는 리서치 문화가 자리 잡아 왔다”며 “이미 미국 등 해외시장에서는 리서치 조직 또한 FICC에 포커스를 두고 운용되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향후 KB증권의 리서치센터 조직 또한 FICC 부문의 비율을 점차 높여 갈 생각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외부 인력을 수혈하는 방안보다 우선적으로 내부 인력을 활용하는 데 중점을 둘 방침이다.

이와 함께 올 7월에는 씨티그룹에서 경제 분석을 총괄한 장재철 이코노미스트를 새롭게 영입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현재 KB증권 리서치센터 내에서 매크로 분석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만 4명이다. 거시경제 흐름을 읽어내는 이코노미스트의 역할은 국내 주식 투자자들을 위한 기업 분석뿐만 아니라 FICC와 글로벌 리서치의 기본이 된다.
증권사 리서치센터, ‘전천후’가 따로 없네
자기자본 4조6000억원으로 국내 2위 규모인 NH투자증권은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리서치본부 내 FICC리서치센터를 두고 있다. 2013년 우리투자증권 시절부터 FICC리서치센터를 운영해 왔으니 시장을 앞서간 셈이다. 그

덕분에 현재 NH투자증권은 국내 리서치센터 중에서 주식은 물론 채권·외환·파생상품·부동산 등 가장 다양한 영역을 분석 중이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에는 증권사 리서치가 국내 주식 영업을 지원하는 조직이었다면 지금은 그 역할이 바뀌고 있다”며 “최근 증권사의 수익이 다변화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자산군에 대한 펀더멘털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WM리서치 강화 ‘큰 흐름’
증권사 리서치센터, ‘전천후’가 따로 없네
업계 최다 리서치 인력을 자랑하는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또한 기본적으로 에쿼티 부문 외에도 FICC와 글로벌 분석 등이 잘 갖춰진 곳으로 꼽힌다.

현재 투자전략팀에서 매크로·채권·외환·원자재 등의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2014년 FICC 등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는 3명이었지만 현재 9명으로 그 숫자가 크게 늘었다.

이와 함께 글로벌 분석을 위해 해외 출신의 애널리스트를 기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 중에서는 유일하게 베트남 출신의 애널리스트가 활약 중이다.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FICC와 글로벌 분석은 궁극적으로 ‘WM 리서치의 강화’라는 큰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올해 1월부터 발간하고 있는 ‘월간 자산배분 전략’이다.

단순히 한 가지 상품이나 주식 종목을 일회성으로 추천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6개월 정도를 목표로 하는 ‘자산배분 모델’을 통해 투자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증권사 리서치센터, ‘전천후’가 따로 없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에 최근 들어 FICC나 글로벌 분석의 인력 충원과 같은 가시적인 변화는 없다. 리서치센터 인력이 총 80여 명으로 이미 관련 분야를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들의 진용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것은 기존의 리서치센터와 별도로 ‘자산배분전략담당’ 산하에 WM리서치센터를 따로 두고 있는 것이다. 삼성증권 회사 차원에서 리서치센터의 역할이 세분화·전문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7월 글로벌 자산배분을 담당하는 ‘자산배분전략담당’을 신설하며 싱가포르 이스트스프링 자산운용 출신의 이병열 상무를 영입했다.

이 상무는 현재 삼성증권의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을 책임지며 자산배분 전략과 상품 전략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의 리서치센터가 기관투자가 및 외국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리포트 및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 WM리서치센터는 WM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자산 배분 전략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금융그룹의 ‘리서치센터’로
증권사 리서치센터, ‘전천후’가 따로 없네
한경비즈니스의 ‘2017년 상반기 베스트 애널리스트 평가’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가장 많이 배출해 낸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 또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올해 초부터 팀제 개편을 진행 중이다. 기존의 팀을 크게 두 개로 통폐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4차산업팀’과 ‘코어밸류팀’이다. 인터넷·반도체·금융·자동차·헬스케어·비행기·조선 등의 섹터가 4차산업팀에 포함된다.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의 분석을 아우르는 ‘통합 리포트’를 발간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좋은 투자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하나의 섹터만으로는 4차산업 관련 기업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어렵다”며 “애널리스트들이 함께 분석하고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올해 연말까지 팀 개편을 마무리하고 다양한 섹터를 아우르는 ‘통합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 특히 조 센터장은 “최근에는 증권 외에 은행 등에서도 리서치센터에 협업이나 지원 요청이 쇄도할 만큼 금융그룹 내에서도 리서치센터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 ‘전천후’가 따로 없네
리서치가 강한 증권사로 정평이 나 있는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리서치센터의 지원 범위가 홀세일·리테일·WM 등 회사의 전 영업 부문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상품 제조와 판매 채널 중심으로 사내 각 부문의 리서치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에는 전략 부문의 역량과 조직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존의 개별 주식 분석 비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FICC와 글로벌 분석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2~3년 사이에 가장 많은 인력이 충원된 부서는 자산 배분과 글로벌 분석 등을 포함하고 있는 ‘투자전략부’다. 특히 글로벌 분석을 위한 인력이 대거 충원됐는데, 2016년 초 이후로 현재까지 모두 8명의 애널리스트가 글로벌 시장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기업 분석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들이 기존의 국내 기업 외에 해외 기업까지 커버하도록 하고 있다.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해외 채권 등 FICC 담당 애널리스트 숫자만 하더라도 3년 전에 비해 2배가량 늘었다”며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의 이와같은 변신은 앞으로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