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서울 재건축 시장…리모델링 추진 단지 늘고 일부 재건축 단지는 ‘내홍’ (사진)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서울 잠원동 한신로얄아파트./ 무한종합건축사무소 제공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8·2 부동산 대책’ 등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책에 영향을 받은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이 하루가 멀다고 뚝뚝 떨어지고 있다. 재건축 추진이 미뤄진 단지를 중심으로 가격을 많이 낮춘 급매물도 속출하는 모습이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로부터 8월 16일 재건축 정비안 ‘미심의’ 결정을 받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한 달 사이 1억원(전용면적 76㎡)이 떨어진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재건축 초기 단계에 접어든 압구정 한양아파트에서도 가격을 많이 낮춘 급매물이 나왔다.
◆ 골치 아픈 규제에 ‘리모델링’ 추진
그동안 웬만한 악재에도 꿈쩍하지 않던 강남의 재건축 예정 단지들의 시세가 한풀 꺾이자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으로 선회하려는 입주민들이 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재건축 추진 단지와 달리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등 규제를 받지 않는 데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에서도 자유롭다 보니 일어난 현상이다.
대형 건설 업체의 한 관계자는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업을 모두 선택할 수 있는 단지라면 리모델링이 더 좋을 것”이라며 “이미 강남권의 일부 재건축 단지는 리모델링으로 사업을 변경해 추진하는 곳들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서는 △강남구 개포동 대청 △개포동 대치2단지 △서초구 잠원동 한신로얄 △성동구 옥수동 옥수극동 △용산구 이촌동 현대맨숀 △강서구 등촌동 부영 등이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솔마을5단지도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신로얄은 현대산업개발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가구 간 내력벽을 철거하지 않는 리모델링 사업을 택했다. 옥수극동은 최근 진행한 입찰에서 쌍용건설만 참여하면서 유효 경쟁입찰 성립에 실패, 유찰됐다. 하지만 조합 측은 시공사 선정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뿐만 아니라 올해로 조성 23년을 맞이한 수도권 1기 신도시 가운데 리모델링 안전성 검토 심의를 처음으로 통과한 단지가 나오면서 1기 신도시 리모델링 사업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분당에서 리모델링 추진 속도가 가장 빠른 정자동 한솔5단지(1156가구)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리모델링 안전성 검토 심의를 통과했다. 본 심의는 기본 리모델링 설계안을 토대로 수직 증축의 안전성을 따져보는 절차로, 1기 신도시 아파트 중에서는 한솔5단지가 처음이다.
한솔5단지 리모델링 조합은 9월 중 성남시의 건축 심의를 받고 이를 토대로 조합원 권리 변동 계획 수립 절차를 밟는다. 연내 건축 심의를 통과하면 내년 상반기에 시에 사업 계획 승인을 신청하고 하반기 주민 이주와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 단지 외에 정자동 느티마을3단지·4단지, 구미동 무지개마을4단지, 야탑동 매화마을1단지 등 4곳도 이미 안전 진단을 통과했다. 이들 단지는 안전 진단 결과 모두 B등급 이상을 받아 수직 증축이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느티3·4단지와 무지개4단지 등 3곳은 지난 3월 시에 건축 심의를 신청하고 안전성 검토를 의뢰해 현재 전문 기관의 안전성 검토 심의를 받고 있다. 3곳에 대한 건축 심의는 10월 예정돼 있다.
이들 단지가 안전성 검토를 통과하면 한솔5단지와 마찬가지로 이후 건축 심의를 받고 사업 계획 승인 신청, 주민 이주 및 착공 등의 절차를 밟는다. 매화1단지는 안전성 검토 의뢰를 하기 전 단계인 건축설계 중이다.
◆ 수익은 재건축, “시간 싸움이다”
물론 여전히 리모델링보다 수익성이 높은 재건축 사업을 고수 중인 단지들도 많다. 이들 단지들은 내년에 부활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연내 관리처분 신청을 목표로 사력을 다하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울시 재개발·재건축 클린업 시스템과 정비업계에 따르면 반포동과 잠원동에서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지 않았으면서도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했거나 이미 받은 재건축 추진 단지는 약 10곳에 달한다.
이 중 반포현대와 반포주공1단지 3주구 등 7개 단지가 올해 6~8월 사이에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했다.
관리처분인가를 눈앞에 둔 반포우성아파트를 제외하면 신반포 13~15차의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편이다. 각 조합은 9월 9일 총회를 열고 13차·14차는 롯데건설을, 15차는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이틀 뒤인 9월 11일에는 신반포14차가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세 단지 모두 이 단계를 넘어서게 됐다. 이후 조합원 분양 절차와 관리처분계획 수립 및 인가 신청만 남아 있다. 신반포 3·23차·반포 경남 통합 재건축(시공사 삼성물산) 역시 속도를 더하고 있다.
최고 35층에 2996가구를 짓는 사업으로, 8월 교육 환경 영향 평가를 통과한 데 이어 통상 6개월 걸리는 시공사 선정 절차도 이미 끝난 상태다. 조만간 사업시행인가를 받으면 이후 절차도 그리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어 보인다.
신반포 8~11·17차 단지에 녹원한신아파트·베니하우스빌라까지 더해진 한신4지구와 반포주공1단지(반포 1·2·4주구)도 올해 7월 시공사 선정 공고를 내고 관련 절차를 빠르게 밟고 있다.
이들 단지는 재건축을 통해 각각 3685가구와 5388가구로 지어진다. 신반포22차 등도 사업 단계를 앞당기기 위해 조합과 건설사가 함께 이익 및 위험을 분담하는 공동 시행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단지들은 재건축을 급하게 추진하면서 내부 갈등이 빚어지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6월 시공사를 선정하고 7월 관리처분계획인가 신청을 마친 청담삼익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가 조합 집행부 및 시공사 교체를 추진 중이다.
한신4지구는 일부 조합원들이 조합 사업 계획에 반발해 올해 7월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와 신반포 3·23차·반포 경남도 한강변 동·호수 배정을 둘러싸고 조합원들 간 잡음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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