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필요한 사람만 참석하고 회의 준비 부담 덜어야…‘답정너’는 안 돼
[한경비즈니스 칼럼=권상술 IGM 세계경영연구원 부원장] ‘1주일에 평균 3.7회, 회당 51분 소요.’ ‘하지만 이 중 1.8회는 불필요하고 관련 평점은 100점 만점에 평균 45점의 낙제점을 받고 있는 활동.’ 회의에 대한 직장인들의 시각이다.
2017년 2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상장사 직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내 기업의 회의 문화 실태와 개선 해법’에 따르면 회의 참석자 9명 중 3명은 실제 회의에 참가할 필요가 없는 사람인 것으로 조사됐다.
회의는 소통의 자리이건만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라)’로 흐르는 불통의 자리가 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결실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명확한 결론 없이 끝나는 회의가 55.2%, ‘결론이 나도 최적의 결론이 아닌 것’도 42.1%로 조사됐다.
회의는 ‘혼자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을 여러 명이 모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의논하는 활동’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일하는 조직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회의라는 말을 들으면 ‘상명하달’, ‘강압적’, ‘불필요함’, ‘결론 없음’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인지 회의 시간 중 약 31%를 잡담, 스마트폰 보기, 멍 때리기 등으로 허비하고 있다. ‘필요악’이 돼버린 회의, 어떻게 해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회의 준비 단계부터 진행과 마무리까지의 모든 과정을 다시 돌아보고 바꿔보자.
◆안 해도 될 회의는 열지 않는 게 좋아
회의를 준비할 때는 낭비 요소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회의 횟수를 줄이는 것이다.
문제나 급한 일만 생기면 일단 회의부터 소집하는 리더들이 있다. “관련자들 다 모이라고 해!”, “적어도 1주일에 한 번은 전부 모여 얘기해야 하는 거 아냐?” 자주 듣는 소리다. 일단 회의부터 소집하고 보는 리더는 직원의 시간을 도둑질하는 셈이다.
리더는 회의 소집에 앞서 ‘반드시 모여 의논해야 할 사안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회의 여부를 결정할 때는 도표처럼 회의의 유형을 분류해 보면 좋다. (그래픽) 권민정 기자
세로축은 회의에서 전달되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정보’와 ‘아이디어 또는 이슈’가 포함된다. 가로축은 회의에서 이뤄지는 대화가 주로 한 방향으로 흐르는지 아니면 양방향인지를 보여준다.
네 가지 유형 중 ‘여러 명이 모여 의논’하는 회의의 취지에 적합한 것은 어떤 것일까.
먼저 대화가 일방향으로 이뤄진다면 굳이 회의를 하지 않아도 된다. ‘정보 전달’은 e메일이나 게시판 등을 이용해도 충분하다. 생각 전달은 조회, 음성 메시지, 영상 메시지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회의는 양방향 대화가 필요할 때만 소집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면 ‘정보 공유’도 회의를 통해서 해야 할까. e메일·그룹웨어·메신저·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게시판 댓글 등을 이용하면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결국 회의의 취지에 가장 잘 맞는 것은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밖에 없다.
회의 주제와 목적을 명확히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정기 회의처럼 동일한 대상이 반복적으로 모일 때면 주제와 목적이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참석자가 주제와 목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효과적인 회의 진행이 어렵다. 회의가 끝나면 ‘도대체 오늘 왜 모인 거야’라는 불만이 나온다.
회의를 주재하는 리더는 ‘이번 회의로 어떠한 결과를 얻기 위해 모였습니다’는 말로 기대하는 결과를 명시해 회의의 효과를 높여야 한다. 한국 IBM 대표를 역임한 이휘성 사장은 회의를 소집할 때 회의 참석자에게 직접 e메일을 보낸다. e메일에는 회의 주제와 참석자가 준비해야 할 주제 및 분량이 담겨 있다고 한다.
반드시 참여해야 할 사람만 참석시키는 사전 선별 과정도 필요하다. 회의에서는 의사결정을 하기보다 의견을 주고받으며 토론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 그렇게 논의된 의견을 참고해 결정은 최종 의사결정권자와 담당자가 내려야 한다.
회의 참석자 수가 많을수록 각자 의견을 낼 시간은 줄어든다. 의사 발언 기회가 없어 자리만 채우는 사람의 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회의에 들어와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취지로 참석시킬 사람이라면 차라리 회의록을 공유하는 게 낫다.
◆회의 발표 자료는 1장이면 충분
회의 참석자의 사전 준비 부담을 줄여 주는 것도 중요하다.
리더가 10분 발표할 자료를 작성하기 위해 실무자는 4~5시간씩 준비하는 사례가 많다. 철저한 준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그래픽 등으로 형식을 갖추는 보여주기 식의 자료 준비 시간을 줄이라는 것이다. 보고회 자리가 아니고 생각을 주고받는 자리라면 발표 자료는 1장이면 충분하다.
에드워드 잰더 모토롤라 전 최고경영자(CEO)는 현란한 파워포인트로 보고하는 임원에게 “당장 화면을 끄고 당신의 생각을 말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회의 횟수뿐만 아니라 회의 시간 자체도 줄여야 한다. 국내 모 기업 임원으로부터 글로벌 회사를 방문한 경험을 들었다.
회의실에 갔더니 직원이 나와 “회의 시간이 3시까지 1시간 맞으시죠. 5분 전까지 마쳐 주세요”라고 당부한 뒤 회의실로 안내해 줬다고 했다. 50분이 지나자 해당 직원이 들어와 5분으로 맞춰진 타이머를 두고 나가더니 2분이 남았을 때는 회의실 뒤쪽에 서 있어 서둘러 회의를 마쳤고 한다.
상대 회사 관계자에게 “저 직원은 저렇게 행동해도 문제가 안 되나요”라고 물었더니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닙니다. 회의실만 관리하는 용역회사 직원이에요. 저 직원의 임무는 회의실 사용 시간을 관리하는 겁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아이디어 회의에서는 방임형 리더 돼야
회의를 진행할 때에는 주재자가 회의성격에 따라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다. 생각을 공유하는 회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다양한 의견을 내는 ‘아이디어 회의’와 의견을 종합해 결론을 내는 ‘의견 조율 회의’다.
먼저 아이디어 회의에서는 참석자가 다양한 의견을 내도록 해야 한다. 직원이 입을 열게 하려면 방임형으로 회의를 이끌어야 한다.
직원이 입을 다무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먼저 ‘방어적 침묵’이 있다. 자신이 아이디어를 냈을 때 부정적 피드백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입을 닫는다. 또 하나는 ‘체념적 침묵’이다. 자신이 의견을 내도 어차피 윗사람의 뜻대로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다.
아이디어 회의에서는 다른 사람이 낸 아이디어에 대한 비판을 금하고 해당 아이디어에 새로운 생각을 더하는 것만 허용하는 규칙을 세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세계적 디자인 회사인 아이디오에서는 회의 시간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면 리더가 경고 벨을 울린다.
반면 의견 조율 회의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는 질문을 통해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어떠한 의견 아래 깔린 논리와 근거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어떤 지시를 내리기 전에 최소한 여섯 번 이상 스스로에게 ‘왜’라고 묻곤 했다고 한다. ‘왜 그 사업을, 왜 그 지역에서, 왜 그 시기에, 왜 그 사람에게, 왜 그만한 비용을 들여서, 어떤 목적에서 해야 할 것인가’를 점검했던 것이다. 결론을 제대로 내려면 이러한 논리적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어떤 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뤄졌다면 집단 사고에 빠진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앤디 그로브 인텔 전 CEO는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될 조짐이 보이면 소위 ‘악마의 대변인’을 투입, 반대 의견을 내게 하는 등 철저히 검증하곤 했다.
회의의 성격에 따라 리더가 스타일을 바꿔 가며 잘 이끌어 결론이 잘 도출됐다면 결론이 실행에 옮겨질 수 있도록 마무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회의의 결론을 재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더는 회의 종료 5분 전쯤 회의에서 합의됐거나 결론이 난 사항을 분명히 짚어줘야 한다. 즉, 회의에서 정해진 사항에 대해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회의 때 찬성하고 나중에는 딴소리하는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리더는 회의에서 합의되거나 결론이 난 내용을 실행하기 위해 각자의 구체적인 역할을 정하고 책임도 부여해야 한다. 애플은 모든 회의나 프로젝트에 대해 ‘직접 책임자(DRI : Direct Responsible Individual)’를 임명한다.
실행하기로 한 사항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점검하려면 반드시 회의록을 작성해야만 한다. 회의록에는 실행 사항 목록과 담당자, 완료 기한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이 좋다. 또한 회의록은 최대한 빨리 공유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중요하거나 급하게 처리해야 할 사항은 e메일·메신저·SNS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참석자와 실행자 및 의사결정자와 공유해야 한다. 실행 사항이 제대로 실천되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는 비주얼 플래닝이나 프로젝트 진척 사항 점검표 등을 사내 전자게시판 등에 올려 추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러 사람이 협업해 성과를 내려면 회의는 필수적이다. 회의의 근본 취지에 맞춰 준비하고 진행한다면 집단지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회의를 위해 모였다면 의견을 충분히 나누고 결론을 지어야 하며 실행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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