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대기업과 중기 사이, 중견기업의 활로는? : 이동기 중견기업연구원 원장 인터뷰]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국내 중견기업 연구 1세대로 통하는 학자가 있다. 서울대 경영대 교수이자 올 4월 제2대 중견기업연구원(HERI)의 수장으로 취임한 이동기 원장이다.

이 원장은 아직 초기단계인 중견기업 연구를 확대해 중견기업연구원을 아시아를 대표하는 중견기업 정책 연구기관으로 성장시키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있다.

서울대 교정에서 11월 16일 이 원장을 만나 중견기업의 걸림돌과 해법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
'중견기업 연구 1세대' 이동기 원장 "양질의 DB 생산으로 정책 뒷받침할 것"
-국내 중견기업 연구 1세대로서 중견기업과 역사를 함께 해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장님께서 보는 중견기업의 가장 큰 성장 걸림돌은 무엇인가요.

“기업 하나를 인수하는 데 100조원 이상이 움직이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3000억원에서 5000억원, 5조원에서 10조원 등 자산 범위를 정해 규모 의존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규모 의존 정책은 그 범위를 넘어서면 정부 지원이 줄어들어 ‘제도적 절벽’을 맞닥뜨리거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피터팬 증후군’을 유발하게 되는 문제를 안고 있죠.”

(*‘규모의존 정책’이란 기업의 외형적인 규모기준인 상시근로자수, 자본금, 매출액 등에 따라 기업 활동을 지원하거나 규제하는 정부 정책을 말한다.)

-중견기업계에서는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단순 자금지원은 한계가 있습니다. 핵심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또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 의지가 있는 기업들이 제도의 절벽을 넘어서는 데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점검하고, 이를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현재 중견기업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기업이 사업구조를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견기업의 혁신성장을 돕기 위해 동일업종 내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거나 업종을 변경하는 것에 대한 규제를 해소해주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조세 부담을 1순위로 꼽는 기업들도 많습니다.

“가업승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업 승계의 경우 가업 상속 공제 상한선을 놓고 중소기업계와 중견기업계가 갈등을 벌이는데, 중소기업의 몫을 떼 중견기업에 준다는 식의 발상은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이죠.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기업이 원하는 그런 프레임을 유도해야 해요.

-모든 기업이 원하는 정책이 있을까요.

“예컨대 차등의결권이나 공익신탁을 이용한 지배 구조 시스템을 만들면 어떨까요. 오너의 경영권 승계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규제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기타 선진국에서는 차등의결권을 허용해 합법적인 경영권 강화 장치를 마련했죠. 그 대신 공시를 강화해 부작용이 없도록 했고요.

우리 기업의 절대 다수가 가족 기업이라는 점, 또 가족 기업의 절대 다수가 자식 승계를 원한다는 점 등 이 두 가지를 먼저 받아들여야 해요.

‘가족 기업이 나쁘다’는 사회적 인식은 한국의 모든 기업을 사실상 적으로 돌리는 셈이죠. 전문 경영인 체제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차등의결권과 같은 시스템을 막아 놓으면 경영 승계를 위한 편법과 일감 몰아주기 등의 부작용만 늘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중견기업연구원은 어떤 연구에 집중할 계획인가요.

“정부의 모든 정책은 탄탄한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해야 합니다.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해결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정책을 이끌어 내기 위해 중견기업에 대한 데이터를 우선 확충할 계획입니다.

또 중견기업이 다양한 이해 집단으로 구성돼 있는 만큼 그룹별·업종별로 각각의 현황 조사를 진행하고 중견기업계가 갖고 있는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청취할 수 있는 내부 조사도 실시할 예정입니다.”

-올해 4월 취임 후 어느덧 8개월이 흘렀습니다. 앞으로 중견기업연구원을 이끌어 갈 수장으로서 원장님의 계획 및 목표가 궁금합니다.

“중견기업연구원을 법정 연구 기관으로 키우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지금은 법정 연구 기관으로 돼 있지 않아 예산 확보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연구원이, 대기업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제연구소, 각 기업의 싱크탱크 등 틀이 잡힌 조직이 있지요. 반면 중견기업연구원은 안정적인 연구재원이 없다보니 4~5명의 연구원들이 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굉장히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중소기업연구원의 경우 정규 연구인력 38명).

법정 연구 기관으로 확대하려는 이유는 연구원의 세력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중견기업 정책을 위한 최소한의 뒷받침을 할 수 있는 연구 기관으로 거듭나려면 연구 기금을 확보해 정규 연구 인력을 늘려야만 질 높은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는 정부 지원에만 기대지 않고 모아둔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중견기업의 2세 경영 승계 지원 프로그램이나 세미나 등을 통해 수익화를 모색할 수 있겠죠.”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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