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의 대안으로 떠오른 ‘에코퍼’…기술 높아져 진짜 털 못지않아 (사진)신세계인터내셔날의 캐주얼 브랜드 ‘지컷’은 11월 에코퍼 컬렉션을 출시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뉴욕에 사는 전문직 여성 4인의 일과 사랑을 다룬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영화판에서는 새하얀 모피 코트를 입고 뉴욕 패션 위크를 찾은 주인공에게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이 토마토 세례를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약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2017년 패션 위크에 참석했더라면 모피 대신 ‘에코퍼(eco fur) 코트’를 입음으로써 봉변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에코퍼는 동물 보호의 관점을 넘어 패션 아이템으로 모피보다 더 주목받고 있다.
◆구찌, “내년부터 모피 사용 중단”
본래 ‘페이크퍼’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에코퍼’는 동물 보호를 위한 ‘반모피 캠페인’의 영향을 받아 패션업계에서 확산됐다. 에코퍼는 동물의 털 대신 폴리에스터와 같은 가공 섬유를 활용해 부드러운 촉감을 냈다.
최근에는 섬유 기술의 발달로 진짜 모피 버금가는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자랑한다. 여기에 모피에 비해 컬러와 디자인을 변형하기 쉽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에코퍼를 더욱 각광받게 만든다.
패션업계에서 에코퍼는 새로운 시도가 아닌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먼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더 이상 모피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구찌는 내년부터 생산되는 모든 제품에 사용되는 퍼에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밖에 아르마니·랄프로렌 등이 에코퍼 사용을 점차 늘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에코퍼 브랜드들이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여성 캐주얼 브랜드 ‘지컷’은 11월 10일 에코퍼 컬렉션을 출시했다. 지컷의 제품들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화이트퍼와 레오퍼드 패턴이 들어간 코트는 39만9000원으로 기존 모피코트보다 훨씬 저렴하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지컷의 에코퍼 컬렉션은 폴리에스터·아크릴 등 합성섬유를 소재로 사용해 리얼 퍼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동시에 다채로운 색상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두 명의 여성 디자이너가 론칭한 패션 브랜드 ‘랭앤루’는 에코퍼 목도리로 유명세를 탔다. 새로 공개한 가을겨울 컬렉션에는 레오파드 칼라 배색 코트, 스노캔디 코트 등 아우터와 퍼 베스트, 퍼 후디 야상 등이 포함됐다.
유통업계도 에코퍼에 주목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에코퍼 전문 브랜드인 ‘몰리올리’, ‘진진 아일랜드’, ‘블러쉬드’ 등을 입점시켰다. 중년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퍼 아이템에 20~30대 여성들도 눈을 돌리며 충분한 소비자 층이 형성됐다고 파악한 것이다.
◆점차 높아지는 ‘에코퍼’의 가치
장남경 한세대 섬유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패션 브랜드들이 앞다퉈 에코퍼 라인을 출시하는 것에 대해 “공급자와 수요자 간 균형이 맞춰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공급자들은 질 좋은 에코퍼를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에코퍼의 디자인이나 브랜드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넓어졌다”고 덧붙였다.
당초 에코퍼가 주목받은 것은 인간의 옷을 만들기 위해 동물의 털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최근 소비자들은 단순한 구매를 벗어나 인간이나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윤리적 소비’의 탄생이다. 에코퍼 또한 이러한 기조를 타고 모피의 대안품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착한 소비를 넘어 콧대 높은 ‘패션 피플’의 마음을 잡기 위해선 질 높은 퀄리티는 당연지사다. 장 교수는 에코퍼 브랜드가 시장에서 각광받으려면 “천연 퍼 제품의 가격이 부담스러워 찾은 대용품이 아닌 에코퍼 자체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줘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캐주얼 브랜드 ‘지컷’은 11월 에코퍼 컬렉션을 출시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미니 인터뷰 에코퍼 브랜드 ‘원더스타일’ 곽영아 대표
“에코퍼 패션의 ‘전문 브랜드’로 거듭날 것” (사진)곽영아 원더스타일 대표.(/원더스타일)
tvN 드라마 ‘화유기’에서 주인공 이승기 씨가 맡은 ‘손오공’은 추위를 많이 타 항상 퍼 코트를 착용한다. 드라마 속 손오공이 입은 퍼 코트 제품 중 일부는 2014년 설립된 에코퍼 전문 브랜드 ‘원더스타일’의 제품이다.
최근 이 브랜드의 의상을 몇몇 연예인들이 착용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곽영아(사진) 원더스타일 대표는 “협찬을 먼저 제의하지 않았는데도 고맙게 제품의 질을 알아봐 주고 선택해 주는 이들이 많다”며 웃음 지었다.
Q 원더스타일은 어떤 계기를 갖고 창업하게 됐나요.
“어느 추운 겨울날, 모피를 입고 집을 나섰는데 모피를 입은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부터 모피 소재 옷에는 손이 잘 가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에코퍼에 관
심을 갖게 됐고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에코퍼 의류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안목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털의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동물의 털처럼 부드럽고 석유 냄새가 나지 않는 털을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직접 생산 공장을 방문해 몇 번이고 생산 과정을 확인했습니다. 박음질 선을 없애고 모피의 느낌을 내기 위해 속 털은 짧고 겉 털은 길게 만들었어요.
물론 부드러운 촉감이나 털이 빠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죠. 다소 단가가 높더라도 기존 모피 제품을 생산해 본 적이 있는 공장과 거래했습니다. 우리 제품은 폴리에스터와 아크릴을 사용해 만들어집니다.”
Q 에코퍼가 모피에 비해 가진 장점은 무엇인가요.
“우선 다양한 색깔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 제품을 보면 아시겠지만 빨간색·파란색 등 원색의 화려한 컬러를 사용했어요. 날염이 아닌 원색의 원료들을 사용해 만들었습니다.
또 세탁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어요. ‘원더스타일’의 제품에 화려한 비즈 장식이 달려 있어 고객들에겐 드라이클리닝을 권유하지만 가정에서 울코스로 세탁해도 털이 빠지지 않습니다.”
Q 앞으로 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우리 제품을 사는 고객들에게 가격의 일부를 동물보호연대에 기부한다는 의미의 ‘기부증’을 드릴 예정이에요. 원더스타일의 에코퍼를 구입함으로써 동물 보호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죠.
또 하나의 목표는 ‘에코퍼’ 하면 ‘원더스타일’을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에코퍼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유행을 좇기 보다 전문성 있게 에코퍼 패션의 ‘한 우물’을 파고 싶습니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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