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커스 : 기초 백신]
-국산 성인용 Td백신·대상포진 백신 출시 임박…글로벌 제약사 독점 구도에 도전
녹십자·SK케미칼, ‘백신 주권’ 이끈다
(사진) 녹십자 연구원이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 / 녹십자 제공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기초 백신은 제품 개발 과정이 까다로운데다 설령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성이 낮아 대부분의 제약사가 뛰어들기를 꺼리는 분야다.

하지만 백신 주권 실현은 물론 질병에 대한 개념을 치료에서 예방으로 선진화하기 위해 묵묵히 노력 중인 제약 기업도 있다. 녹십자와 SK케미칼이 그 주인공이다.

녹십자는 지난해 전량 수입에 의존해 오던 성인용 파상풍·디프테리아(Td) 백신 ‘녹십자티디백신 프리필드시린주’의 품목 허가를 획득한 이후 올해 첫 출시를 앞두고 있다.

SK케미칼은 국내 최초이자 세계 둘째 대상포진 백신인 ‘스카이조스터’의 최종 시판 허가를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획득해 주목받고 있다.

◆녹십자, 국산 백신 3개 중 2개 개발
녹십자·SK케미칼, ‘백신 주권’ 이끈다
녹십자는 지난 반세기 동안 ‘안정적 백신 공급은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신념 아래 B형간염 백신, 수두 백신, 계절독감 백신 등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등 백신 국산화를 이끌어 왔다. 국가 필수 예방접종 백신 중 국산화한 백신 3개 중 2개는 녹십자 제품이다.

녹십자는 1983년 12년의 연구·개발 끝에 세계 셋째 B형간염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B형간염 백신이 개발된 뒤 13%에 달하던 국내 B형간염 보균율은 선진국 수준인 2~3% 수준으로 낮아졌다. 녹십자는 B형간염 백신을 기존 수입 백신의 3분의 1 가격에 공급하며 백신 대중화를 앞당겼다.

녹십자는 1993년 세계 둘째 수두 백신 개발에 성공하며 ‘백신 명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녹십자의 수두 백신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높아 단 한 번 접종으로 수두 바이러스를 예방한다. 중남미와 아시아 등에 20여 년 동안 수출되고 있다.

녹십자는 올해 1월 범미보건기구(PAHO) 수두 백신 입찰에서 약 6000만 달러 규모의 수두 백신을 수주하기도 했다. 이는 PAHO 수두 백신 전체 입찰분의 66%에 달하는 규모다. 녹십자는 수두 백신 분야에 관한한 1월 이후 PAHO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녹십자는 2009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신종플루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사태 때 세계 여덟째로 신종플루 백신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녹십자는 당시 백신 생산 물량을 수출하게 되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 우선 공급 원칙을 고수하며 국가 보건 안보를 지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과 녹십자가 신종플루 사태를 가장 모범적으로 방어한 사례로 선정하기도 했다.

녹십자는 이후에도 조류인플루엔자 백신을 개발하며 백신 국산화에 앞장섰다. 녹십자는 2015년 국내 제약사 최초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H5N1) 백신 ‘지씨플루에이치파이브엔원멀티주’의 품목 허가를 식약처로부터 취득했다.

대유행 전단계(프리 팬데믹 백신)로 개발된 백신으로, 향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대유행 시 신속한 백신 공급을 가능하게 했다.

◆Td백신 국산화…45만 명분 수입 대체
녹십자·SK케미칼, ‘백신 주권’ 이끈다
녹십자는 지난해 국내 제약사 중 최초로 전량 수입에 의존해 오던 성인용 파상풍·디프테리아(Td) 백신인 ‘녹십자티디백신프리필드시린주’의 품목 허가를 획득하며 또 한 번 이목을 끌었다. 해당 제품은 올해 첫 출시를 앞두고 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녹십자는 현재 성인용 Td백신의 시판 전 마지막으로 품질을 확인하는 국가 출하 승인 단계를 밟고 있다. 백신이나 혈액 제제 등 보건 위생상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제품은 식약처가 유통 전 품질 적합 여부를 판별하는 국가 출하 승인을 통과해야만 시장에 유통될 수 있다.

녹십자 관계자는 “국내 Td백신 시장 규모는 약 4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며 “Td백신의 국산화로 매년 45만 명분의 수입 대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Td백신은 구성원인 T·D 항원이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DPT백신, DTaP, Tdap, DTap) 혼합 백신의 구성 성분이기 때문에 해당 백신들의 개발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백신이다.

녹십자는 현재 Td백신에 백일해 항원이 추가된 혼합백신인 Tdap백신의 임상 1·2a상을 진행 중이다. 이어 DTaP 혼합 백신의 개발도 이어 나갈 예정이다. DTaP 혼합 백신은 영·유아에게 필수적인 백신으로, 국가 필수 예방접종에 포함돼 있지만 현재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혼합 백신은 백신 국산화의 의미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연간 필요량 2억2000만 도즈(1도즈는 1회 접종 분량), 매출 3조원의 시장을 형성 중이다. 녹십자는 Tdap백신 개발 완료 이후 해외시장 공략에도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녹십자는 올해 8월 식약처로부터 결핵 예방 백신(BCG백신) ‘GC3107’에 대한 임상 1상 계획을 승인 받기도 했다. 녹십자는 2008년 결핵 백신 국산화 위탁 사업자로 선정되며 결핵 백신 개발에 나선 바 있다. 지난해 전임상시험을 거쳤고 피하주사 시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BCG백신은 WHO가 결핵 예방을 위해 생후 4주 이내 모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접종을 권하는 필수 예방백신이다. 한국은 2006년 결핵연구원이 BCG백신 생산을 중단한 이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BCG백신의 국산화가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매년 40만 명분의 수입 대체 효과가 기대된다.

녹십자는 또한 최근 고용량 4가 독감 백신 ‘GC3114’의 임상 1상 계획을 승인 받았다. 국내 제약사가 항원 함량이 일반 독감 백신보다 높은 고용량 독감 백신 개발에 나선 첫 사례다.
일반 독감 백신은 건강한 성인 70~90%가 면역 반응을 보이는 것과 달리 65세 이상 고령층에게는 효과가 17~53%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녹십자 관계자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고령층에게 효과적인 백신 개발을 통해 독감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글로벌 백신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녹십자는 이 밖에 차세대 수두 백신과 탄저균 백신 등을 개발하고 있다.

◆SK케미칼, 10년 만에 ‘백신 강자’ 우뚝
녹십자·SK케미칼, ‘백신 주권’ 이끈다
SK케미칼은 2006년부터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백신 사업을 시작했다. 2007년에는 국내 대표 바이오벤처인 인투젠을 인수하면서 바이오 의약 분야 진출을 가속화하기도 했다.

SK케미칼은 백신 사업 인프라 구축과 연구·개발(R&D)에 약 4000억원의 비용을 투자해 왔다. 2012년에는 경북 안동에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 공장 ‘L하우스’를 완공했다. L하우스는 △세포배양 △세균배양 △유전자 재조합 △단백 접합 백신 등 모든 기반 기술 및 생산 설비를 보유한 곳이다.

연간 최대 생산량은 1억4000만 도즈에 달한다. 최첨단 차세대 무균 생산 시스템을 보유, 새롭게 발생하는 전염병에 대한 신규 백신의 개발 및 대량생산도 가능하다.

SK케미칼은 2015년 자체 기술로 개발한 백신을 본격적으로 시판하며 백신 명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성인용으로는 국내 최초, 소아용으로는 세계 최초의 세포배양 독감 백신인 ‘스카이셀플루’를 상용화하면서부터다. 스카이셀플루는 효능과 안전성 측면에서 검증 받으며 출시 첫해 누적 주문·판매량 360만 도즈를 돌파했다.

SK케미칼은 지난해 성인용·소아용 모두 세계 최초인 4가 세포배양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4가’를 출시하기도 했다. SK케미칼은 총 500만 도즈의 공급 물량을 완판했고 올해에는 총 535만 도즈의 물량을 생산 완료했다.

SK케미칼이 생산하는 세포배양 방식의 독감 백신은 기존 유정란 방식과 달리 최첨단 무균 배양기를 통해 백신을 생산한다. 항생제나 보존제의 투여가 불필요한 고순도 백신으로,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이에게도 안정적인 접종이 가능하다.

항생제에 대한 과민 반응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신종플루 등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변종 독감에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기존 방식으로 6개월 이상 걸리던 생산 기간을 절반 이하 수준인 2~3개월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은 최근 자체 기술로 개발한 국내 최초 대상포진 백신 ‘스카이조스터’에 대한 시판 허가를 식약처로부터 획득하기도 했다. SK케미칼은 국가 출하 승인 등을 거쳐 올해 안에 국내 병·의원에 스카이조스터를 공급할 계획이다.
녹십자·SK케미칼, ‘백신 주권’ 이끈다
SK케미칼은 해외 전문 비임상 시험 기관에서 안전성을 입증한 후 고려대 구로병원 등 국내 8개 임상 기관에서 만 50세 이상 총 842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약 5년간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SK케미칼은 이번 허가로 약 800억원 규모의 국내 대상포진 백신 시장은 물론 세계시장 진출에도 나설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세계 대상포진 백신 시장은 지난해 기준 약 6억8500만 달러(약 8000억원) 규모다.

SK케미칼은 이 밖에 국내에서 자급화하지 못한 폐렴구균·자궁경부암·소아장염 백신을 개발 중이다.

박만훈 SK케미칼 사장은 “세계 최초의 4가 세포배양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4가에 이어 또 하나의 세계적 백신이 국내 기술력으로 탄생했다”며 “향후 다양한 프리미엄 백신을 추가 개발해 백신 주권 확립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