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패션과 IT의 만남
-매장·패션쇼에 도입한 IT…온라인 플랫폼 살려 밀레니얼 세대 공략
패션기업이 아니다? 디지털 혁신 주도하는 버버리
(사진)버버리는 애플의 증강현실 개발 도구(AR Kit)를 활용해 버버리 앱에서 체험형 증강현실 기술을 선보였다. 앱을 통해 영국 출신 아티스트 대니 산그라 영화감독이 제작한 버버리 일러스트레이션을 AR로 체험할 수 있다. / 버버리 공식 트위터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영국 기업 버버리가 럭셔리업계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체크무늬와 트렌치코트의 대명사였던 버버리는 이제 단순한 패션 브랜드가 아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정보기술(IT)을 제품과 마케팅에 도입하고 소셜 미디어를 가장 잘 활용하는 디지털 기업으로 거듭났다.

브랜드 정체성도 ‘디지털 미디어 컴퍼니’로 정했다. 버버리가 디지털 기업으로 변화한 것은 2006년 7월 안젤라 아렌츠 버버리 전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한 이후다. 그는 버버리를 디지털 미디어 컴퍼니로 키우기 위해 제품과 마케팅 측면에서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을 확립해 나갔다.

당시 버버리는 루이뷔통 등 경쟁 브랜드에 비해 매출 성장세가 뒤처져 있었다. 루이뷔통 등이 연간 12~13%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버버리의 성장률은 1~2%에 불과했다.

버버리 경영진은 경쟁 기업과 차별화된 정체성만이 돌파구라고 생각했고 새로운 포지셔닝을 고려한 전략을 세웠다. 아렌츠 전 CEO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지역과 배경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접근하고 소유할 수 있는 ‘럭셔리 민주주의’를 지향했다.

경쟁사들이 럭셔리에 ‘희소성’을 부여할 때 버버리는 디지털에 익숙하고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잡았다.

◆희소성 대신 럭셔리 민주주의
패션기업이 아니다? 디지털 혁신 주도하는 버버리
결과적으로 버버리의 전략은 통했다. 당시에는 럭셔리 브랜드의 폐쇄적인 특징 때문에 버버리의 도전이 생소했지만 현재는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가 버버리와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최근 럭셔리 브랜드 제품 구매자들의 약 3분의 2가 온라인 광고나 서비스의 영향을 받는다. 이제는 럭셔리도 디지털을 통한 소통이 필수가 됐다. 이제 소비자들에게 디지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디지털이 곧 소비자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전략이다.

아렌츠 전 CEO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매장을 디지털화했다. 오프라인 매장에 대형 디스플레이, 태블릿 PC, 초소형 전자태그 등을 적극 활용해 구매를 유도했다.

버버리는 현재 20여 개의 글로벌 플랫폼에 490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며 소셜 미디어 채널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또 페이스북·인스타그램·위챗·카카오 등 IT업계 공룡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버버리는 올 초 모바일 판매율 증가에 따라 영어권 시장에서 아이폰 전용 버버리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했다. 버버리 앱의 콘텐츠는 사용자의 성별, 위치 및 과거 구매 이력을 토대로 설정돼 있다. 사용자는 버버리 앱에서 제품을 구입하고 애플페이 등 다양한 지불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

◆애플, 페이스북과 손잡은 패션
패션기업이 아니다? 디지털 혁신 주도하는 버버리
(사진) 버버리는 라인, 공식 페이스북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패션쇼 라이브스트리밍을 진행하고 있으며(왼), 글로벌 브랜드로서 처음으로 애플뮤직에 브랜드 전용 채널을 개설했다.

그뿐만 아니라 애플의 증강현실 개발 도구(AR Kit)를 활용해 버버리 앱에서 체험형 증강현실 기술을 선보였다. 앱을 통해 영국 출신 아티스트 대니 산그라 영화감독이 제작한 버버리 일러스트레이션을 AR로 체험할 수 있다.

앱에서 실현되는 AR은 단순한 판매 전략이 아니라 사용자가 AR을 통해 버버리의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을 창작하고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게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버버리의 디지털 혁신은 패션쇼에서도 이어진다. 버버리는 기술뿐만 아니라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 빠르게 변하는 온라인 시대에 대응했다.

그동안 명품 브랜드는 패션쇼가 열리는 시기와 제품 판매 시기에 간극이 있었다. 2월에 가을·겨울(FW) 컬렉션이, 9월에 봄·여름(SS) 컬렉션이 공개돼 6개월 뒤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해 왔다.

현재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로 있는 크리스토퍼 베일리 전 버버리 CEO는 명품 브랜드의 오랜 관습을 깼다. 그는 제품이 매장에 나오기 몇 개월 전에 컬렉션을 보여주는 방식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년부터 패션쇼에서 선보인 제품을 쇼가 끝난 직후 살 수 있는 ‘시 나우 바이 나우(see now buy now)’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버버리 홈페이지와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쇼를 전 세계로 생중계했다.
패션기업이 아니다? 디지털 혁신 주도하는 버버리
패션기업이 아니다? 디지털 혁신 주도하는 버버리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