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 거래소 폐쇄한 중국, 직거래 시장 더 커져…기술과 시대의 변화 직시해야
'꼰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비트코인을 이해한다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비트코인은 생선도 가금류도 아니다.” 2014년 비트코인 규제 법안을 발표하면서 벤저민 로스키 미국 뉴욕 주 금융감독청(NYDFS) 국장이 한 말이다. 기존에 알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다룰지 몰라 힘들다는 뜻이다.

규제안을 만들려는 이들이 첫째로 부닥치는 난관은 개념 규정의 어려움이다. 기존의 사고틀로만 비트코인에 접근하는 학자나 법률가들을 비트코이너들은 ‘꼰대들(old school boys)’이라고 부른다. 꼰대들은 덮어놓고 ‘비트코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하니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뉴욕의 법안은 가상화폐란 ‘가치를 옮기는 전자적 코드’라고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비트코인을 비롯해 1000개가 넘는 암호화폐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거나 블록체인의 기술적 특성을 언급하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점은 이후 규제 당국들의 귀감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가상화폐라는 기존의 개념에 비트코인과 유사한 기술을 차용한 암호화폐들을 포함하는 수준에서 얼버무렸다. 한국은행은 2016년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한 보고서에서 IMF의 정의를 차용했다.

‘화폐’라는 단어에 집착할 필요 없어

당국들이 규정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발행자(issuer)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어느 유명 언론인은 비트코인은 시뇨리지(Seigniorage :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해 얻는 이익)를 민간이 갖기 때문에 정부가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비트코인에 시뇨리지 자체가 없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가상 ‘화폐’라고 하니 당연히 발행자가 있고 그 발행자들이 정부가 독점해야 할 시뇨리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생각은 학교에서 공부한 것만으로도 기술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다고 믿는 이들로서는 떨쳐버리기 어려운 사고의 습관이다.

규제 당국이 동어반복 이상의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고 해서 범죄에 비트코인을 사용하려는 이들을 처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013년 온라인 마약 거래 사이트 ‘실크로드’를 만든 로스 울브라이트는 살인 미수, 마약 판매와 자금 세탁 등으로 기소됐다. 당시 울브라이트의 변호인은 ‘비트코인은 돈이 아니다’고 규정한 미국 국세청(IRS)의 판단을 근거로 자금 세탁이라는 죄명으로는 기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법원에 의해 묵살됐다.

판사는 국세청이나 재무부가 화폐를 정의할 자리에 있지 않다고 규정했다. 사람들이 가치가 있다고 여겨 마약이나 도박에서 교환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화폐 관련 범죄를 구성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돈으로 여기면 돈’이라는 순환 논법이야말로 규제 당국이 보여주는 유일하게 일관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화폐는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비트코인에 접근하는 과정은 단계적 변화를 보인다. 무시·혐오·짜증·두려움·좌절의 순이다. 한국에서도 비트코인의 법률적 정의가 쟁점이 된다는 것은 무시 단계는 넘어섰다는 뜻이다. 하지만 금지해 버리면 그만이라는 투의 말이 고위층에서도 나오는 현실로 보아 혐오나 성가심은 느끼지만 아직 두려움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트코인을 제대로 공부한다면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중국이기에 입법 없이도 비트코인 거래소를 모두 차단할 수 있었다. 온라인 비트코인 거래소는 은행 계좌와 연동돼야만 한다. 이 때문에 은행에 대한 정부들의 통제력을 이용하면 전 세계 모든 온라인 거래소를 내일이라도 차단할 수 있다.

비트코인 온라인 거래소는 비트코인 생태계에서 가장 약한 고리다. 하지만 개인이 비트코인을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중국에서는 비트코인 직거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결국 국민들의 비트코인 소지 자체를 금지하려고 할 것이다.

대공황 이후 거의 50년 동안 미국 국민들은 금화나 금괴를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없었다. 화폐 주권에 도전하는 비트코인에 대한 규제의 종착지는 소유의 금지다. 따라서 비트코인의 강건함은 거래소 폐지가 아니라 비트코인 소유를 국가가 통제하는 것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들의 비트코인 소유를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의 소유나 무소유 자체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미국의 몇몇 의원들은 1만 달러 이상의 비트코인을 소지하고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은 소유 총액과 체류 기간 중 변동 사항을 보고해야 하며 신고 의무를 어기면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구속까지 할 수 있는 강력한 조항을 규제안에 포함하려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거래소 폐쇄 시 아예 ‘실마리 ’잃어

하지만 비트코인 회의론자들의 말처럼 비트코인은 물리적 실체가 없으니 몸에 지닐 수도 없고 주인을 따라서 국경도 넘지 못한다. ‘꼰대’는 나이를 차별하는 어휘가 아니다. 꼰대는 변화
하는 세상을 자신에게 익숙한 틀로만 포착하려는 고집스럽고도 한가한 태도를 가리킨다.

소유는 법률관계의 기초다. 소유의 법률적 정의는 단순하지 않지만 공시와 점유라는 행위를 통해 소유의 객관화는 어느 정도 실현된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등기소도 없고 점유도 정의되지 않는다. 전자코드에 불과한 비트코인을 지배하려면 개인키라는 암호를 알아야 한다. 암호는 머릿속에 있으므로 망각할 수도 있고 망각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국가가 개인의 비트코인 소유를 검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암호의 독점적 인지자라는 것을 규정해야만 한다.

비트코인 소유의 제한이나 소유에 대한 중과세는 암호키의 망각이라는 집단 기억상실을 촉진할 것이다. 결국 정부는 개인의 뇌를 감찰하거나 망각이나 ‘암호키를 남에게 엿보여 도난당함’을 금하는 신적인 경지에서나 가능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비트코인은 중앙 기구의 도움 없이 네트워크상에서 소유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온라인에서라면 비트코인은 모두 변조할 수 없는 공개 장부에 등기돼 있고 개별 주소에 점유돼 있어 질권이나 저당권을 설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 이 과정에서 법원의 도움조차 필요 없다. 네트워크에서는 제3 기관의 보호나 증명 없이도 소유의 경계가 명쾌하고 날카롭다.

거래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는 대문 역할을 한다. 그래서 거래소야말로 규제 당국의 유일한 희망이다. 거래소의 거래 기록을 토대로 정부는 개개인의 암호화폐 소유를 추정할 수 있다. 거래소를 폐쇄하면 정부는 국민들의 비트코인 소유 실태에 대해 실마리를 잃어버릴 것이다. 물론 그래도 비트코인은 건재해 오히려 강건함을 증명할 테지만 말이다. 다만 한국의 젊은 세대는 꼰대들에 의해 새롭게 부상하는 세계적인 신사업 영역에서 기회의 박탈이라는 크나큰 학습비용을 대신 지불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