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더 강하게’ 여론이 커…이낙연 총리 “농축산·음식업 등 서민경제 영향 고려해야”
도입 1년 맞은 김영란법, ‘부정청탁’ 줄였다
(사진)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에서 8월 열린 한가위 명절 선물전에서 한 시민이 5만원 이하 선물로만 구성된 ‘영란선물 특별관’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9월 28일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1년 되는 날이다. 김영란법은 음식물 접대 상한선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이 핵심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이후 올 8월까지 111명(동일인 중복 합산)이 법을 어겨 수사 대상이 됐고 이 중 7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7명 중 구속 기소된 인원은 3명(1명 중복 합산)이다.

전체 피의자 중 71명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25명은 혐의 없음(3명), 각하(22명) 등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8명은 보호 사건으로 법원에 이송하는 등 기타 사례로 분류됐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실제로 부정청탁이 감소하는 등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후유증은 서민경제에서 나타나고 있다.

김영란법으로 음식점들은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일식집과 한정식집 등의 피해가 특히 컸다. 음식점들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 증가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5만원 이하 명절 선물이 대세가 되면서 수입산 신선식품 선물 세트가 국내산을 대신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김영란법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이른바 ‘3·5·10’ 제도를 일정 수준 변경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일반 국민의 절반 이상이 ‘김영란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외식업체 10곳 중 7곳 매출 감소
도입 1년 맞은 김영란법, ‘부정청탁’ 줄였다
(사진) 한국외식업중앙회 등에 소속된 회원들이 8월 말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서민경제 발목잡는 김영란법 중단 및 근로시간 단축저지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란법 시행 후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업종은 외식 업종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산하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9월 11부터 6일간 전화와 모바일을 통해 420개 외식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김영란법 시행 1년 국내 외식업 영향 조사’를 최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외식 업체의 66.2%가 ‘김영란법 시행으로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이들 업체의 평균 매출 감소율은 22.2%로, 외식 시장 전체로 환산하면 김영란법 시행 전에 비해 매출이 14.7% 감소한 것이라고 외식산업연구원은 설명했다.

업종별 매출 감소율은 일식이 35%로 피해가 가장 컸다. 한식은 21%, 중식은 20.9%로 조사됐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식당 사장들은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메뉴 가격 조정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그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총 656건의 복수 응답 건수 가운데 ‘종업원을 감원 했다’고 응답한 건수는 22.9%로 가장 많았고 ‘메뉴 가격 조정’이 20.6%로 그 뒤를 이었다.

외식 업체들은 3만원인 김영란법의 식사 상한액을 평균 6만8500원까지 인상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식당 주인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우려가 큰 상황이다. ‘2018년 시급 7530원이 적용되면 수익성이 악화할 것’이라는 응답이 77.9%에 달했다. 이에 따라 ‘고용 인력 감축을 고려한다’는 응답 비율이 75.8%였다.

서울 중구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저녁 손님이 크게 줄면서 매출이 20% 이상 감소했다”며 “기존 정식 메뉴 중 일부의 가격을 3만원 미만으로 조정했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수청 한국외식산업연구원장은 “외식업계가 겪고 있는 매출 감소는 단기에 해결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많은 외식 사업자가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정부는 김영란법 음식 접대 상한액 인상 등을 포함한 실질적 지원책을 이른 시일 안에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물 상한선 5만원…농어민 한숨
도입 1년 맞은 김영란법, ‘부정청탁’ 줄였다
(사진) 서울 서초구 양재 화훼공판장 도매시장에서 9월 20일 오후 한 업체 관계자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란법으로 농어민 등의 주름살도 깊어지고 있다. 선물 허용 상한선인 5만원에 선물 가격을 맞추려다 보니 국내산 농수산물이 백화점 등에서 수입산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수혜주는 수입 식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A 백화점은 최근 추석을 앞두고 스페인산 돼지고기 선물세트를 5만원에 내놓았다. 해당 백화점이 선보인 5만원짜리 아일랜드산 크랩 선물 세트도 이른바 ‘김영란법 맞춤 세트’ 중 하나다.

A 백화점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후 첫 명절이던 올해 설에 5만원 이하 선물 세트의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부득이하게 수입 농축수산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의 명절 선물 세트는 5만원 이하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5만원 이하 명절 선물 세트는 올해 설에만 16.6%의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올해 추석 선물 세트 중 5만원 이하 상품 비율을 각각 80%, 90%로 높였다.

화훼 농가 등의 마음도 쑥대밭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화훼공판장에 따르면 4월 24일부터 5월 5일까지 카네이션 1속(20송이)의 평균가격은 4451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 감소했다. 같은 기간 카네이션 거래량 또한 17만9835속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줄었다.

과거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은 화훼상의 대목으로 통했다. 반면 김영란법 시행 이후 카네이션 특수는 완전히 사라졌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월 ‘학생 대표가 스승의 날에 공개적으로 선물하는 카네이션이나 졸업생이 찾아가 전달하는 꽃 선물은 사회 상규상 허용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다만 학생에 대한 평가·지도를 담당하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선물은 가액 기준 이하라도 주고받아선 안 된다. 꽃 한 송이라도 학생이나 학부모가 개인적으로 선물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골프장들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골프장에서 거둔 개별소비세가 연간 기준 처음으로 감소했다.

7월 국세청이 공개한 ‘2017년 국세 통계 1차 조기 공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골프장에서 걷힌 개별소비세는 2028억원으로 전년 대비 3.1% 줄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골프장 개별소비세가 감소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 개정 필요성 제기

정부는 김영란법의 명과 암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올해 연말까지 보완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경제지표의 변화 등에 대한 국책 연구 기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르면 11월께 관련 대국민 보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9월 19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부정청탁과 과도한 접대가 줄어들고 청렴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다행이지만 농축수산업계와 음식업계 등 서민경제에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라며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의 ‘3·5·10’ 제도 변경 방침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사회학회가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해 최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5.4%가 김영란법 시행을 찬성했다. 또한 응답자의 89.4%는 ‘법 시행 효과가 있다’고 답했고 이 중 43.8%는 ‘효과가 크다’고 응답했다.

해당 조사는 지난해 11월(1차 조사)과 올해 8월(2차 조사)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됐다. 법 시행 직후와 10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조사 결과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응답자는 시행 초기 34.3%가 ‘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2차 조사에서는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45%로 1차 때보다 오히려 높게 나왔다.

김영란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 응답자들 또한 ‘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1차(36.6%) 때보다 크게 증가한 절반(50.8%) 이상을 차지했다.

한편 김영란법 적용 분류 대상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민간 영역 종사자인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는 김영란법 제재 대상인 반면 의사·약사·변호사 등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9월 20일 서울지방변호사회 등이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언론사 대표와 임직원을 법 적용 대상자로 유지하려면 의사·약사·변호사·세무사·변리사·법무사 등 전문 직업인은 물론 각종 특별법으로 부정부패를 처벌할 정도로 공공성이 강조되는 민간 기업 근무자, 금융·보험·건설 업종 종사자 등을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게 형평의 관념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민간 영역을 모두 적용 대상에 포함하거나 민간 직군 중 법 적용을 받는 언론인을 대상자에서 삭제하는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면서도 “사립학교 관계자는 국공립학교와 같은 공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행대로 존치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