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현장]
‘옐런 아바타’ 제롬 파월 낙점…점진적 금리 인상 기조 유지될 듯

[한경비즈니스=박수진 특파원(워싱턴)] '이변'은 없었다. 차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후보는 ‘예상대로’ 제롬 파월 현 이사였다.

시장은 안도했다. 통화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관심은 앞으로 Fed 인사 내용과 재닛 옐런 의장의 거취다. 인적 구성 변화는 ‘세계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Fed의 정책 결정에 중대한 변수다.

◆39년 만에 탄생한 비경제학자 출신 의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11월 2일(현지 시간) 파월을 차기 Fed 의장 후보로 공식 지명하면서 배경으로 4가지 이유를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은 2012년 Fed 합류 후 동료들로부터 성실함과 식견, 판단으로 평판을 얻었다”며 “Fed가 원하는 강하고 건전하고 견고한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통화·금융정책의 공감대를 만들어 낼 만한 능력을 갖췄고 무엇보다 5년 전 상원 인준 때 민주·공화 양당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초당적’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Fed 최장 의장 재직 기록을 갖고 있는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처럼 공공부문과 비즈니스 분야에서의 경험을 Fed에 접목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월 이사는 정통 경제학자가 아니다. 그는 미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사), 조지타운대에서 법학(석사)을 공부했다.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투자은행(딜런리드앤드코 수석부사장), 재무부(국내금융담당 차관), 사모펀드(칼라일그룹 이사) 등을 거쳤다. 2012년 Fed 합류 직전 싱크탱크 초당적정책센터(BPC)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가 상원 인준을 거쳐 내년 2월 취임하면 1979년 Fed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 이후 39년 에 경제학 박사가 아닌 의장이 탄생하게 된다.

관심은 파월호 출범이 가져올 미 통화정책의 변화 가능성이다. 옐런 의장은 2015년 말부터 기준금리 인상에 고삐를 당기기 시작했다. 10월부터는 4조2000억 달러에 달하는 Fed 보유 자산을 축소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시작된 ‘유례없는’ 양적 완화(QE) 조치를 정상화하는 ‘유례없는’ 출구전략 실행이다.

내년에 Fed 수장이 바뀌겠지만 이런 정책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몇 가지 근거가 있다. 미 경제 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파월 이사가 Fed에서 통화정책과 관련해 5년간 단 한 번도 다수 의견에 배치되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벤 버냉키 Fed 전 의장은 회고록에서 파월 이사를 ‘중립 성향의 합의 도출형 리더’라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파월 이사를 ‘비둘기파’도 ‘매파’도 아닌 ‘올빼미형’이라고 비유했다.

미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11월 6일 파월 이사가 Fed 이사회에서 지난 5년간 발언한 내용을 중심으로 그의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가늠했다.

결론은 현재와 크게 달라질 바 없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을 종합하면 △미국 경제가 완전 고용 상태라고 생각하며 △물가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미국 경제가 예상한 대로 성과를 보인다면 점진적인 금리 인상에 찬성한다는 게 결론이다. 워싱턴 금융 전문가는 “파월 이사는 옐런 의장의 ‘아바타’”라고 평가했다.

유일하게 변화가 예상되는 부분은 금융 규제다. 투자은행 출신인 파월 이사는 여러 차례 “(금융규제법인) 도드-프랭크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옐런 의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도입한 금융 규제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완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분위기는 파월 이사의 편이다. 이미 Fed 내에서는 금융 규제 완화 반대론자들이 차례로 퇴장하고 있다. 금융 규제 담당이었던 대니얼 터룰로 전 이사는 올해 4월 트럼프 행정부의 금융 규제 완화 정책에 반대해 사임했다. 임기를 5년이나 남겨 둔 시점이었다.

10월엔 역시 같은 목소리를 내던 스탠리 피셔 부의장도 개인 신상을 이유로 사표를 냈다. 이들이 나가고 금융 규제 완화론자인 랜들 퀄스 사이노슈어그룹(투자은행) 전 회장이 새로 영입됐다.

관심은 앞으로 Fed 내 후속 인사가 어떻게 이뤄질지에 모아지고 있다. 인사 내용에 따라 통화·금융정책의 속도와 폭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금리와 자산 축소 등 주요 통화정책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결정된다. FOMC에는 Fed 이사 7명과 지역 Fed 총재 5명이 참여한다. 다수결 결정이 원칙이지만 대부분이 만장일치로 결정된다.

현재 Fed 이사회는 세 자리가 공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공석에도 후보자를 지명해야 한다. 여기에 올해 7월 합류한 랜들 퀄스 Fed 부의장과 차기 의장으로 본인이 지명한 파월 이사까지 합하면 Fed 이사회 멤버 7명 중 5명은 ‘친(親)트럼프’ 성향 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장이 막강한 주도권을 행사해 온 점을 감안하면 향후 Fed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크게 실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연 3~4%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현재와 같은 금리 인상 및 자산 축소 계획에 반대한다면 얼마든지 템포가 느려질 수 있다.

◆관심 모으는 옐런 의장의 거취

Fed 이사 인사와 함께 주목되는 부분은 옐런 의장의 거취다. 옐런 의장은 명실 공히 양적 완화 출구전략의 실행자다. 그가 Fed에 남느냐, Fed를 떠나느냐에 따라 출구전략의 세부 사항이 달라질 수 있다.

그동안은 후임 의장이 취임하면 현직은 Fed를 떠났다. 옐런 의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지만 이사직은 2024년 1월까지 유지된다. 옐런 의장은 이사로 계속 Fed에 남을 수도, 사표를 내고 스탠퍼드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11월 9일 옐런 의장과 조찬을 같이했다. 그는 당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옐런 의장이 아직 자신의 거취에 대해 결정을 못한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