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마켓’ 구분은 고정관념…노인의 욕구 먼저 파악해야 (사진)시니어 소비자를 잡으려면 특별한 접근 전략이 필수다. 쇼핑 중인 일본의 고령자.(/전영수 교수)
[한경비즈니스=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고정관념은 고령사회의 최대 장벽이다. 늙음을 둘러싼 선입견 때문에 대부분의 고령 산업은 좌절한다. 세세한 대상 관찰과 공감적인 직접 경험 및 다양한 인터뷰로 노년 욕구의 정확한 규정이 절실한 이유다.
‘노인’의 기준을 어디로 봐야 하는지도 문제다. 60·65세를 넘겼다고 노인으로 보면 수요 발굴이 힘들다. 현실적으론 70세부터 실질적인 노년 수요가 있다.
◆일본서 주목받는 ‘시니어 시프트’
또 하나의 고정관념은 ‘시니어 마켓’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중년→노년’의 연결이 자연스럽듯이 시니어 마켓은 어느 날 문득 열리는 동떨어진 느닷없는 시장이 아니다. 늙으면 관심사(소비 지점)가 달라질 뿐이다.
세대 불문의 범용 수요에 고령층의 욕구를 반영 또는 부각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시니어 시프트’다.
고령 인구는 대부분이 절약하는 경향이 높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듯이 시니어 마켓의 도전은 신중한 게 좋다. 실패 경험이 축적된 일본에서 시니어 시프트 아이디어·마케팅이 힘을 얻는 이유다. 시니어 마케팅 전문가인 무라타 히로유키는 이를 저서·블로그 등에서 10가지 성공 원칙으로 소개한다.
첫째, ‘삼불(三不)’의 해소다. 포화 시장이라고 완벽하진 않다. 어디선가는 불편·불안·불만이 존재한다. 소비 욕구로서 삼불을 없애야 한다. 이를 구체화한 상품·서비스야말로 새로운 사업 기회다. 주력 사업을 하던 중 고객의 새로운 불만을 발견해 유관 아이템으로 확대하는 게 보편적이다.
둘째, ‘소리 없는 소리’에 공감해야 한다. 욕구를 알아도 선택지가 많으면 헷갈린다. 이럴 때는 고객의 잠재 수요에 공감하는 테마숍이 어울린다. 고객의 욕구에 맞춰 상품을 편집하는 형태다. 홀몸노인의 대화 욕구에 맞춰 직원이 일상생활 지원 서비스까지 묶어 내는 식이다.
현장의 목소리가 개발 기획자에게 직접 전달된 덕이다. 이때 고객의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 게 결정적이다. 공감 없이는 어렵다.
셋째, 자기 부모를 웃게 하는 메뉴 개발이 필요하다. 신체 기능 저하에 따른 단순한 기능 제공은 지나치게 성급한 접근이다.
지팡이를 내놓아도 보행 지원이 아닌 멋진 디자인 액세서리처럼 연출 수단으로 승화하는 식이다. 고령층의 체력·심리를 세세하게 배려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순전히 기획자의 깊은 애정이 있어야만 나온다.
넷째, 직접 찾아가는 ‘출장’을 통해 소비를 창출한다. 노인은 집 안 생활의 비중이 높다. 손님 방문을 기다리던 소극적인 경험 전략에서 찾아가는 적극적인 루트 전환이다. 관건은 비용이다.
반복 구매가 발생하고 연계 수요가 많다면 출장은 유력한 판매 경로다. 효율·만족이 확인되면 비용은 떨어진다. 신뢰가 쌓이면 연계 모델로의 진화도 자연스럽다. 노인 고객의 신뢰 확신은 상상 초월의 잠재 기회를 제공한다. 불편할 때 생각나는 사람이 사업 승자다.
다섯째, 신기술의 접목이다. 늙어서 혼자 살아도 일상생활 지원 시간을 즐기려는 이에게 해당한다. 독거 생활을 세세하게 지원하는 고수준의 서비스 제공이다. ‘개인 안내원(private concierge)’으로 불리는 집사 서비스다.
고도로 훈련된 스태프가 품질 저하 없이 대량 고객의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도록 정보기술(IT) 시스템을 채택하는 식이다. 지향은 인간성이다. 정보 시스템을 통해 사람 없이도 가능한 단순한 작업을 줄이는 대신 대체 불능한 감성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하이테크’는 비용 절감과 감성 배양의 능률을 최대한 발휘하는 도구다.
여섯째, 제3의 장소에서 ‘샤워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 은퇴는 출퇴근의 상실을 뜻한다. 직장처럼 매일 정기적으로 다닐 곳이 필요하다. 제3의 의지 장소다. 카페라면 사람을 연결하는 시설로 제격이어서 단골손님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사업 모델로의 확대가 바람직하다.
생애 학습 기관이면 학습 테마와 여행 수요를 엮어 낼 수 있다. 은퇴 인구가 반복해 모이는 공간이면 신규 수요는 있다. 유통 업체라면 노년 공간의 특화로 집객이 수월해진다. 꼭 상품 판매에만 매달릴 이유는 없다. 내점하면 샤워 효과는 발생한다. ◆일하고자 하는 노인의 욕망을 활용하라
일곱째, 지적 교류의 장려다. 단순한 레저로는 노년기를 버텨내기는 어렵다. 즐기면서 배우는 기회 제공이 바람직하다. 본인과 공감대·문제의식이 비슷한 상대와의 의견 교환으로 의기투합의 기회를 만드는 일종의 지적 합숙 체험이다.
교단 강의만이 아니라 체험을 통한 생생한 공부가 야외 실습 형태로 제공되면 참가자의 지적 흥미를 자극할 수 있다. 평생교육이 유망하다는 점에서 멤버·기간·주제 등의 개발 여지는 많다.
여덟째, 노인의 배경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노년은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 주체다. 은퇴했다고 노동 의욕이 없지는 않다. 문제는 갈수록 고령 노동이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배경지식·아이디어가 있어도 직접 창업은 어렵다.
이를 연결해 주는 게 좋다. 노년 인구의 네트워크를 영업 주체로 활용하는 식이다. 회원제 비즈니스면 회원 각자를 영업 채널로 돌려 고정비용은 줄이고 영역을 확대한다. 영업 대행 서비스다.
아홉째, ‘거주’와 ‘학습’을 연결 짓는 것이다. 은퇴 이후 뭔가를 배우려는 지적 호기심이 활발해진다. 현역 생활 때 포기했지만 노년기엔 가능해서다. 가령 대학 자원인 칼리지 형태의 고령 주택이 있다.
주변 대학과 연계해 학습 과정을 서비스의 일환으로 거주민에게 제공하는 식이다. 거주 노인이 대학 시설을 학생·교직원처럼 이용하도록 연계한다. 인간 최고의 지적 오락인 배움을 거주 공간의 핵심으로 둠으로써 치매를 방지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욕구와 집단의 장점을 적절히 혼합해야 한다. 혼자는 불안하고 함께라면 힘들다. 동거보다는 근거(近居)의 느슨한 대가족이 ‘실버 트렌드’다. 그마저 가족·친지가 없다면 비슷한 처지의 노년 인구가 함께 살 수밖에 없다.
원활한 인간관계로 자리 잡으려면 개인의 욕구와 집단 기능을 적절히 통합·주선해야 한다. 전용 공간과 공유 공간의 분리가 그렇다. 거주민을 조직화해 공동체의 운영 원칙, 관여 정도, 지역 연대 등의 수요를 결정한다. 개별적 자립 욕구는 존중하되 필요할 때는 상호 의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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