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이슈]
대규모 인사 단행…복귀한 정현호 사장 향후 역할 주목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삼성전자가 50대 경영진을 전면에 내세우는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10월 31일과 11월 2일 2회에 걸쳐 단행된 대표이사(CEO) 및 사장단 인사를 통해서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로 그간 직면했던 경영 난맥상을 끊어 내고 쇄신형 조직 문화를 재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의 측근들이 요직을 점하면서 본격적인 ‘이재용 체제’의 막이 올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새 CEO에 모두 50대 파격 인사

삼성전자는 10월 31일 인사를 단행하면서 본격적인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반도체·부품(DS), 소비자가전(CE), IT·모바일(IM) 등 세 개 사업 부문에서 최고경영자(CEO)를 겸하고 있는 세 명의 대표이사를 모두 교체하는 파격 인사를 실시했다. 이들의 빈자리를 대신할 새 CEO에는 모두 50대의 젊은 경영자들을 승진 발령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DS 부문장에 김기남 반도체 부문 사장, CE 부문장에 김현석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 사장, IM 부문장에 고동진 무선사업부 사장을 각각 임명했다.

김기남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1981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반도체 부문에서만 오랜 경력을 쌓아 온 자타 공인 반도체 분야 최고 권위자로 통한다. 세계적 권위의 전문가 단체인 미국전기전자학회(IEEE)의 석학 회원으로 선정될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연구·개발(R&D)진의 핵심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또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일찌감치 권오현 부회장의 후임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김기남 사장은 삼성 내부에서 종합기술원장과 메모리 사업부장, 시스템 LSI 사업부장,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DS부문 반도체 총괄 사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김현석 사장은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포틀랜드대에서 전기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1992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20년 가까운 기간을 TV 개발 일선에서 보낸 그는 TV 등 디스플레이 제품 분야의 최고 개발 전문가로 통한다.

리더십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평소 젊고 스마트한 감각을 갖춘 것으로 조직 내에서 정평이 나 있다. 혁신을 주도하며 삼성전자가 11년 연속 글로벌 TV 1위를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동진 사장은 성균관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사업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인물로 꼽힌다. 무선사업부 개발실 팀장과 실장을 역임하면서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로 갤럭시 신화를 일궈내는 데 공헌했다.
삼성전자, 50대 신(新)트로이카 시대 막 올랐다
이재용 부회장의 핵심 측근으로 2012년부터 경영지원실장(CFO)을 맡아 온 이상훈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사외이사들의 추천을 통해 이사회 의장직을 맡게 된 것도 눈길이 가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처음으로 CEO와 이사회 의장이 분리됐다. 지금까지는 선임 CEO가 이사회 의장직을 겸임해 왔다.

삼성전자는 ‘최순실 사태’ 여파로 그간 정상적인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고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도 해체됐다. 이에 따라 당초 지난해 말로 예정됐던 정례 사장단 인사도 무산된 바 있다.

세대교체 지연과 인사 적체로 조직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인사를 통해 이 같은 우려를 끊어 내고 새롭게 조직 문화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상훈 사장과 새로 부문장을 맡은 김기남·김현석·고동진 사장은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이재용 체제 본격화 전망

11월 2일 인사에서 삼성전자는 회장 승진 1명, 부회장 승진 2명, 사장 승진 7명, 위촉업무 변경 4명 등 총 14명 규모의 후속 인사를 단행했다.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인사팀장을 담당했던 정현호 사장이다. 삼성전자의 신설 협의체인 ‘사업지원TF’ 수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이상훈 사장과 마찬가지로 이 부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정현호 사장은 미전실이 해체되면서 3월 사표를 썼다.

하지만 이번에 삼성전자로 돌아와 사업지원TF장을 맡게 됐다. 삼성전자와 전자 계열사 사장단 간의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전자계열사 사장단이 공통된 이슈를 협의하고 시너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조직을 삼성전자 안에 설치해 정 사장을 책임자로 위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현호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1983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후 1995년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이수하면서 당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이재용 부회장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삼성전자의 경영관리 및 전략기획 업무를 맡은 뒤 미래전략실에서 계열사 핵심 인사를 총괄한 실세로 분류된다.

이상훈 사장의 차기 이사회 의장 내정과 정현호 사장의 복귀를 두고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 체제 구축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이날 발표된 사장단 인사는 성과 위주로 이뤄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올해 3분기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률 50%를 넘긴 반도체 부문에서만 전체 사장 승진자 7명 중 4명을 배출했다.

반도체 부문에서 한꺼번에 4명의 사장 승진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분기 반도체 사업은 매출 19조9100억원에 영업이익 9조9600억원으로 삼성전자의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

승진자는 진교영 메모리 사업부장, 강인엽 시스템LSI 사업부장, 정은승 파운드리 사업부장, 황득규 중국삼성 사장 등이다. 당초 사표를 낸 기존 대표이사들은 승진하면서 사표가 반려된 것으로 보인다.

권오현 부회장은 회장으로, 윤부근·신종균 사장은 각각 사회공헌(CR)담당 부회장, 인재개발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들 3명은 각각 DS·CE·IM 등 삼성전자 3개 부문을 총괄하던 대표였다. 10월 31일 물러났지만 이날 승진 인사 명단에 포함됐다.

권오현 부회장은 회장직에 오르면서 기술 자문과 후진 양성에 매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에서 신임 회장이 탄생한 것은 1999년 임관 종합기술원 회장 승진 이후 18년 만이다. 윤부근 사장은 CR담당으로 외부와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삼성전자, 혹은 삼성그룹의 대표 얼굴 역할을 도맡아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