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커스]
소유 불명 땅에 골머리 앓는 일본 …‘토지 신화’ 끝나자 거래도 ‘스톱’
日 주인없는 땅, '규슈보다 넓다'
(사진)일본에 소유자 불명 토지가 늘면서 관리가 어려워진 빈집이 주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전영수 교수)

[한경비즈니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최근 일본에선 땅을 둘러싼 소유 불명이 화제로 떠올랐다. 소유자 불명 토지, 즉 주인을 알 수 없는 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등기부상의 소유자를 찾기 힘들어진 것이다.

소유 불명의 토지가 증가했다는 것은 재해 대책을 위한 조사에서 밝혀졌다. 2011년 대지진 여파로 후속 지진(수도권 직하지진)이 예고되면서 도로 확장 등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산간지역뿐만 아니라 대도시에도 많아

주인 모를 땅의 총면적이 규슈 넓이를 초과한다는 충격적인 추계도 2017년 6월 발표됐다. 규슈 넓이인 370만ha를 가볍게 제치는 410만ha 규모다. 특이한 것은 예전엔 산간 지역에 이런 땅이 많았는데 지금은 도시 권역에서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NHK가 도쿄 23구 및 정령지정도시 20곳을 대상으로 공공사업 때 소유자 불명 토지를 조사했더니 최소 700개 이상으로 확인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지가를 자랑하는 대도시 도쿄의 주택 밀집지 한가운데도 소유자를 알 수 없는 땅이 있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이대로라면 2040년 홋카이도 면적을 웃도는 약 700만ha가 소유자 불명 토지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에 살거나 토지 경계가 불분명한 문제 물건도 상당수다.

이런 땅은 서류상 소유자가 사망할 때 발생한다. 토지 소유자는 통상 부동산 등기부에 등재된다. 소유자가 사망하면 새로운 소유자를 등기해 교체한다. 그래야 법적 소유권이 부여돼 토지 매각, 담보 저당 등의 행위가 가능하다.

그런데 만약 등기부를 갱신하지 않으면 소유권을 지닌 상속인이 최초 단계엔 자녀뿐이지만 이후 손자 세대로 넘어가 점점 증가한다. 장기간 갱신되지 않으면 전체 관계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다. 일부 상속인이 확인돼도 관련된 법률행위는 전원 동의가 필수다.

이처럼 등기부에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는 땅 혹은 소유자의 주소·연락처 파악이 힘든 땅을 통상 ‘소유자 불명 토지’라고 부른다. 공통점은 등기를 제때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상당한 시간과 경비를 들여 탐문 조사로 상속 관계를 살펴보지만 워낙 복잡해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후손은 법률 조건이 성립되면 매각할 수 있다. 문제는 일부 지역을 빼면 이용 가치가 없거나 땅값이 바닥이어서 매수자가 없다는 것이다. 팔지도 못하고 지자체에 넘기려고 해도 받지 않는 곳도 있다. 매각도 활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기비용은 최저 10만 엔 수준이다. 게다가 상속 이후 등기는 법적 의무가 아니다. 등기 유인이 없다는 말이다. 뒤집으면 등기하지 않아도 즉각적인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등기는 특정인의 소유권을 인정받는 제도다. 명확한 권리관계를 밝혀두는 게 중요하면 몰라도 지금은 설명력이 낮다. 되레 귀찮고 돈까지 드는 하지 말아야 할 선택지로 간주된다.

일본은 한때 토지 신화의 원조였다. 땅값은 반드시 오른다는 토지 신화를 감안하면 소유자 불명은 어불성설이다. 자산 가치가 있다면 등기해 권리를 지키려는 게 자연스럽다.

◆도심 흉물은 물론 주민 안전까지 위협

그런데 토지 신화가 끝났다. 인구 감소를 필두로 상황 변화 때문에 사용할 가치조차 없는 토지가 꽤 늘어났다.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고 자산으로서의 가치는 더 떨어진다. 따라서 상속받아도 등기하지 않는 이가 많다. 향후 상속 빈도가 높아질 것을 감안하면 유사 사례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일본은 곧 ‘대량 상속 시대’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라고 하더라도 불명 토지의 증가는 얼마든지 예상된다.

심각한 것은 부작용이다. 도심 흉물이면서 주민 생활까지 위협한다. 소유자를 알 수 없는 땅이기에 붕괴 위험은 상시적이다. 가령 산사태로 토사가 흘러내려 복구가 시급한데도 손 쓸 방법이 없다. 산의 소유자를 몰라 공사를 결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복수의 소유자인데다 주소마저 확인할 수 없다.

도로 확장 등 공공사업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대형 지진이나 화재 발생 때를 대비한 도로 확장이 기본적으로 힘들다. 몇몇의 상속인이 토지 이용을 승낙해도 전원이 동의하지 않으면 공사가 불가능하다. 좁은 도로 때문에 화재 발생 이후 소방차 진입이 힘들어 인명 사고를 내는 곳도 적지 않다.

빈집 문제와 세금 체납 등 우려도 구체화된다. 고베시는 전체 토지의 6.5%가 불명 토지다. 불명 토지에 세워진 빈집이 노후화돼 이웃 주민의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데다 화재라도 발생하면 불이 옮겨 붙는 것은 시간문제다. 불법 투기의 쓰레기장으로 전락했거나 부랑자의 출입 여지도 거론된다.

이들 빈집은 상당수가 주인의 소재지를 알 수 없다. 지자체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위험한 상황이어서 절박하게 호소해도 사적 재산이기 때문에 지자체 역할이 제한된다. 긴급조치로 집 밖에 안전망을 설치하는 게 고작이다. 이러면 세금 지출의 명분을 설득하고 회수 불가까지 넘어야 할 산이다.

납세 통지서를 전달하기 힘들어 세금 징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고베시에서는 2017년 고정자산세(재산세) 납세통지서 중 수취인 불명 사례로 반송된 건만 400건 이상이다. 당사자를 모르니 납세는 어렵다. 쌓이면 세수 하락의 부담으로 연결된다. 과세의 공평성 관점에서 정상 납부자의 박탈감도 크다.

◆‘주인 없는 땅’ 해법 찾는 일본
등기 의무·토지은행…‘안갯속 묘안 찾기’

일본 정부는 2017년 9월 국토교통성을 중심으로 특별 부처를 설립해 관련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대체적인 방향은 공공의 필요가 있다면 개인 토지라도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의 개편이다.

쉽지 않은 것은 재산권과 공공복지의 이해 상충 조정 문제다. 따라서 공공을 위해 소유권과 이용권을 분리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공공 목적이면 소유권과 별개로 이용권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그러면 공공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해석의 문제가 남는다.

행정의 일관 관리도 권유된다. 토지 정보는 지자체·기관별로 각기 구분·관리된다. 등기부는 등기소가, 고정자산세 과세 대장은 지자체가 보유한다. 농지는 농업위원회의 농지대장에서 각각 관리한다. 이 때문에 소유자를 추적할 때 개별 부처가 정보 전체를 공유하는 게 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고정자산세 정보만 해도 사실상 최대의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같은 지자체더라도 공유되지 않을 정도다. 따라서 법률로 개인 정보지만 소유자 추적 과정에서는 사용할 수 있다는 근거를 달아줄 필요가 있다.

법률로 등기 의무를 강제하는 것도 대안이다. 다만, 의무 불이행 때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병행할 필요가 있는데 이게 쉽지 않다. 고작 벌칙으로서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도로 공청회를 비롯한 수순 통과는 또 다른 복병이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등기할 수 있도록 환경 정비를 우선하는 정책이 현실적이다. 사망신고 때 토지 등기를 설명해 해당 수속이 같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현실적이다.

미연의 방지 차원에서 땅의 유효 활용을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도 거론된다. 토지은행(Land Bank)을 만들어 민·관 협치를 구축하는 식이다.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해당 토지의 권리권자와 협상해 매도·활용 등의 유효 방책을 제안하는 움직임이다.

실제 토지 관련 전문가가 결합해 만든 비영리단체(NPO)가 토지은행을 통해 불명 토지를 사전·사후에 걸쳐 해결하려는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조건만 맞으면 행정적인 접근보다 전문성을 갖춘 민간 조직이 나설 때 해결 여지가 높다. 불명 토지와 이웃 물건을 연결해 재건축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이는 식이다. 일단 가격 메리트가 좋아 시장 물건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토지은행은 설립 5년간 불명 토지를 포함해 약 70건의 문제 물건을 해결했다.

불명 토지 이전에 해결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상속 등기 때 납부하는 등록면허세를 면제·감면해 주는 대책이 그렇다. 궁극적으로는 소유자 소재 불명의 토지 등기란 점에서 호적 문제와 연계하는 것도 강구된다. 전자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등기와 호적을 연결하면 호적 정리 때 등기 변화도 알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길게는 개인 특정 시스템인 마이넘버(한국의 주민등록번호의 해당)와 토지 정보를 연결하는 것도 권유된다. 인구변화로 토지 소유 자체를 원하지 않는 이도 있을 수 있어 그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