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당분간 대북 압박 카드 쓸 듯… AP “트럼프에게 남은 카드는 나쁘거나 더 나쁜 카드뿐”
북핵 인정이냐 전쟁이냐, 트럼프의 결단은
[워싱턴(미국)=박수진 특파원] ‘협상의 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발등의 불’이 된 북핵 문제다. 북한은 9월 3일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핵탄두 소형화 기술까지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미국 본토로 핵미사일을 날리기까지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만 남았다. 10월 10일 노동당창건기념일을 전후해 이를 확보하기 위한 추가 실험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말을 거둬들일 수도 그렇게 만들기도 어렵다.

군사적 옵션을 빼고는 해보지 않은 게 없지만 ‘백약이 무효’다. 사실상 이제 남은 것은 북핵을 인정하고 협상에 나서든지 아니면 마지막 카드인 군사적 옵션을 선택하든지 둘 중 하나다.

◆트럼프, 특수전 카드 쓸 가능성도

AP통신은 9월 4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나쁘거나 더 나쁜 것들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북핵을 인정한 상태에서 협상에 나서는 것은 그동안 모든 한반도 비핵화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고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감축을 감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제타격 등의 군사적 옵션은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동반한다. 더군다나 60여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판단되는 ‘불량 국가’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행동은 이미 물 건너간 카드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그래도 일단 해보는 데까지 해본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 별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명분은 있다.

우선 경제·외교·안보 분야에서 대북 제재를 미리 해놓아야 나중에 북한과의 협상 국면에서 써먹을 수 있는 카드가 된다. 또 제재의 효과 여부를 떠나 제재를 제대로 밀어붙여야 협상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챙길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감으로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외교·경제·안보 분야에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최고 수위의 압박 카드를 모두 꺼내 들었다.

먼저 특수전의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3일 오전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두고 보자”라고 여지를 남겼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회의(NSC) 회의 후 “트럼프 대통령이 회의에서 각각의 군사 옵션에 대해 보고받기를 원했다”며 “북한이 전멸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핵·미사일 시설에 대한 선제타격 등의 기존 옵션뿐만 아니라 특수부대를 활용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 참수 작전과 핵 능력 무력화 작전 등에 대해서도 보고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북한의 최대 후원국인 중국을 정면 겨냥한 ‘제3자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거래하는 어떤 나라와도 모든 무역을 중단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썼다. 북한에 원유를 공급하고 북한산 섬유와 석탄을 수입하는 중국과의 무역 및 금융거래를 일절 끊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서는 외교적 압박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9월 4일 긴급 유엔안보리 회의에서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거론하며 “김정은이 전쟁을 구걸하고 있다. 우리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 원유 공급 중단 등의 내용이 담긴 대북 제재 결의안을 9월 11일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외교·군사·경제 등 추가 압박 여지 많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김정은 제거를 위한 옵션’이라는 제목의 9월 5일 사설에서 “군사 공격은 한국과 일본에서 수만 명을 죽게 할 큰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며 “외교·정보·군사·경제·금융·첩보·법집행(Diplomatic·Information·Military·Economic·Finance·Intelligence·Law enforcement)을 망라한 ‘DIMEFIL’ 종합 정책을 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각 분야에서 지금보다 더 강한 압박을 가할 여지가 여전히 있다는 주장이다.

신문은 특히 정보 수단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탈북자를 통해 북한 내부의 정보를 수집하려는 노력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북한 엘리트 층의 탈북을 부추기고 내부 쿠데타를 선동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이 최근 심각한 가뭄으로 식량난을 겪을 것으로 보고 식량 원조 차단의 필요성까지 시사했다.

미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지금이라도 유엔이나 미국 내 법을 활용한 대북 제재, 김정은 정권에 대한 정보 공작 등 포괄적이고 통합된 대북 압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유엔 결의나 미국법 등을 통한 제재나 표적 금융 조치, 김정은 정권에 대한 정보 공작 강화, 인권 강조, 미국과 동맹들의 탄도미사일 방어망 강화 등을 실행하라고 권했다.

또한 CNN 앵커이자 국제 전문 기자인 크리스티안 아만푸어는 대북 협상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미국은 대북 정책의 진짜 옵션이 무엇인지 직시해야 한다”고 협상론을 펼쳤다.

문제는 협상을 통해 북미가 평화 협상과 핵동결 등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겠지만 한반도 비핵화는 힘들다는 점이다.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국제관계국장도 “미국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뒤로 돌리기 위한 압박과 제재를 계속 가하겠지만 결국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으로 번져 핵확산금지조약(NPT) 체계의 붕괴, 그에 따른 급속한 핵 확산으로 이어지는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공포의 균형’ 차원에서 전술핵을 재배치하자는 논의가 보수 정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은 잃을 게 많은 북미 간 직접 협상보다 미국과 중국 강대국 간 ‘빅딜’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정권 교체와 핵·미사일 프로그램 포기를 전제로 남한에서의 주한미군 철수, 북한의 친중 정권 수립 등을 중국 정부에 약속해 주자는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