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대기업과 중기 사이, 중견기업의 활로는? : 해외 사례]
일본·미국 등 100년 이상 장수기업 육성 위해 가업승계·성장 지원 정책 펼쳐
‘글로벌 넘버원’…독일 미텔슈탄트의 힘
(사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필기구 기업 '파버카스텔'은 독일의 대표적인 미텔슈탄트(중소·중견기업)다. / 파버카스텔 홈페이지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연필의 표준 길이 ‘18cm’를 정한 기업은 독일의 파버카스텔이다. 1761년 설립돼 무려 256년의 역사를 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필기구 기업이고 여전히 창업자 가족이 경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가족 경영 회사다.

파버카스텔은 우리 중소·중견기업에 해당하는 독일의 미텔슈탄트(mittelstand)이자 각 분야의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우량 기업을 일컫는 ‘히든 챔피언’으로도 꼽힌다. 필기구 분야의 기술 집약형 경쟁력으로 매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거두며 14개국에 생산 공장, 23개국에 해외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에는 파버카스텔과 같은 미텔슈탄트가 360만 개 정도 있다. 독일 전체 기업의 99.6%에 해당한다. 이들 기업이 독일 수출의 60~70%를 담당하고 있고 10%가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 1~3위를 차지하는 히든 챔피언이다.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히든 챔피언은 독일이 1307개, 전 세계의 48%를 차지한다. 대부분이 100년 넘은 장수 기업으로 대를 이어 가업을 이끌고 있는 사례도 전체의 70%에 달한다.

독일은 미텔슈탄트의 경제활동을 발판 삼아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200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4481달러로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이웃 경쟁국과 엇비슷했지만 올해 독일의 1인당 GDP는 4만9815달러로 5만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웃 국가들과의 격차도 5000달러 이상 확대했다.
‘글로벌 넘버원’…독일 미텔슈탄트의 힘
◆미텔슈탄트 육성 위해 1560억 유로 투자

실업률 역시 2005년 11%에서 2017년 8월 기준 3.6%로 크게 낮아져 유럽 최저 실업률을 달성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독일은 수출액 1조2400달러를 기록하며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고 1인당 수출액은 14만5347달러로 중국(9051달러)과 미국(3만6592달러)을 압도했다.

이러한 미텔슈탄트를 기반으로 한 독일의 성장이 빛을 내자 많은 나라들이 ‘독일 배우기’에 나서고 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최근 ‘독일 성장 비결, 미텔슈탄트의 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독일은 성장하는 기업 미텔슈탄트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 세계 각국에 영향을 미친 경제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며 “미텔슈탄트를 기반으로 탄탄한 경제를 구축한 독일의 사례를 통해 영국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넘버원’…독일 미텔슈탄트의 힘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1990년대 장기 침체로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12년 동안 경제 강국으로 키웠다”고 전했다.

실제로 독일 경제는 4연임에 성공한 메르켈 총리 취임 이후 성장 가도를 달려왔다. 메르켈 총리가 집권한 2005년부터 독일 정부는 서독과 동독의 경제 수준을 맞추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특히 동독 지역의 미텔슈탄트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1560억 유로(203조5000억원)를 투입했다. 그 결과 이들 기업들은 현재 세계적인 히든 챔피언으로 성장했다. 광학 업체 카를차이스, 산업기계 제조업체 나일스-시몬스 등이 대표적인 동독 지역 히든 챔피언이다.

독일의 승계 제도 역시 미텔슈탄트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2008년 개정된 독일의 상속 세제는 중소기업의 가업 상속 부담을 크게 낮췄다.

가업 상속 후 경영 기간과 고용 유지 규모에 따라 가업 상속 자산의 85~100%를 한도 제한 없이 공제하고 있다. 가업 상속 후 5년간 가업을 영위하며 지급한 급여 총액이 상속 당시 급여 지급액의 400% 이상이면 85%를 공제하고 7년간 가업을 영위하며 지급한 급여 총액이 상속 당시 급여 지급액의 700% 이상이면 100%를 공제하는 식이다.

◆일본, 보호와 육성으로 중견기업 지원

독일 다음으로 중견기업의 활약이 돋보이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자본금이 1억~10억 엔(약 10억~100억원) 사이인 기업을 중견기업으로 분류하고 각종 보호 정책과 육성 정책을 이원화해 실시하고 있다.

거래 공정성 확보, 세계 인센티브 등의 보호 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대기업은 규모의 경제와 기술력으로 국가 경제를 이끌지만 대기업 혼자 모든 부품과 요소 기술을 보유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일본 정부는 중견기업 육성 정책으로 해외 진출을 적극 돕고 있다. 예컨대 중견 건설 업체가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현지 시장조사를 진행하고 관련 세미나를 연다.

또 중견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외국 기업의 실용화 노하우, 해외 네트워크를 결합해 세계시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글로벌 얼라이언스 추진실’도 설치하고 운영 중이다.

해외 진출뿐만 아니라 기술 개발, 인적자원 확보 등을 지원해 중견기업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중견기업 지원책은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던 장기 경기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올 1~8월 일본 내 제조업 고용자 수가 평균 1003만 명을 기록했다.

미국 역시 종업원 300~999명에 해당하는 약 20만 개의 중견기업이 민간 부문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등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들 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오랜 기간 ‘수출 기업 육성 지원 제도’를 시행해 왔다.

특이점은 직접 지원이 아닌 간접 지원이라는 점이다. 중소기업 수출 교육, 연방정부 수출 지원 활동, 시장개척단, 상업적 옹호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간접 지원을 통해 기업의 자생력을 높이고 있다. 미국의 기업 중 100년 이상 장수 기업은 1만2780개로 전체 기업의 29.4%에 이른다.

프랑스와 대만도 중견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내수 의존형 경제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2008년부터 경제현대화법을 제정했다. 이를 통해 중견기업 기준을 확립했고 노무관리, 자금 조달, 사회보장세 등 구체적 산업 경쟁력 강화 혜택을 중견기업에 제공 중이다. 또한 연구·개발(R&D) 투자 자금과 기업 혁신 투자 지원 등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대만도 2012년부터 ‘중견기업 도약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육성 의지를 보이고 있다. 독일의 미텔슈탄트 사례를 벤치마킹해 매년 중점 지원 대상 기업 50개를 선정하고 맞춤형 지원(인력 육성 지원, 기술 개발 자금 지원, 지식재산권·특허권 관리 등)에 나서고 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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